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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상징 대중문화분야 SF소설가 듀나

2008.09.23

제도권 시스템 거부 ‘얼굴 없는 작가’

듀나의 작품들.

듀나의 작품들.

SF소설가이자 영화평론가로 알려진 듀나. 1994년 온라인에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1997년 중·단편집 ‘나비전쟁’을 내면서 컴퓨터통신 스타에서 전문작가가 됐다. 듀나는 지금까지 다섯 권의 과학소설(SF)과 한 권의 영화평론집을 냈다. 문학의 범위를 확장시키고 하위문학으로 치부되던 장르문학을 융성시키는 데 기여도가 높다는 평가도 듣고 있다.

하지만 그의 얼굴을 봤다는 사람은 없다. 듀나도 본명이 아니다. 온라인에서 사용하던 아이디(ID)다. 그는 본명이 이영수이고 이화여대 88학번이라는 말이 있지만 이 역시 정확하지 않다. 그의 책을 만드는 출판 관계자나 그의 글을 자사 신문 또는 잡지에 싣는 기자건 그를 시사회에 초청하는 영화관계자건 할 것 없이 그와 접촉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이메일뿐이다. 얼굴 대면은커녕 전화 통화조차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철저히 익명성을 고수하고 있는 ‘얼굴 없는 작가’다.

듀나와 인터뷰에서 기자의 첫 질문은 “왜 익명을 고수하느냐”였다. 돌아온 답은 “익명을 고수한 게 아니라 단지 편집자들과 출판사에서 제 하이텔 아이디를 쓰기에 그냥 그런가보다 한 것이고 그게 굳어진 것”이다. 그는 “앞으로도 커밍아웃을 할 의향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weekly경향이 듀나를 21세기를 규정짓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선정한 것은 이름과 얼굴이 베일에 가려진 그가 불러일으킨 문화적 효과를 주목해서다. 문학평론가 정여울씨는 “듀나는 제도권 시스템에 얽매지 않는 자유로움을 상징한다는 데서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과거에는 신춘문예에 뽑히거나 문학상을 수상하거나 문예잡지에 글을 실어야 소설가로 등단했고 또 어렵게 소설가로 등단했다고 하더라도 이런저런 인간관계를 구축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들었다. 하지만 듀나의 경우는 PC통신 하이텔에서 SF소설을 쓰면서 열혈독자를 확보했고 이를 바탕으로 오프라인에서도 책을 출판해 전문작가가 됐다. 물론 얼굴과 이름을 드러내지 않은 까닭에 문단 내의 인간관계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실제로 듀나는 인터뷰에서 얼굴 없는 작가로 살아가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이 “가기 싫은 곳에 가지 않아도 되고, 맺고 싶지 않은 인간관계를 맺지 않아도 되는 점”이라고 말했다.

상징적 존재로서 듀나의 힘은 PC통신, 인터넷 등 온라인의 발달과 깊은 관련이 있다. 한국은 인터넷 사용 인구 3000만 명, 1인 미디어인 블로그를 즐기는 인구 1000만 명을 자랑한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블로거 중에는 고정 독자만 수십만 명을 몰고 다니는 파워 블로거도 적지 않다. 그래서 등장한 신조어가 ‘블룩(blook)’이다. 블룩은 블로그(blog)와 책(book)을 합한 말로 블로그 내용을 책으로 출판한 것을 말한다. 스타 블로거 중 상당수는 듀나가 그랬듯, 블로그에서 사용하는 아이디로 독자와 소통한다. 오프라인에서 책을 출판할 때도 온라인 아이디로 내는 경우도 적지 않다. 21세기에 제2, 제3의 듀나가 더 많이 나올 것으로 짐작되는 이유도 이때문이다. 낮에는 오프라인 세상에서 직장에 다니고 밤에는 익명의 작가가 되어 온라인 세계에서 화려한 글솜씨를 뽐내는 등 인터넷 문화는 한 사람이 두 명 이상 복수(複數)의 정체성을 가진 사람이 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물론 반론도 있다. 문학과 지성사의 이근혜 문학팀장은 “블로그나 웹대화방, 근자의 아고라까지 대중은 자기 목소리를 구체적으로 강하게 표명하는 데 점점 더 익숙해지고 있고, 이 같은 인터넷 유저의 놀라운 자가개발은 익명성의 추구가 아니라 좀 더 화려하고 직접적인 노출 쪽을 지향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하지만 인터넷 문화가 날로 발달하게 될 21세기가 또 다른 듀나가 나올 필요충분을 갖추고 있다는 점에는 대체로 이견이 없다. 듀나라는 성공 전례가 있기 때문에 더 가능하다.

<박주연 기자 jy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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