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심장을 향해 쏴라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2021.04.19

저주받은 집안의 악몽과 비극적 일상

청학동 서당에서 일어난 학생폭력 사건에서 사드 후작의 <소돔 120일>이 떠올랐다. 가해자들이 저지른 엽기적이고 혐오스러운 일련의 행동은 새삼 인간이 무엇이고, 교육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한다. 학교와 군대처럼 스스로 선택하지 않은 단체생활에서 갈등과 ‘왕따’는 필연적이다. 잘하지 못하는 일을 의무적으로 하다 보면 좌절감이 커지고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시키는 것은 짜증을 돋우니까 말이다.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박하

마이클 길모어 지음 이빈 옮김·박하

그래서 교사의 역할이 중요하다. 동물적 공격성을 순화시켜 몸과 마음이 제대로 자라도록, 그래서 앞날에 맞게 될 어떤 사람과도 잘 지낼 수 있도록 틀을 잡아줘야 한다. 그런데 학교보다 중요하고 선생보다 결정적인 영향력을 가진 함수가 있다. 가족이다. 부모는 유전과 환경 모두에 관여하면서 인간의 성장을 좌우한다. 집마다 있는 신적 존재인 것이다. 문제는 사랑과 관용 대신 폭력과 증오가 난무하는 신들의 전쟁이다. 교전과 휴전이 거듭되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심각한 트라우마를 안게 된다.

<내 심장을 향해 쏴라>는 아마겟돈의 한복판과 같았던 집안을 헤쳐 나온 막내의 임상보고서다. 부모와 4형제로 구성된 6인의 가족 내력은 떠돌거나 싸우거나로 요약된다. 친부에게 인정받지 못한 아버지의 상처는 아내와 자식에게 학대로 분출됐다. 독실한 모르몬교 가정에서 생의 모험을 꿈꾸며 결혼한 어머니는 한평생 남편과 다투고 또 다퉜다. 다 함께 교회에 가거나 피크닉을 떠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게다가 둘째가 친자가 아니라는 아버지의 의심은 숱한 반항과 비행, 마침내 ‘묻지 마 살인’을 잉태하는 불씨가 됐다. 그나마 아버지가 환갑에 낳은 막내만이 부성애를 느끼며 자랐지만, 그 또한 부모 중 한쪽을 선택하라는 정신적 폭력에 노출돼 ‘사랑은 살인’이라는 죄책감을 늘 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결혼과 출산을 통해 만들어진 길모어 집안은 청소년 비행이란 표현이 등장하기 시작한 1950년대를 거쳐 1976년 둘째 게리의 살인 사건으로 갈가리 찢겼다. 10여년간 사형집행이 중단됐던 미국에서 사형제를 부활시킨 ‘게리 길모어 사건’은 범인이 사형을 그것도 총살형을 원했다는 점에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애써 과거를 잊으려 했던 저자는 가족과 자신의 상처를 보듬어 안기 위해 형과 부모의 비밀을 추적한다. 귀가 시간 5분만 늦어도 매질을 하고 식탁에서 빵 부스러기를 흘렸다고 주먹을 날리던 아버지, 크리스마스 만찬의 백미인 칠면조 요리를 사소한 말다툼 끝에 바닥에 내팽개친 어머니의 발작, 끊임없이 부모의 관심과 사랑을 갈구하지만 간단히 묵살되고 외면당하던 형의 좌절과 분노.

결과적으로 폭력적 가족은 폭력적 사회의 동형 구조물이다. 중죄인의 피를 요구하는 모르몬의 교리, 선주민의 학살로 건설된 유타의 도시, 법의 이름으로 유린당하는 인권처럼 종교와 역사, 사회의 삼각형이 게리네 사람들을 꼭짓점까지 몰아붙인 것은 분명하다. 그럼에도 저주받은 집안의 운명을 느끼며 계속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저자의 일상은 비극적이다. 다시 괜찮아질 수는 없을까.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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