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

원전 없이 에너지 수급 가능하다

2011.06.21

핵발전 대안 논의 필요… 탈원전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Ⅱ ‘원자력이냐, 신재생에너지냐’

"당장 원전의 불을 끌 수는 없지 않느냐.”
후쿠시마 사고 후 흔히 나오는 말이다. ‘핵발전 불가피론’이다.
후쿠시마 사고 후 한동안 침묵하던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5월 17일 한국원자력안전기술연구원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일본 원전사고를 계기로 원전 안전을 한 단계 더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정부 계획은 2008년 35.7%를 차지한 핵발전 비율을 2024년까지 48.5%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지난 5월 3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22년까지 원전을 폐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합의 보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5월 30일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2022년까지 원전을 폐기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합의 보고서를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외국 분위기는 다르다. 5월 30일 독일은 “2022년까지 독일 내의 모든 핵발전소를 폐기하겠다”고 전격 발표했다. 스위스가 “2034년까지 스위스 내 모든 핵발전소(5기)를 폐기하겠다”고 선언한 것도 외신의 한 귀퉁이를 차지했다.

유럽은 탈핵도미노 중
“논문을 준비하면서 자료를 찾다보니 덴마크가 정말 재미있는 케이스였다. 199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덴마크의 재생에너지 비중은 3%에 불과했다. 그런데 2008년, 그 비율은 30%까지 올라갔다.” 박년배 세종대 기후변화특성화대학원 연구교수의 말이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가 나기 전인 올해 2월, ‘발전부분 재생가능 에너지 전환을 위한 장기 시나리오 분석’이라는 제목으로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박 교수에 따르면 언론에 보도된 스위스의 ‘선언’은 탈핵 도미노의 끝자락에 있다. 가장 멀리는 오스트리아가 1978년 탈핵 선언을 했고, 스웨덴(1980), 스페인(1984), 이탈리아(1987)… 식으로 이어졌다.

독일의 경우 소위 ‘적록연정’이 이뤄지던 2000년도에 탈핵에 합의했다가 메르켈 보수정부가 집권하면서 번복되었다. 치열한 논쟁이 뒤따랐다. 앙겔라 메르켈 내각의 결단엔 후쿠시마 사고가 크게 작용했다. 6월 8일 국회에서 열린 에너지대안포럼 발족식에 참여한 펠릭스 마테스 독일 생태연구소 에너지·기후변화 연구부장은 “하나의 위험을 다른 위험으로 대치할 수 없다”는 말로 독일 상황을 요약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원자력은 더 이상 에너지 정책의 ‘옵션’이 될 수 없다는 데 집권당인 보수당도 동의했다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다면 한국은? 맨 앞서 인용한 ‘핵 불가피론자’들의 주장처럼 핵발전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일까. 박 교수는 덧붙였다. “탈핵은 충분히 가능하다. 의지만 있다면….”

그의 박사논문 주제가 바로 이 ‘대안적인 시나리오’다. 그가 붙인 이름은 ‘지속가능사회 시나리오’. 대안적 장기 시나리오 모델링은 국내에서는 최초의 시도다. 에너지계획을 결정하는 가장 상위의 기구는 국가에너지위원회다. 이 위원회는 5년마다 ‘국가에너지 기본계획’이라는 것을 작성한다. 여기서는 부처를 망라한 에너지 계획이 수립된다. 때문에 작성은 정부의 모든 부처가 같이 하고, 최종 발표는 국무총리실에서 한다. 2008년 발표된 4차 기본계획에선 핵발전량 비중이 35.7%인 데 비해 신재생에너지는 1.0%로 돼 있다. 신재생에너지 중 수력 비율이 70%이기 때문에 실질적인 비수력 재생에너지는 0.3%인 셈이다.

재생에너지 생산량 역전 시기는 2035년
모델링 작업은 쉽지 않다. 비용 증가, 효율성 개선 등 변화 추이를 예측해 계산식에 포함해야 하기 때문이다. 박 교수의 작업은 4차 전력수급 기본계획(2008년)을 기준으로 삼아 정부정책 시나리오(2010년 12월)와 지속가능사회 시나리오의 대비 기준으로 삼았다.

[환경특집]원전 없이 에너지 수급 가능하다

이 시나리오는 규범적(후방예측·back casting) 시나리오다. 즉 저탄소 사회라는 미래상 수립을 바탕으로 그에 이르는 경로를 분석하는 시나리오다. 핵발전과 화석연료 발전의 비중이 줄어듦에 따라 국내에서 얻을 수 있는 재생에너지의 잠재량 범위 내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늘려가는 식이다. 반면 재생에너지의 이용 가능 한도는 자연에너지에 근거하기 때문에 제한적이다. 이를테면 1년간 내리쬐는 햇볕의 총량은 정해져 있다. 즉 재생에너지 기술의 발전과 비용 감소에 따라 화석연료나 핵발전을 줄여나가는 모델이다. 박 교수는 “기존의 핵발전이나 화석에너지 기술은 성숙된 기술이기 때문에 비용 인하나 효율 개선이 상당히 완만히 진행되는 반면, 태양광이나 풍력은 현재 발전하고 있는 기술이기 때문에 급격하게 개선될 것”이라면서 “자연적인 제약 조건, 예컨대 특히 태양광과 관련해서 토지 면적을 지나치게 많이 잡아먹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 나올 수 있는데, 실제 계산을 해보니 최대한으로 잡아도 전체 국토 면적의 1.7% 정도를 차지하는 데 그치는 것으로 나왔다”고 밝혔다. 

그가 제시한 시나리오는 현실적이다 못해 보수적이다. 우선 핵발전은 이후에는 신규 원전 건설이 없다는 가정 아래 지금 짓고 있는 것도 다 수명기한까지 사용하는 것으로 가정했다. 2050년에도 약 8기의 원전이 돌아가는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박 교수의 모델에 따르면 핵발전이 최종 종식되는 때는 2057년. 독일보다 35년 뒤다. 여기에 기준 시나리오보다 전력의 수요관리를 강화하고, 송·배전 손실률 등을 개선해 2008년 422TWh(테라와트) 수준의 발전량이 2050년 613TWh 정도 늘어나는 것으로 상정했다. 기준 시나리오에서는 751TWh였고, 정부정책 시나리오는 779TWh다. 그 결과의 차이가 <그림>이다. 그림을 보면 핵발전(중수로와 경수로)과 유연탄의 비중은 정부 시나리오에서는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으로 되어 있지만, 지속가능한 시나리오에서는 2020년 전후 정점을 찍은 뒤 지속적으로 줄어드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 시나리오에 따랐을 때 재생에너지와 기존의 화석연료 및 원전을 합친 전력 생산량이 뒤집히는 때는? 박 교수의 계산으론 2035년 전후다. 비용은 생각보다 적게 든다. 까닭은? 비용의 상당부분을 차지하는 연료 비용이 재생에너지(태양열, 지열)에서는 0에 수렴되기 때문이다. 탈핵 의지만 있다면 지금 당장 재생에너지로 방향을 틀어도 전력 수급에 문제가 없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앞의 ‘핵 불가피론’을 펴는 이들은 한번쯤 곱씹어봐야 할 주장이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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