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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단체는 촛불을 어떻게 보는가

2008.07.08

정통보수 자임 세력 ‘적극 반대’거리 나선 반면 뉴라이트 내부 입장차

6월 24일 여의도 KBS 본사 앞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촛불시위대를 폭행한 보수단체 회원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트럭에서 발견한 증거품에 대해 보수단체 관계자는 “행사용품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지윤 기자>

6월 24일 여의도 KBS 본사 앞에서 광우병국민대책회의가 촛불시위대를 폭행한 보수단체 회원들을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트럭에서 발견한 증거품에 대해 보수단체 관계자는 “행사용품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정지윤 기자>

"우선 녹음기부터 끄세요. 어디서 나왔습니까.” 6월 25일 오후 서울시청 앞 광장. 몇 시까지 행사가 예정되어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특임자회) 회원은 먼저 신분증을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기자가 신분증을 제시하자 그는 “나는 할 말이 없다. 사무총장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사무총장이 어디 있냐는 질문에 그는 “당신이 알아서 찾아보라”고 퉁명스럽게 답했다.

이날 정부의 고시 강행 발표를 두고 시청 앞 광장은 전운이 감돌았다. 광장을 장악한 특임자회 회원은 100여 명. 오전 6·25 58주년 기념식을 마치고 대형 태극기와 성조기를 들고 행진하는 행사를 마친 후였다. 이들은 삼삼오오 모여앉아 맞춰 입은 군복 앞섶을 풀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잔디밭에는 이들이 설치한 6·25참전국 국기가 듬성듬성 있었고, 광장 옆에는 이들이 타고 온 것으로 보이는 ‘특수임무수행자회 경북지부’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6월 5일과 6일, 이 단체는 광장을 점령하고 특수임무수행자회 합동위령제를 열었다. 이 과정에서 촛불시위에 참여한 시민들과 마찰을 빚어 회원 3명이 경찰에 입건되기도 했다.

‘촛불 반대’군 유관단체 정체성 논란
현재 촛불집회를 비판하는 보수 사회단체 중 가장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군(軍) 관련 단체다. 재향군인회와 같은 국가에서 지원하는 단체도 있지만 임의단체도 우후죽순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들은 극렬하게 반(反) 촛불집회 전위대 역할을 하고 있다.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가 창립총회를 연 것은 올해 1월. 2007년 ‘특수임무수행자 지원 및 단체설립에 관한 법률’이 만들어지면서 HID단체들이 통합해 만들어진 공법단체다. 이 단체의 오복섭 사무총장은 지난 1월 “육군 HID, 해군 UDU, 해병대 MIU, 공군 OSI 등 그간 정부가 실체를 인정하지 않은 특수임무 수행단체가 통합된 단체”라고 말했다. 단체의 회장은 1968년 설악개발단 창립멤버 출신인 김희수씨가 맡고 있다. 회원은 1968~2001년차까지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촛불시위 반대에 나서고 있는 군유관 단체에도 정체성 논란이 일고 있다. 극명한 사례는 MBC, KBS 등 방송사 앞에서 ‘공영방송 사수’ 촛불시위대와 충돌한 대한민국 고엽제전우회를 두고도 벌어졌다. 고엽제전우회 역시 국가보훈처 법정단체다. 참전전우 고엽제 후유의증 국가유공자추진연합의 김치동 명예회장은 “현재 고엽제전우회를 장악하고 있는 집행부는 이미 상이군경법에 따라 보상받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설명에 따르면 언제 발병할지 모르는 고엽제 피해의 특성상, 후유증으로 규정된 질병뿐 아니라 고엽제 피해가 의심되는 후유의증의 경우도 인정받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것. 김 회장은 “정치적 개입 논란뿐 아니라 특정 이권 개입 등 잘못된 행태를 보이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전우회를 비판했다.

임의단체라고 할 수 있는 예비역 대령·장군 모임인 육해공군해병대 예비역 대령연합회(대령연합회)·성우회 등도 촛불집회를 비판하는 각종 집회·시위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신영철 대령연합회 회장은 “우리는 군인이고 대령연합회는 기본적으로 친목단체기 때문에 정치적인 부분은 잘 모른다”라면서도 “처음에 쇠고기 문제로 촛불시위를 시작했다고 하지만 대운하나 공기업 민영화 등 쟁점을 확대해 나가는 것을 보면 배후세력이나 행동세력이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성우회 이정린 사무총장도 “촛불시위가 변질되면서 공권력이 마비되는 등 국가 위기 상황이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거리에 나선 이유를 밝혔다. 대령연합회 전 회장 서정갑씨는 밝고힘찬나라운동,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 등 보수단체도 이끌고 있다.

그는 지난 6월 9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맥아더 동상 철거 주도세력·평택 미군기지 반대집회에서 죽창·쇠파이프를 들고 주도한 세력이 촛불집회의 배후세력”, “경찰병력으로 시위 진압이 안 된다면 위수령이라도 발동해 군대를 동원해야 한다”는 초강경 발언을 쏟아냈다.

그러나 촛불시위와 관련해 이들 군 관련 보수단체들의 활동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나온다. 표명렬 평화재향군인회 상임대표(예비역 준장)는 “과거 독재정권의 시녀 역할을 하던 사람들이 아직도 정권과 수구세력의 앞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불쌍하다”면서 “군국주의 일제 시대나 독재시대처럼 그들의 군복이 위압의 상징처럼 사용되고 있는데, 그것은 군복의 존엄성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일갈했다.

반 촛불집회 전위에 나서고 있는 또 다른 단체인 대한민국어버이연합은 아직 등록단체는 아니지만 6·25참전 전우를 중심으로 약 700명의 회원이 참여하고 있다. 이 단체의 명예회장은 이상훈 전 국방부 장관이며, 김병관 자유네티즌구국연합 대표, 서석구 미래포럼 상임대표,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 등이 고문을 맡고 있다. 신현문·서강석씨 등이 이 단체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단체의 주요 활동은 매일 오후 2시 서울 종묘공원에서 여는 시국강연회. “회원들의 평균연령은 78세며, 대부분 6·25를 겪은 분이다 보니 단체 입장은 정통 보수에 가깝다”고 추 총장은 덧붙였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한민국어버이연합 회원 일부는 이번 국면 초기에 촛불시위에 참여했다는 것. 일부 언론은 ‘보수세력도 촛불시위 동참’의 케이스로 이 단체의 참여를 주목했다. 추 총장은 입장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한·미FTA 문제부터라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가 북한에 퍼주기한 걸 빼고 솔직히 서민을 위한 정치는 잘했어요. 현 정부가 추진하는 의료보험 민영화나 경부대운하도 잘못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한·미 FTA는 달라요. 우리나라는 원자재를 수입 가공해 되팔아서 먹고사는 나라인데….”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가나다순) _ 김규호 기독교사회책임 사무처장, 김희수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회장,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 서정갑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 대표, 이종구 성우회 회장,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사무총장, 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가나다순) _ 김규호 기독교사회책임 사무처장, 김희수 대한민국특수임무수행자회 회장, 박찬성 반핵반김국민협의회 대표, 서정갑 국민행동친북좌익척결본부 대표, 이종구 성우회 회장, 추선희 대한민국어버이연합회 사무총장, 한기홍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

선진화국민회의 등을 주도하고 있는 서경석 목사도 반 촛불시위에 나서고 있는 대표적 인사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무총장을 역임한 그는 현재 보수 진영에 가담해 있다. 지난 6월 22일 저녁, 서울청계광장에서 열린 ‘STOP거짓촛불·시국안정 및 경제안정 촉구 애국시민문화제’에 참석한 서 목사는 “일각에서는 서 목사가 그렇게 망가질 수 있느냐, 진보 인사에서 꼴통보수로 입장이 바뀌었다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많다”면서 “하지만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꼴통보수보다 더한 소리를 듣더라도 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촛불시위를 반대하는 1인시위를 지난 6월 13일부터 청계광장에서 벌여왔다.

보수단체들은 이번 촛불시위 국면에서, 특히 인터넷 여론전에서 실패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뉴라이트전국연합 변철환 대변인은 “혹자가 오해하는 것처럼 뉴라이트운동은 자유민주주의 가치의 소중함을 주장하는 운동이지, 보수정권이라고 무조건 정권을 옹호하는 운동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방송의 편파 보도 문제도 심각하지만, 특히 사이버 문제의 심각성을 이번 촛불시위를 통해서 느꼈다”면서 “일단 정부를 배제하고 꼭 정치가 아니더라도 국민들이 아파하는 문제에 대해 시민들끼리 토론하는 인터넷 정화운동을 펼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보수단체는 인터넷 여론전서 실패”
하지만 촛불시위의 규정이나 반대집회 참여 등을 두고 뉴라이트 진영에선 미묘한 입장 차가 발견된다. 바른사회시민회의 전희경 정책실장은 “바른사회시민회의는 현 정국에 대해 입장을 내놓는 것 외에 다른 활동을 하진 않는다”라면서 “시민과 시민이 싸우도록 놔두는 것은 옳지 않으며, 무엇보다도 정부나 국회의 임무방기 문제를 지적하고 싶다”고 말했다.

촛불시위 국면이 한창이던 지난 6월 11일 자유주의연대와 뉴라이트재단은 통합했다. 사실상 뉴라이트재단 중심으로 재편된 것이다. 한기홍 뉴라이트재단상임이사는 “사실 촛불시위에 나온 시민들의 목소리는 단지 광우병 쇠고기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서민을 외면하는 듯 보이는 이명박 정부 정책에 대한 전반적 불만이 누적되어 폭발한 것”이라고 말한다. 일견 진보 진영의 상황판단과 유사하다. 그러나 그는 “촛불시위 전개 국면을 보면 운동단체들도 정권 퇴진 등을 외치는 급진적 입장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것은 운동권 진보 입장 쪽에서 나중에 부담 내지는 숙제로 남을 것 같다”고 전망했다. 그는 뉴라이트라는 개념 규정에 대해서도 “동아일보가 운동이 시작될 당시 붙인 이름인데, 사실 우리 입장에서 정확한 표현은 아니라고 본다”면서 “신보수주의와 같은 이름이 더 정확한 개념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라이트전국연합은 KBS와 정연주 사장에 대한 감사청구에 나서면서 촛불시위의 두 번째 국면에서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실제 23일 KBS 앞 ‘충돌’에서 촛불시위 참가자들은 박찬성씨 등을 지칭해 ‘뉴라이트 김 목사’라고 지목하기도 했다. 김 목사는 뉴라이트전국연합을 이끄는 김진홍 목사를 지칭한 것으로 보인다. 변철환 뉴라이트전국연합 대변인은 “KBS감사 청구 등에서 우연히 우파 인사들과 보조를 맞췄을 뿐 우리 입장은 여전히 중도 우파”라면서 “촛불시위에 나서는 사람들이 ‘뉴라이트’를 자꾸 거론하는데, 우파 입장들을 뉴라이트로 통칭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인터넷 등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교과서포럼 등과 뉴라이트전국연합의 입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특히 청와대 시민사회수석 내정설이 돌던 홍진표씨 등 전향386이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촛불시위 긍정론’ 등에 이들은 “그쪽의 공식 입장이냐”며 해명을 요구하고 나섰다. 변 대변인은 “뉴라이트전국연합은 산하에 교육·문화예술 등 다양한 부문 단체를 아우르고 있는 대중운동단체”라면서 “학자처럼 모여앉아 양비론을 펴는 일부 단체와는 다르다”라고 주장했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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