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특집

원전이 남긴 건 ‘침묵의 봄’이었다

2011.06.21

체르노빌·후쿠시마 현장 르포… 기약 없는 금단의 땅, 교훈 없는 비극의 향연

■ 주간경향·환경재단 공동기획Ⅱ ‘원자력이냐, 신재생에너지냐’

‘검은 흙’이란 뜻의 초르노빌(Chornobyl)은 동유럽의 대평원 우크라이나 곡창지대를 일컫는 체르노빌(Chernobyl)의 현지 말이다. 25년 전인 1986년 발생한 원자로 폭발사고로 주변지역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반경 30㎞ 지역의 출입이 통제되어 있다. 서울시 면적보다 4.7배나 넓은 지역인데, 앞으로 얼마나 더 오랫동안 금단의 땅이 될지 알 수 없다. 30㎞ 밖에도 고농도 오염지역인 핫스팟(hotspot)이 이웃 나라 벨라루스와 러시아 등에 걸쳐 곳곳에 산재해 있다. 산림지역은 나무와 토양에 방사능이 쌓여 있어 오염이 특히 심하다.

유령도시로 변한 체르노빌 인근 프리퍄티 시내 놀이공원에 멈춰서 있는 대관람차. 1986년 4월 26일 원전 사고 1주일 전에 완공된 이 놀이공원은 문도 열어보지 못한 채 폐쇄됐다.

유령도시로 변한 체르노빌 인근 프리퍄티 시내 놀이공원에 멈춰서 있는 대관람차. 1986년 4월 26일 원전 사고 1주일 전에 완공된 이 놀이공원은 문도 열어보지 못한 채 폐쇄됐다.

복 받은 섬을 재앙의 땅으로 만든 핵발전소
후쿠시마는 한자어로 복도(福島) 즉 ‘복 받은 섬’이란 뜻을 가졌다. 일본 전체가 섬나라인데 그 중에서도 특히 복 받은 곳이란다. 바다와 산 그리고 너른 들판을 가진 곳이니 그런 이름을 얻었으리라. 2011년 3월 11일 발생한 대지진과 지진해일에 이은 원자로 폭발사고로 후쿠시마는 복(福)이 아닌 화(禍)를 입은 곳으로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체르노빌과 비슷하게 반경 20㎞ 지역의 주민들이 완전히 외부로 소개되었고, 20~30㎞ 사이는 실내대피 지역인데 실제 자치단체에 의해 대부분의 주민이 대피상태다. 이곳에서도 바람과 지형조건 등에 의한 고농도 오염지역인 핫스팟이 반경 50㎞까지 곳곳에 나타나고 있어 사람이 살 수 없는 지역이 계속 확대되고 있다.

유럽의 곡창지대인 체르노빌과 아시아의 복 받은 섬 후쿠시마는 대도시 사람들이 사용할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핵발전소가 세워져 가동되다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을 맞아 비극의 땅이 되었다.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자 핵발전소를 가동하던 다른 나라들은 한결같이 ‘체르노빌 원자로가 구형으로 안전하지 못했지만 우리 것은 다르다’고 했다.

체르노빌의 비극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5년이 지난 올해 세계적인 경제대국이자 과학기술 선진국인 일본에서 핵사고가 터지자 예의 반응이 나왔다. “후쿠시마 원자로와 우리 것은 다르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대로 사고 발생과 대처의 모든 과정에서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다. 사고 직후 러시아의 한 과학자는 “일본은 체르노빌에서 전혀 교훈을 얻지 못했다”고 탄식했다고 한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의 비밀주의, 늑장대응으로 후쿠시마 사고는 아직도 전말이 밝혀지지 않고 있고 피해는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주민 안전의 측면에서 후쿠시마는 체르노빌보다 훨씬 후퇴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오염지역의 주민들을 소개시키는 기준을 체르노빌의 경우 5밀리시버트로 했는데, 후쿠시마는 20밀리시버트로 했던 것. 이 때문에 후쿠시마는 물론이고 일본 전역에서 아이를 둔 부모들이 나서 전국적인 서명운동을 벌인 끝에 어린이들의 경우 1밀리시버트로 한다는 정부 방침이 나왔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마을인 나미에마치 시내에서 건설되다 사고로 중단된 지역스포츠센터. 핵발전소 회사가 마을에 지어 준 시설물인데 준공일을 2주 앞둔 상태였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인근 마을인 나미에마치 시내에서 건설되다 사고로 중단된 지역스포츠센터. 핵발전소 회사가 마을에 지어 준 시설물인데 준공일을 2주 앞둔 상태였다.

체르노빌 사고 후 8년이 지난 1994년 봄, 나는 동료와 함께 체르노빌을 방문했다.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 있는 국립암센터에서 만난 백혈병에 걸린 한 아이는 필자 일행이 건넨 환경 배지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었다. 그 아이의 맑은 눈동자가 아직도 선하다. 환자 아이 부모의 초췌한 모습은 체르노빌 사람들의 힘든 삶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다. 지금도 동유럽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쉽지 않지만 사람들은 사고와 더불어 소비에트 개혁개방 과정에서의 경제난 등 이중고를 심하게 겪고 있었다.

한편 ‘마마86’이란 이름의 시민단체가 만들어져 피해 어린이를 돕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었다. 사고 발전소 주변에 살다가 안전지역으로 소개된 주민은 ‘체르노빌 빌리지’라 불리는 곳에 모여 살며 ‘체르노빌 유니언’이란 자치조직을 결성해 대책 활동을 전개하고, 외부 방문객에게 사고의 전말을 들려주는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상 최악의 핵사고를 낸 우크라이나 정부는 핵발전 의존정책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고 원자로 이외의 나머지 3개 원자로를 가동시켰으며 이후 화재사고를 냈다. 위험천만한 상태로 체르노빌 원자로가 계속 가동되자 서유럽국가들이 돈을 모아주며 핵발전소를 폐쇄하고 화력발전소를 지으라고 했지만 우크라이나는 신규 핵발전소를 짓겠다는 계획을 고집하고 있다.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 믿기 어려워
어느날 갑자기 뉴스의 초점이 된 일본의 후쿠시마. 필자는 사고 발생 후 한 달여가 지난 4월 13일 한·일 시민조사단을 구성하여 후쿠시마를 찾았다. 방사능 노출의 위험이 계속되는 시점이었지만 이웃인 일본에서 어처구니없는 핵사고가 일어났기에 10만여명에 이르는 대규모 원전 피난민이 발생한 현장을 직접 살펴보기로 했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가 발표하는 제한된 정보로는 도저히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4박5일 동안 후쿠시마 곳곳을 다니는 내내 체르노빌의 자연과 사람들이 떠올랐다. 봄을 맞아 비록 새들은 지저귀고 꽃은 활짝 피었지만 심각한 방사능 오염으로 후쿠시마 사람들은 무거운 침묵의 봄을 맞고 있었고, 체르노빌도 그랬었다.

사고원전으로부터 60km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시의 침묵의 봄. 이곳의 방사능 농도는 1.93uSv/hr였다.

사고원전으로부터 60km 이상 떨어진 후쿠시마시의 침묵의 봄. 이곳의 방사능 농도는 1.93uSv/hr였다.

“새들이 울지 않던 그 날, 봄은 침묵했고….” ‘침묵의 봄’이란 노래의 가사 첫 소절이다. ‘침묵의 봄, Silent Spring’은 현대 환경운동의 바이블과 같은 책의 제목이다. 미국의 해양학자이자 저술가인 레이철 카슨 여사가 1960년대 초 살충제가 생태계를 파괴하는 문제에 대해 전문성과 더불어 문명비평적 글로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일깨웠다. 이 메시지는 2차대전 후 경제부흥을 꿈꾸며 농약 등 석유제품을 대량으로 사용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꾀하던 서구사회에 깊은 충격을 던졌고, 많은 사람들은 이 책을 통해 생태계의 위기를 깨닫고 생태적 감수성을 되찾았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가 전하는 침묵의 봄’의 메시지를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보수적이고 관료적인 일본 사회에서도 조금씩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수도권 인근의 하마오카 핵발전소 가동을 정지시킨 것이 그것이다. 멀리 독일과 스위스 등은 앞으로 10여년 내에 핵발전소를 모두 폐쇄하기로 결정하고 법적 절차를 밟고 있다. 지구촌에서 가장 높은 핵발전소 전기 비율을 가진 프랑스 사람들도 76%가량이 원전을 폐쇄해야 한다는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어떠한가? 후쿠시마 사고가 터지던 때 한국의 대통령은 중동에 핵발전소를 팔았다며 대대적인 기자회견을 준비했다. 이후에도 “우리의 원전은 안전하다”는 말을 되뇌고, 심지어 독일 총리를 만난 자리에서조차 원전 계속 추진 입장을 언급하며 나라 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변하고 있다.

덴마크, 친환경 에너지 정책의 모범답안
체르노빌 핵사고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는 나라가 독일이라고 알려져 있지만 실제 덴마크가 훨씬 적극적으로 친환경에너지 정책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코펜하겐은 북유럽의 낙농국가 덴마크의 수도이자 항구도시인데 친환경에너지 정책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코펜하겐 앞바다에 대규모 해상풍력발전단지를 조성하는 계획을 시 당국이 만들어 시민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열었다. 육상의 풍력발전단지는 입지도 제한적일 뿐더러 경관을 해치고 소음공해 때문에 시민들이 원하지 않아 바다 위에 풍력발전소를 짓기로 한 것이다. 당초 계획인 두 줄로 나란히 풍력발전기를 세우는 안에 대해서 시민들은 ‘핵발전소가 위험하니 풍력발전소가 필요한 시설이긴 하지만 한번 세우면 오랫동안 지켜봐야 할 시설이니 기왕이면 보기 좋게 만들자’며 한 줄로 곡선 모양으로 멋스럽게 만들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유령도시가 된 체르노빌 인근 쁘리피얏의 침묵의 봄.

유령도시가 된 체르노빌 인근 쁘리피얏의 침묵의 봄.

한 줄로 세울 경우 발전기 숫자가 줄어들어 총 발전량이 모자라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덴마크 사람들은 풍력발전기의 날개 길이를 늘려서 전체 발전량을 당초 계획과 같게 했다. 이렇게 하여 세워진 코펜하겐 앞바다 해상풍력발전기의 날개 길이는 무려 76m. 발전기 20개에서 40㎿의 전기가 생산돼 덴마크 전체 수요의 3%를 담당한다. 이런 식으로 덴마크는 2030년까지 국가 전력의 50%를 해상풍력발전으로 충당하는 계획을 실천하고 있다. 덴마크뿐 아니라 이웃 나라인 네델란드와 독일, 그리고 영국 등 북해를 끼고 있는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이 해상풍력발전을 핵발전소를 대체할 가장 유력한 전기에너지원으로 삼고 대규모 해상풍력단지 건설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후쿠시마에서 만난 사람들은 “일본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라며 정부가 핵발전소 정책을 강요했다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한국에서도 흔히 듣던 말이다. ‘한국과 일본은 바다로 둘러싸인 반도요 섬나라로 해상에서 불어오는 풍력에너지가 무한한 나라다, 이제는 기름보다 바람이 에너지원이다!’ 대규모 해상풍력단지를 만들면서 멋을 부린 코펜하겐 사람들이 일본과 한국 사람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다.

사고가 난 후쿠시마 핵발전소로부터 50㎞ 떨어진 고리야마시의 원전 피난소에서 만난 한 피난민이 한국에서 온 필자 일행에게 한 말이 귀에 생생하다. “원전은 사고가 나면 돌이킬 수 없는 피해와 희생을 만듭니다. 한국에 탈원전 네트워크를 만들어 원전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활동하기 바랍니다. 이것이 후쿠시마의 교훈입니다.”

글·사진 최예용<환경운동연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choiyy@kfem.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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