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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시대의 유령 ‘정치검찰’ 돌아왔다

2008.07.08

거리행진 시민 형사처벌, 경찰 제쳐두고 이례적 직접 결정

촛불이 불러낸 것은 국민 주권에 대한 시민들의 자각만이 아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촛불은 망각 속으로 사라지는 듯했던 구시대의 유령도 함께 불러냈다.

‘정치검찰’이 돌아왔다. 법질서 수호와 공권력의 이름으로 정권을 방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던 옛 모습 그대로다. 촛불정국과 관련하여 정치검찰의 낌새가 본격적으로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지난달 24일 시민들이 거리행진을 시작한 이후부터다. 검찰은 이 무렵 거리행진으로 연행된 시민에 대한 형사처벌 여부를 직접 결정했다. 통상 형사처벌 수위를 경찰이 결정하던 것에 비추어 이례적인 일이다.

공안대책협의회 긴급 소집
5월 27일 박한철 대검 공안부장 주재로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와 공안2부장, 경찰청 정보국장 수사국장 등이 참석한 공안대책협의회가 긴급 소집됐다. 2006년 5월 평택 미군기지 이전 반대 사건 이후 2년 만에 소집된 이날 회의에서 검찰은 단순 참가자도 현행범으로 체포하고 극렬 행위자는 구속 수사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배후 선동자를 찾겠다고 밝혔다.

6월 10일 이후 촛불집회 열기가 다소 주춤해지자 검찰은 본격적으로 압박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대검찰청은 20일 시민이 자발적으로 벌이는 조·중·동 광고주 압박 운동을 ‘사이버폭력 등 인터넷 유해환경 사범’으로 단속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고소·고발이 없더라도 인지 수사를 하겠다고까지 말했다. 이 말은 단순한 엄포로 그치지 않았다. 검찰은 24일 구본진 첨단수사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수사팀을 꾸리고 광고주 압박 운동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26일에는 촛불집회의 기폭제 구실을 한 MBC PD수첩 광우병 보도 수사를 위해 임수빈 형사2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전담 수사팀을 구성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법리에 근거한 자체적인 ‘판단’보다는 법무부 장관의 ‘지시’를 충실히 따르는 모습을 보였다. 5월 26일 새벽 김경한 법무부 장관이 긴급회의를 소집하고 “불법집회 시위 주동자, 극렬 행위자, 선동 배후 조종자는 끝까지 검거해 엄정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리자, 검찰은 바로 그 다음 날 공안대책협의회를 열었다. 조·중·동 광고주 압박 운동에 대한 수사도 마찬가지다. 안상돈 대검 형사1과장은 20일 수사 방침을 밝히면서 “김경한 법무부 장관의 지시가 있어 특별단속을 벌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또 전담수사팀이 꾸려진 것도 김 장관이 국무회의에서 광고주 압박 운동에 대한 엄단 방침을 다시 확인한 24일이다.

검찰이 정치권의 의지에 휘둘리는 모습이 나타나면서 한때 전면 축소 또는 폐지까지 거론됐던 검찰의 공안 기능이 다시 강화되는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검찰은 30일 검찰총장이 주재하는 전국공안부장회의를 소집한다. 그동안 ‘공안정국’이라는 표현에 손사래를 쳐온 검찰이 드디어 ‘공안정국’ 조성에 뛰어드는 기류가 역력하다.

법조계의 한 인사는 “최근 검찰 분위기를 보면 공안검사의 전성기인 1980년대로 회귀하려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에서 공안부는 승진과 출세의 보증수표였다. 1981년 서울지검 공안부 소속 검사 6명 가운데 안기부로 옮긴 정형근 의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검사장과 고검장 자리까지 올랐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도 그 중 한 사람이다.

또 공안부서는 ‘한 번 공안은 영원한 공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평검사 시절 공안부서에 배치되면 이후에도 공안보직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사안을 처리할 때 사회적 파장을 최소화해야 하고 정권의 안위를 지키기 위해 작은 실수도 허용되지 않는 공안업무의 특성으로 인해 경험을 특히 중시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공안통’이라는 말이 생겨나고, 공안 업무를 오래 수행한 사람들끼리 자연스럽게 유대감이 생기면서 일종의 계보가 형성되기도 했다.

하지만 검찰 공안 라인은 민주화 이후 서서히 영향력을 상실했다. 특히 김대중 정부는 공안 검찰의 부정적 유산과 단절한다는 의미의 ‘신공안’이라는 개념을 내세우면서 공안부서에서 잔뼈가 굵은 ‘구공안’ 검사 대신 공안부를 거치지 않은 검사들을 공안부에 배치했다. 이를 통해 공안 경험이 없는 진형구 대검 감찰부장이 대검 공안부장으로 임명되고 전통적 공안 라인이 상당수 교체됐다.

공안 검찰이 사실상 ‘몰락’한 것은 참여정부 들어서다. 검찰인사를 주름잡던 공안통이 주요 보직에서 밀려났다. 2004년 5월 단행된 검찰 고위 간부 인사에서는 공안통이 배제되고 기획통이 부상했다. 대표적인 공안검사로 알려진 박만 서울중앙지검 1차장이 송두율 교수 구속 여파로 승진에서 누락됐고, 홍경식 대검 공안부장을 비롯한 공안 출신들이 요직에서 배제됐다. 반면 법무부 검찰국장과 대검 중수부장에는 기획통으로 분류되는 임채진 당시 춘천지검장과 박상길 법무부 기획관리실장이 임명됐다. 2005년 열린우리당 최재천 의원이 국정감사에서 “공안 사건은 전체의 2.5%에 불과한데 공안검사는 10.3%나 된다”며 공안부서를 축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보법 위반 사건도 2003년 210건에서 2005년 상반기에는 67건으로 크게 줄었다. 공안부가 할 일이 없어진 것이다.

김경한 법무 대표적 공안통
현재 검찰 공안라인의 주축(박한철 대검 공안부장·김희관 대검 공안기획관·국민수 서울중앙지검 2차장검사)은 과거 ‘공안통’과는 거리가 멀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공안부서도 보직을 순환하면서 한 번쯤 거쳐가는 자리가 됐다. 그러나 ‘단독 드리블’이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검찰의 강경 드라이브를 주도하고 있는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그는 공안검사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 서울지검 공안1부장을 지냈다. 올해 2월 김 장관의 법무부 장관 내정 소식이 알려지자 일각에서는 김 장관의 공안 경력을 거론하며 그간 소외됐던 공안 출신 검사들이 다시 약진하려는 움직임이 나오고 있다.

1980~90년대 대표적인 공안통으로 알려진 한 전직 검사는 역설적으로 “지금은 무공안 정국이다. 공권력이 시위를 보고 그냥 있으면 안 된다. 공안의 임무는 헌법과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촛불집회를 공권력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는 이명박 대통령이나 김경한 법무부 장관과 동일선상에 있는 인식이다.

문제는 과거에 기세등등했던 정치·공안검찰이 지금도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냐는 것이다. 지금은 검찰의 네티즌 수사에 항의하며 대검 게시판에 ‘자수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는 상황이다. 한 시민은 “참여정부 때 대통령에게 대들던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라고 오히려 검찰을 질타하고 있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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