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낙하산’ 곳곳에 투입 방송 장악

2008.07.08

특보 출신 ‘공신’들 사장에 앉혀 정권 입맛대로 언론계 ‘내 편 만들기’

‘위기’에 빠진 이명박 정권은 ‘언론사 낙하산 부대’를 통해 구원받을 수 있을까. ‘골치 아픈’ 방송부터 서둘러 장악하겠다는 이 정부의 욕심은 집권 4개월 만에 고장난 브레이크처럼 요동치고 있다. 정권의 언론 장악을 반대하는 여론에도 불구하고 스카이라이프, YTN, 아리랑TV, 한국방송광고공사 등 언론계 사장 자리에 지난 대선에서 자신의 언론·방송특보로 일했던 ‘공신’들을 차례로 내려보냈다.

상식과 원칙을 저버린 MB식 ‘낙하산 사장’은 언론계 종사자들은 물론 촛불 민심에도 뜨거운 불을 질렀다. 언론사의 사장 자리에 대통령의 특보 출신들이 줄줄이 채워지는 데 기겁한 시민들은 ‘YTN 구본홍 반대’ ‘KBS 수호’ 등을 외치며 매일 저녁 방송사 앞에서 촛불을 밝히고 있다.

시나리오 중심엔 최시중 방통위원장

스카이라이프 사장에 임명된 이몽룡씨는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방송특보였다.

스카이라이프 사장에 임명된 이몽룡씨는 이명박 대선 캠프에서 방송특보였다.

현재 이명박 정권의 ‘언론특보’ 출신 낙하산 사장 행렬은 가히 매머드급이다. 첫 시작은 이명박 대선 캠프 방송특보였던 이몽룡씨의 스카이라이프 사장 임명이다. KBS 보도국장과 부산총국장을 지낸 이씨는 지난 대선 이명박 후보 캠프에서 언론특보로 일했다. 고려대 출신이다. 아리랑TV 사장으로 임명된 언론특보 출신인 정국록씨는 경남고 출신으로 진주 MBC 사장을 지냈다.

방송총괄본부장을 맡았던 구본홍씨는 MBC 사장을 ‘포기’하고 YTN 사장을 꿰찼다. 그는 경남고와 고려대 출신이다. 선거가 끝나고 대통령직 인수위 자문위원이었던 구씨는 지난 1월 MBC 사장 공모에 도전할 것이란 소문이 파다했으나 응모하지 않았다. 당시 전국언론노조 MBC본부는 “여당이든 야당이든 정치권에 몸담았거나 정치적 영향력을 통해 사장이 되려는 인사는 사장 후보에 응모하는 순간 곧바로 노동조합의 표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현재 YTN에서는 공채 1기부터 10기까지 구본홍 사장 선임에 반대하는 성명을 내며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언론과 정치권의 ‘거리 두기’를 요구하는 구성원들은 구씨의 사장 임명을 계기로 정부가 추진하는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YTN이 받을 영향도 걱정하고 있다.

아리랑TV 사장에 임명된 정국록씨. 이명박 후보 특보를 지냈다.

아리랑TV 사장에 임명된 정국록씨. 이명박 후보 특보를 지냈다.

방송특보 단장이었던 양휘부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으로 임명됐다. 역시 경남고와 고려대 출신이다. 광고 판매를 독점하는 기관에 캠프 출신 인사를 기용했으니 광고 탄압을 통한 방송 길들이기와 민영미디어랩 도입 등 방송광고 시장 재편을 가속화할 것이란 우려가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YTN, 코바코 등은 모두 이사회와 사장추천위원회 등 ‘독립적인’ 사장 선임 절차를 갖추고 있지만 특보 출신 ‘MB맨’의 사전 낙점 앞에서는 요식 절차로 전락한 양상이다. 게다가 취임 6개월 밖에 안 된 한국언론재단 박래부 이사장의 후임으로 방송특보 출신 최규철씨가 거론되고 있다.

방송특보 단장이었던 양휘부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사장으로 임명됐다.

방송특보 단장이었던 양휘부 전 방송위원회 상임위원은 한국방송광고공사(코바코) 사장으로 임명됐다.

공영방송 KBS에 대해서도 임기가 남은 정연주 사장을 사퇴시키고 낙하산 사장을 내려보낼 것으로 전망된다. 가장 유력하게 KBS 사장 하마평에 오르내리는 인물은 김인규 전 KBS 이사다. 역시 대선 캠프에서 방송전략실장을 맡아 당시 이명박 후보의 TV토론 전략 등을 주도했던 특보 출신이다. 김씨는 그 어떤 자리보다 유독 KBS 사장 자리에 욕심을 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에 “나 말고 KBS 사장 할 사람이 누가 또 있느냐”며 강한 자신감을 내보인다는 소문이 언론계에선 이미 공공연하다. 현재 김씨는 성균관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일각에선 KBS 사장을 노린 일종의 ‘세탁 과정’에 들어간 것이 아니냐는 눈총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김씨의 KBS 입성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03년 노무현 정부 시절, 언론특보 출신 서동구씨의 KBS 사장 임명을 막아낸 전례에서 알 수 있듯 낙하산 사장을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KBS 내부의 긴장감이 팽배하다. KBS를 정권의 전리품으로 내줄 수 없다는 언론현업단체와 시민사회단체의 반발도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따라서 청와대가 반발 여론이 비등한 ‘김인규 카드’를 접고 새로운 카드를 제시할 것이란 예상도 끊이지 않고 있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자문위원을 맡았던 구본홍씨는 YTN 사장으로 내정됐다.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자문위원을 맡았던 구본홍씨는 YTN 사장으로 내정됐다.

이 모든 시나리오의 중심에는 최시중씨가 있다는 것이 언론계의 중론이다. 예전 같으면 “방송통신위원회가 뭐하는 곳이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을 테지만 촛불 정국을 타고 부쩍 유명해진 최시중 방통위원장은 이 모든 방송 장악 시나리오를 직접 지휘하고 실행하는 총감독 격이라는 것이다. 최시중 위원장은 애초부터 자신을 ‘전천후 요격기’라고 말할 만큼 이명박 대통령의 손발과 병풍을 자임했다. 빈말은 아니었다. KBS 이사장이었던 김금수씨를 만나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종용하는 듯한 압력을 행사하고, 국무회의와 관계기관 대책회의에 참석하는 등 노골적인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방송과 인터넷 때문에 미 쇠고기 수입 반대 여론이 확산됐다”고 불만을 터뜨리며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낙하산 부대’ 시나리오를 실행에 옮기고 있다.

KBS이사회도 여당 인사들로 보충
‘낙하산 사장’뿐 아니라 언론계 주요 요직에 이명박 정권의 입맛에 맞는 인사들로 채우는 것도 문제다. 최근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회동이 언론 등에 공개된 책임을 지고 자진 사퇴한 김금수씨 후임으로 KBS 이사장이 된 유재천 전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 대표는 정연주 사장의 연임 저지운동을 펼치고, KBS의 수신료 인상을 반대한 대표적 인사다. 그는 KBS 이사장으로 선임된 직후 낸 소감문에서 “KBS 2TV 민영화 원칙은 가져본 적 없지만 다양한 논의는 해볼 수 있다”는 여운을 남겨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한나라당과 정부가 추진하려는 방송민영화 등 방송구조 개편에 일정하게 행보를 맞출 것이란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유재천 이사장을 비롯해 한나라당 성향의 이사들이 보궐이사로 채워지면서 구도가 뒤바뀐 KBS 이사회가 앞으로 ‘정연주 사장 퇴진 권고’ 등 정권의 의도대로 뛸 공산도 더 커졌다.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그늘에 가려져 있긴 하지만 송도균 부위원장을 비롯해 이경자·이병기·형태근 방통위원의 면면도 미디어 공공성보다는 탈규제와 산업 육성 쪽에 가깝다. 한나라당 추천의 송도균 부위원장은 중앙일보와 KBS를 거쳐 SBS 사장을 지냈다. 그에 대한 언론운동 진영의 평가는 대체로 “무난하다”는 것이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지상파 민영화 등의 정책을 그대로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 야당인 민주당이 추천한 이병기 교수와 이경자 교수는 언론운동 진영에서 평가를 유보한 경우다. 성향을 파악할 만한 도드라진 무엇이 없다는 것이 이유인데 이는 결국 정부와 한나라당, 최시중 위원장이 요구하는 흐름에 행보를 맞추게 될 것이라는 관측을 낳는다. 정부와 한나라당의 시장주의 언론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거나 막아내기에 역부족이 아니겠냐는 회의적인 평가는 이를 견제하고 감시할 인물을 추천하지 못한 야당의 한계로 귀결된다.

최근 촛불 정국에서 뜨겁게 달아오른 ‘조·중·동 불매 소비자 운동 게시물’ 불법 여부 심의로 주목받고 있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위원장 박명진)도 논란의 불씨를 갖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민간기구로 성격을 바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에 유리한 구조로 출발했다. 여야 추천 비율이 6 대 3인 현 구조는 방송과 통신의 정치적 독립성을 담보할 ‘균형’과 ‘견제’로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서정은<미디어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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