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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능력·창의력 갖춘 ‘T형 인재’

2008.09.23

대기업이 찾는 21세기 인재상

기업이 원하는 21세기형 인재는 업무에 대한 능력은 물론이고 조직원 간에 화합을 기반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진은 한화그룹 신입사원 수련회의 모습. <강윤중 기자>

기업이 원하는 21세기형 인재는 업무에 대한 능력은 물론이고 조직원 간에 화합을 기반으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이다. 사진은 한화그룹 신입사원 수련회의 모습. <강윤중 기자>

"신입사원 여러분, 책임감과 자발성을 가지는 동시에 매사에 창의성을 발휘하며 의욕적인 자세로 업무에 정진하기 바랍니다. 또한 글로벌 기업에 근무하는 직원답게 글로벌 마인드와 전문성을 갖추어야 합니다.”

지난 8월 29일, 현대차그룹 정몽구 회장이 제주 해비치 리조트에서 열린 ‘2008년 현대·기아차 대졸 신입사원 하계수련대회’에 참가해 제시한 인재관이다. 정 회장은 매년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석해 이러한 인재관을 직접 밝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올해 정 회장이 밝힌 구체적인 인재는 ‘환경 인재’다. 그는 하계수련대회에서 “환경을 고려하지 않으면 더 이상 성장은 불가능함을 인식하고, 환경이 기업과 국가경제 성장의 기반이 되도록 해야 한다”면서 “하이브리드카, 연료전지차 등 차세대 자동차 산업의 주역으로서 저탄소 녹색성장을 견인하는 세계 초일류 자동차 회사를 만드는 데 앞장서달라”고 당부했다. 기업이 저마다 ‘녹색성장’ ‘그린경영’을 외치는 상황에서 이를 선점할 수 있는 인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디지털 기술력과 유비쿼터스로 대변되는 21세기. 시대가 원하는 인재상은 어떤 모습일까? 이는 향후 30년을 바라보며 인재 선발과 양성에 힘쓰고 있는 기업의 인재상을 보면 그 모델이 나온다.

업무 능력이 대세는 아니다
2003년 신경영 10주년을 맞아 제2기 선포식을 하면서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은 사장단과 경영진을 향해 ‘인재 경영’ 특히 ‘천재경영론’을 강조했다. 이 전 회장의 ‘천재경영론’은 고객의 생각을 읽어내는 직관력과 시장 판단력을 갖춘 인재 한 명이 제대로 된 전략·전술을 구사할 때 회사 전체를 먹여 살릴 수도 있다는 것이 핵심이다. 하지만 이 전 회장은 최근엔 이 말을 아낀다. 천재를 있게 한 만 명의 가치를 폄훼한 것이라는 저항을 받았기 때문이다. 대신 삼성그룹은 ‘T자형 인재’를 제시한다.

‘T자형 인재’란 일본의 도요타에서 처음 사용한 것으로, 특정 영역에서는 전문가(specialist)이고 경영 일반에서는 보편적 교양을 가진 사람(generalist)을 말한다. 과거에 환영받던 I자형 인재가 한 가지 분야에만 매달리는 사람으로 인간관계 역시 상하 수직적이라면, 삼성이 요구하는 T자형 인재는 이공계 출신이라도 인문을 알아야 하고 수평적인 인간관계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남과 다른 창조적 사고를 할 수 있어야 새로운 분야를 남보다 먼저 주도적으로 개척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뿐 아니라 일본·중국·미국 등 NHN의 해외법인 직원들이 자유롭게 참여하는 사내 학술행사인 ‘NHN 컨퍼런스’도 T자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한 과정이다. NHN의 직원이 한자리에 모여 그동안 업무를 하며 쌓았던 업무 노하우나 프로세스 개선 사례, 서비스 히스토리, 성과 등을 서로 공유해 자기 분야가 아닌 것에 대해서도 이해를 넓힌다.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 NHN 사원들.

아침식사를 함께 하는 NHN 사원들.

세계인을 추구하는 포스코의 인재상도 커뮤니케이션 능력을 보유하고 있으며, 열린 사고와 행동으로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고 배려함으로써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자질을 보유한 사람이다. LG그룹도 단순한 개인 능력보다는 종합적인 업무 실천 능력이 뛰어난 인재를 선호한다. 때문에 내세우는 인재론도 ‘올바른 사람(Right People)’이다.

금호아시아나는 ‘연구하고 공부하는 금호아시아나인’을 내세운다. 조직과 자기 발전을 위해 매사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공부하여 개선과 변화를 추진하는 사람을 말한다. 대한항공이 추구하는 ‘자기 중심의 사고를 탈피하여 세계의 다양한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세계인으로서의 안목과 자질을 갖춘 국제적인 감각의 소유자’도 같은 맥락이다.

SK텔레콤이 본부장, 실장, 팀장 등을 제외한 비직책자들의 호칭을 ‘매니저’로 단일화한 것도 T자형 인재 양성의 범주에 든다. 수직적 상하관계를 보여주던 직위체계와 호칭을 능력과 성과 중심으로 변경함으로써 더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조직문화를 확산하고, 구성원의 역량을 극대화한다는 것이 목표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유통 시장에 공격적으로 나서는 롯데그룹 또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과 잘 조화할 수 있고, 상황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사고를 가진 인재를 선호한다.

과거 기업은 자사가 요구하는 인재를 주로 면접장에서 추렸다. 삼성그룹의 창업주인 고 이병철 회장은 신입사원을 뽑을 때 직접 문제도 내놓고 면접 때면 관상까지 볼 정도로 인재에 대한 열의가 대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1세기 들어 기업의 면접관은 오너가 아닌 팀장급으로 내려왔고, 급기야 함께 채용 경쟁자들이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기도 한다. T자형 인재를 찾아내기 위한 과정인 것이다.

기업의 보수성 탓에 튀는 인재 꺼리기도
21세기 대한민국 기업이 추구한 인재상은 고 이병철 전 삼성그룹 회장이 강조한 ‘창의성’과 고 정주영 전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주장한 ‘진취성’에서 시작한다고 볼 수 있다. 두 회장 모두 ‘인재가 만사’라는 경영철학으로 유명한데, 이 회장은 아무리 학교 성적이 좋아도 성실성과 창의성이 부족해 보이는 사람을 뽑지 않았다고 한다. 솔선수범과 창의성을 인재 선발의 최우선 덕목으로 삼았다. 정 회장은 “해봤어?”라는 한마디로 자신의 인재관을 표출했다. “안 된다고 하지 말고 우선 추진할 수 있는 진취적인 사람이 필요하다”고 그는 늘 강조했다.

이건희 전 삼성 회장 역시 이병철 전 회장의 인재관을 따랐다. 그는 “수평적 인간관계를 유지하면서도 창의성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몽구 현대차 그룹 회장도 매년 신입사원 수련회에 참석해 조직원의 역할을 당부한다.

그러나 대외적인 표방과 달리 인재 등용에서 기업의 보수적 색채는 여전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지난 5월 20일부터 한 달간 전국 159개 기업의 인사 담당자를 대상으로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조사한 결과, ‘도전정신과 성취의식’을 가장 중요한 자질로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고, 이어 ‘도덕성과 올바른 가치관’ ‘협동성과 조직 적응력’순으로 나타났다. 창조성, 전문성, 글로벌화 등은 후순위였다. 2003년 전경련이 실시한 같은 조사에서는 ‘글로벌 역량’을 1순위로 꼽은 기업이 가장 많았으나 5년 새 순위가 바뀐 것으로, 여전히 20세기 인재상을 포기하지 못한 것이다.

<조득진 기자 chodj21@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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