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더 이상 퇴로는 없다” 청와대 공세 전환

2008.07.08

대통령 지지율 상승 기미에 힘 얻어
“촛불에 밀리면 정권 위태” 절박성도

'보수의 대반격’이 시작됐다. 두 달여 동안 ‘졸속적인 쇠고기 협상’ 때문에 촛불시위에 밀리던 보수세력이 추가협상을 앞세워 ‘공세’로 전환한 것이다. 보수의 총공세에는 당·정·청이 앞장섰다.

6월 21일 쇠고기 추가협상이 발표됐다. 22일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는 “장관 고시의 관보 게재와 검역 재개는 국민 여론이 진정될 때까지 유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가 바로 다음 날 ‘금주 내 해야 할 것’이라는 ‘강행’ 카드를 꺼내들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24일 “국가 정체성에 도전하는 불법시위에 엄격히 대처하겠다”고 천명했다. 정부는 25일 고시를 의뢰했고, 26일 관보 게재를 강행했다.

통합민주당은 홍 원내대표의 입장이 유보에서 강행으로 돌변한 6월 22일과 23일을 ‘하룻밤 사이에’라고 표현했다. 이 하룻밤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졌기에 서둘러 장관 고시의 관보 게재를 강행했을까. 민주당 원혜영 원내대표는 26일 의원총회에서 이주 초의 여야 전화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홍 원내대표에게 고시를 강행하지 않으면 등원할 것이라고 했으나 홍 원내대표가 “노력했지만 미국의 요구나 한·미관계 문제 때문에 불가능하다”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아닌 청와대·정부가 실제로 고시를 강행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서갑원 원내 수석부대표는 “홍 원내대표의 입장이 하룻밤 사이에 바뀐 후 이 대통령의 국가 정체성 발언이 이어졌고, 이동관 대변인이 ‘개혁의 후퇴는 없다’고 말했다”면서 “그러고 난 뒤 25일 거리시위에서 물대포가 등장하고 국회의원을 연행하는 신공안정국 상황이 벌어졌다”고 주장했다. 서 부대표는 “집권당 원내대표가 하룻밤 사이 돌변한 것은 어떤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의 발언이 바뀐 것에 대해 주호영 한나라당 원내 수석부대표는 “(유보 발언은) 홍 원내대표의 뜻을 표명한 것이 아니라 정부에 요구한 발언이었다”면서 “정부의 입장은 지금까지 바뀐 적이 없다”고 말했다. 정부가 원래 계획했던 대로 6월 26일 관보 게재가 이뤄졌다는 것이다. 주 부대표는 “홍 원내대표가 정부의 설명을 듣고 합리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정부 측 입장을 받아들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실상 당을 끌고 있는 홍 원내대표의 ‘하룻밤 돌변’은 정·청의 설득이 주효했으리라는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실제 청와대 핵심부는 보수층 결집을 통한 정면돌파로 현 국면을 탈출하는 것으로 방향을 정리했다는 관측이다. 더 이상 촛불에 끌려다니면 정권이 위태로울 수 있다는 절박성과 장기간 촛불집회로 시민도 지쳤다는 판단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다소 무리가 따르더라도 보수 진영을 다시 결집시켜 위기 국면을 돌파해야 할 때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지지율 25% 회복 여부가 중요 관점
청와대가 이런 결론을 내린 배경에는 미국의 요구라는 국제적 요인과 여론조사를 통한 대통령 지지도의 회복이라는 국내적인 요인이 상호 작용했을 것으로 추론되고 있다. 서 부대표는 “미국과의 약속을 들어줘야 한다는 국제적 요인이 전적으로 작용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에 반해 민주당 조경태 의원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조금 상승하니까, 오만함에서 관보 게재를 강행한 것으로 본다”고 해석했다. 실제로 여론조사에서는 이 대통령의 지지율 상승 기미가 포착됐다. 6월 20일 중앙선데이가 중앙일보 조사연구팀에 의뢰해 전국 성인 남녀 1024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은 21.5%로 10%대 후반에서 회복된 것으로 나타났다. 6월 25일 KBS가 미디어리서치에 의뢰해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전화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대통령의 지지율은 22.6%로, 6월 초(17.2%)보다 5%포인트 이상 올라간 것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은 22일 여의도연구소의 자체 여론조사 결과 대통령의 국정지지도가 22.4%에서 31.9%로 회복했다고 발표했다.

최근 중앙선데이·KBS·동아일보·한겨레의 여론조사 결과를 분석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 한귀영 연구실장은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 후반에서 20%대에 올라간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25% 이상 더 올라가느냐가 중요한 관점이 될 것”이라며 “몇%포인트의 상승은 쇠고기 협상 때문에 이 대통령을 일시적으로 불신했던 강경보수세력이 촛불시위가 지속되자 다시 이 대통령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한 연구실장은 “이 대통령의 지지율이 보수층 결집의 한계선인 25% 이상 올라가려면 ‘청와대가 잘하고 있네’라는 신뢰감이 회복된다는 전제하에 가능하다”면서 “단순히 청와대와 정부가 여론조사 결과에 대해 지지율 상승이라고 해석한다면 아전인수 격이자 자신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대통령 사과-청와대 전면 개편-추가협상 발표-대통령 ‘정체성 발언’-관보 게재’라는 최근 청와대와 정부의 잇따른 수순은 6월 초·중순의 보수대연합 기조와 맞닿아 있다. 6월 초 촛불시위가 거세질 때 한나라당에서는 친박인사들의 복당 작업을 공식적으로 시작하고, 청와대에서는 이 대통령이 6월 15일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하면서 국면 전환을 꾀했다. 여기에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자유선진당 심대평 대표의 총리설이 나돌면서 보수세력을 모두 끌어안는 보수대연합의 분위기가 감지됐다.

18대 국회의 지형을 볼 때, 한나라당(153석)과 자유선진당(18석), 친박연대(14석), 친여 무소속 의원(18석) 등 보수세력이 합칠 경우 보수세력은 전체 299석 중 203석을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재적의원 3분의 2를 넘어서서 개헌까지 가능한 의석이다.

쇠고기 협상으로 여당에 대한 비난 여론이 높은 가운데서 정당에 대한 선호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는 의석 수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6월 25일 KBS여론조사에서 정당지지도는 한나라당 31.6, 민주당 15.5, 민주노동당 7.9, 친박연대 5.2, 자유선진당 3.8% 순(무응답 32.3%)으로 나타났다.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민주당 지지율의 2배이며 한나라당과 친박연대, 자유선진당을 합한 보수정당의 지지도는 민주당과 민주노동당을 합한 진보성향 정당 지지도의 2배로 나타났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한귀영 연구실장은 단순한 의석 수라든지 당 지지도의 합산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한 실장은 “쇠고기 협상은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아니라 단지 이슈의 문제”면서 “이 같은 국민적 이슈에 대해 해답을 주지 않고, 단지 보수대연합이라는 구도로 갈 경우 국민들은 정치공학으로 보고 부정적인 시각만 갖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실장은 또 “이런 의석 구도와 당 지지도는 국민들이 의회 활동에 기대를 걸기보다 직접 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았다”고 해석했다.

관보 게재로 불꽃 살아날 가능성
6월 초·중순에 꾀한 보수대연합 시도는 당 안팎으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등원론을 먼저 제기하고 이회창 총재의 대통령 회동을 성사시켜 분위기가 고조됐던 자유선진당은 심 대표의 총리설로 이 총재와 심 대표의 갈등만 부추겼다. 자유선진당은 이 총재와 심 대표 간의 오해만 불러일으킨 책임의 불똥을 총리설을 흘린 것으로 지목된 청와대로 돌렸다. 변웅전 자유선진당 의원(최고위원)은 보수대연합에 대해 “여당이 잘 하는 정책에 대해 자유선진당도 기꺼이 동의할 수 있고 그걸 보수대연합이라고 한다면 나쁘게 생각할 것도 없지만, 대화도 하지 않고 억지로 밀어붙이는 것에는 동의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 대 당 통합 가능성에 대해 변 의원은 “그럴 가능성은 전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친박인사의 복당 문제도 순조롭지 않게 흘러갔다. 일부 의원에 대한 복당 결정에도 친박 의원들은 일괄 복당을 주장하면서 한 명도 복당을 신청하지 않았다. 전당대회 전까지 마무리된다던 복당 결정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친박연대의 박종근 의원은 “한나라당은 이미 과반의 충분한 의석을 확보하고 있는데 친박 의원의 복당을 보수대연합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면서 “친박 복당은 공천이 잘못된 것을 사과하는 차원에서, 그리고 화합 차원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쇠고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친박 복당을 계획했다면 오산”이라면서 “과반보다 더 많은 수의 국회의원을 확보하겠다는 시도라면 앞으로 계속 국정에서 실수해도 밀어붙이기만 하겠다는 뜻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당 내부에서도 보수대연합 시도에 대해서는 부인 또는 비판의 의견을 내세우고 있다. 당원자격심사위원장으로 친박 복당 문제를 다루고 있는 권영세 사무총장은 “친박 복당 문제는 보수대연합의 일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면서 “단지 당 내부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나라당 최고위원 후보들은 TV토론에서 보수대연합에 대해 일제히 반대의견을 내놓았다.

보수대연합 카드를 내밀었다가 ‘실패’한 당·정·청은 ‘등원론’으로 자유선진당과 한 쪽 고리를 걸었다가 추가협상 타결을 계기로 관보 게재 강행이라는 강경 코스를 선택했다. 자유선진당 변웅전 의원은 “조금만 늦춰도 자연스럽게 등원할 수 있는 순리를 거슬렀다”면서 “촛불이 꺼지려고 하는 순간 기름을 붓는 격”이라고 주장했다. 변 의원은 “누가 대통령을 저렇게 판단하도록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친박연대 박종근 의원은 “추가협상은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국민에게 차근차근 설득할 생각은 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발표만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등원론이 솔솔 새어나오던 민주당은 강경론으로 선회했다. 김부겸 의원은 “대통령이 사실을 그대로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호소해야 하는데 자꾸만 국민의 분노를 자극시키고 있다”면서 “이명박 정부가 보통사람의 분노를 감당하기 힘든 상황이 올까 두렵다”고 말했다. 조경태 의원은 “이명박 정부가 국민들을 힘들게 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표현했다.

한귀영 연구실장은 “여론조사에서 보통 한 이슈가 한 달을 넘기지 힘들지만 쇠고기 이슈는 두 달 동안 지속됐다”면서 “촛불시위에 대한 국민인식의 피로감과 시위 국민들의 육체적 피로감이 지속되면서 동력을 잃고 있지만 이슈의 불꽃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해석했다. 한 연구실장은 “관보 게재 강행으로 다시 그 불꽃이 살아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보았다.

6월 5일 한나라당 당원자격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친박 인사들에 대한 복당 절차에 공식 착수

6월 15일 이명박 대통령,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회동

6월 초·중순 박근혜·심대평 총리설 대두

6월 19일 이명박 대통령 ‘뼈저린 반성’ 사과

6월 20일 청와대 전면 개편

6월 21일 정부 추가협상 결과 발표

6월 22일 홍준표 원내대표 관보 게재 유보 제시

6월 23일 홍준표 원내대표 금주 중 관보 게재 발표

6월 24일 이명박 대통령 ‘정체성’ 발언

6월 25일 정부 고시 의뢰

6월 26일 관보 게재


<윤호우 기자 ho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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