환경특집

원자력, 완전히 불완전한 대안

2011.06.21

원자력 발전 르네상스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영화 <핵의 귀환>과 <영원한 봉인>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Ⅱ ‘원자력이냐, 신재생에너지냐’

기후변화의 시대인 21세기, 원자력이 화석연료에 비해 탄소 배출이 적고 경제적인 대안 에너지로 부상하면서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가 찾아왔다. 그런데 원자력은 진정 화석연료를 대체하고 ‘지구를 구하는’ 대안이 될 수 있는가? 뉴질랜드 감독 저스틴 펨버튼이 2007년에 선보인 장편 다큐멘터리 <핵의 귀환>(The Nuclear Comeback)은 이러한 의문에서 출발한 영화다. 일본 대지진에 따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전 세계에 경종을 울리고 있는 지금, 이는 더욱 곱씹지 않을 수 없는 질문이다.

영화 <영원한 봉인> 제작 이미지

영화 <영원한 봉인> 제작 이미지

<핵의 귀환>은 2008년 제5회 서울환경영화제를 통해 국내에 소개됐으며, 지난 5월에 열린 제8회 서울환경영화제에서 ‘쟁점 2011: 핵, 원자력, 에너지 소비의 그늘’이라는 주제전의 한 작품으로 재상영되기도 했다. 핵과 에너지에 대한 논의를 담은 영화들을 모은 이 주제전에 포함된 또 하나의 장편 다큐멘터리 <영원한 봉인>(Into Eternity)은 핵폐기물 문제를 조명한 작품으로,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인 4월에 <10만년 뒤의 안전>이란 제목으로 도쿄의 소극장에서 개봉돼 관객들의 열렬한 지지를 얻은 바 있다.

우선 <핵의 귀환>은 영국, 스웨덴, 우크라이나 등 세계 유수의 원자력발전소를 찾아다니며 원자력 산업의 명암을 한눈에 보여주는 안내서다. 일례로 1956년 세계 최초로 상업용 발전을 시작한 영국의 캘더홀 원전. 47년간 가동되다 문을 닫은 이곳을 완전히 폐쇄하려면 약 120년의 기간과 건설할 때보다 더 많은 인력, 10억 파운드(약 1조8000억원)에 달하는 비용이 든다고 한다. 가동 기간의 두 배가 넘는 시간과 천문학적 비용을 들여 뒤처리를 한다니, 원자력의 경제적 효율성을 더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 게 아닌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안전성은 어떨까. 스웨덴은 1980년에 국민투표를 거쳐 원자력 퇴출을 결정했지만, 2010년까지 모두 폐쇄될 예정이던 원전 일부는 예정 수명 25년을 넘긴 지금도 가동 중이다. 2006년 정전 당시 예비 발전기 일부가 작동하지 않아 20여분간 전력이 정상 공급되지 않는 사고가 발생했던 포스마크 원전도 그 중 하나. 더 큰 사고를 피한 건 운이 좋아서였다는 한 원자력 전문가는 결함 없는 시스템 설계는 불가능한 것 아니냐는 감독의 말을 조심스럽게 수긍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고자 원자력 산업을 강화하는 것은 “탄소 불꽃을 피하자고 플루토늄 불구덩이에 뛰어드는 격”이라던 영화 속 한 전문가의 인터뷰를 곱씹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천문학적 원전 폐쇄비용 경제성 따져야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재진행형인 체르노빌 원전사고의 여파가 원자력의 안전성에 대한 의문을 증폭시키는 것은 물론이다. 여전히 허용치의 20배가 넘는 방사능에 오염돼 있는 체르노빌 인근 지역, 5만여명의 주민들이 떠난 이래 무인지대로 버려진 채 녹슨 철골 구조물과 텅 빈 콘크리트 건물들만 남은 유령도시 프리피야트의 폐허는 음산하기 짝이 없다.

<핵의 귀환>포스터.

<핵의 귀환>포스터.

<핵의 귀환>에서 체르노빌 원전 내부 깊숙이 파고든 카메라는 대량의 핵폐기물이 봉인된 보호구조물의 붕괴 위험 때문에 제2의 체르노빌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다.

원자력발전소는 물론 핵폐기장, 일반 기차역을 지나다니는 핵폐기물 수송열차 등 각종 핵 관련 시설들이 테러나 전쟁의 위협에 거의 무방비상태로 노출돼 있다는 것도 <핵의 귀환>이 새삼 상기시키는 섬뜩하게 ‘불편한 진실’이다. 방사능 유출사고나 핵 관련 테러, 애초 핵개발의 실마리를 제공한 핵무기와 핵전쟁 등은 상업영화에서도 종종 인류 최대의 위협으로 묘사돼 오지 않았던가. 방사능에 노출된 돌연변이 슈퍼히어로가 나오는 <헐크> <스파이더맨> 등은 원작자 스탠 리가 밝혔듯 냉전시대 핵에 대한 공포를 반영하는 산물이며, ‘피스메이커’ ‘브로큰 애로우’ 등 다수의 영화들이 핵무기의 위험성을 드러낸 바 있다.

10만년 동안 핵폐기물 봉인이 가능할까
영화 <그날 이후>나 <터미네이터> 시리즈가 보여준 핵전쟁의 참사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물론, 만에 하나라곤 해도 발생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 제2, 제3의 체르노빌 등 모든 위험요소를 감수해야 할 만큼 원자력은 에너지 위기를 타개할 필수불가결한 선택인가?

10만여년 동안 지속되는 핵폐기물의 위험성을 환기하는 <영원한 봉인>을 보면, 더욱 그리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원자력을 오래 전 불을 다루는 법을 터득하며 세상을 지배하게 된 인류가 새롭게 발견한 불에 비유하는 이 작품은 땅과 그 위의 생명까지 태워버리는 꺼지지 않는 불을 영구 봉인할 수 있을 거라는 현 인류의 기대가 얼마나 안이한가를 일깨우는 영화다. 덴마크 감독 미카엘 마드센은 핀란드에서 건설 중인 세계 최초의 고준위폐기물저장소인 온칼로를 찾아가 내부 곳곳을 탐색하며 그 유효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영원한 봉인>에 따르면 전 세계 고준위폐기물의 양은 최소 25만톤 이상이며, 그 폐기물의 유해성이 없어지기까지는 최소 10만년이 걸린다. SF영화에 나올 법한 거대 지하도시 또는 끝없는 어둠의 동굴 같은 그 규모는 보는 이를 압도하지만, 온칼로가 수용할 수 있는 핵폐기물의 양은 폴란드 한 나라의 것 정도이다. 10만년 가까이 지속된 전례가 없는 인공구조물의 한계를 온칼로는 능가할 수 있을까? 지난 100년 사이에 두 차례 세계대전을 벌인 인류사회가 또다시 전쟁의 포화에 휩싸인다면? 22세기에 완공되면 두꺼운 콘크리트로 외부와 차단될 이 핵의 피라미드는 관리나 안전대책 없이 자생적으로 유지될 수 있을까?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6만년 이내에 다시 닥칠 수도 있다는 빙하기에 수반될 온갖 변화에도 건재할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점이 쌓여갈수록 핵폐기물을 영구 봉인하겠다는 인류의 야심찬 시도는 무모해 보인다. 관계자들과 전문가들은 제각각 나름의 식견을 피력하지만, 이해는커녕 상상도 하기 힘든 10만년 동안의 안전을 그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 어느 순간 온칼로가 세간에 잊힌다면 이 핵의 무덤을 보물저장고라 생각할지 모를 후대의 자손들이 그 봉인을 해제한다면, 하는 물음에 이르면 등골이 오싹할 만하다. 이 시대의 주요 언어와 온갖 이미지를 이용해 경고를 남긴다한들, 현 인류를 네안데르탈인쯤으로 여길 만큼 먼 미래의 인류가 알아볼 수 있을 것인가 말이다.

“먼 훗날 당신들이 이곳을 찾는다면 우리를 어떻게 생각할까?” 이따금 미래의 인류에게 말을 걸듯, 그들을 위한 메시지를 남기듯 경고를 전하는 감독의 방백 같은 내레이션. 지하 500m의 암흑 속 거대한 핵의 장지 구석구석을 유영하는 카메라가 담아낸 영상과 그에 대비되는 처연한 음악이 유려하게 어우러진 <영원한 봉인>은 초현실주의극과 다큐멘터리적인 기록을 혼합한 듯 독특한 미학적 접근법으로 핵폐기물의 영구 봉인이 불가능함을 역설한다. 온갖 재앙과 불행을 극복할 힘이 돼줄 ‘희망’도 담겨 있지 않은, 파괴와 죽음을 부를 위험한 판도라의 상자를 후대에 유산으로 남겨줄 것인가? 사람과 자연의 생존을 담보로 한 도박은 결코 미래를 위한 선택일 수 없음을 이제는 진지하게 각성해야 할 때다.

황혜림<서울환경영화제 프로그래머>programmer@greenfund.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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