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은 잎

이현우 서평가
2021.04.12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 예고하는 작품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간판 작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대표작은 <백년의 고독>(1967)이다. 마르케스 자신은 이 작품이 누린 엄청난 인기와 명성에 부담을 느끼며, 그 이후에 발표한 <족장의 가을>을 대표작으로 꼽았지만, <백년의 고독>이 갖는 문학사적 의의는 확고하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특징과 성취를 집약하는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어서다. 때문에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이 책의 탄생과정이다. 그보다 먼저 쓰인 작품들은 <백년의 고독>에 이르는 여정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첫 소설 <썩은 잎>(1955)도 마찬가지인데, 뒤이어 발표한 <아무도 대령에게 편지하지 않다>(1958)와 함께 <백년의 고독>을 예고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민음사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송병선 옮김·민음사

<썩은 잎>과 <백년의 고독>을 이어주는 연결고리는 무엇보다 ‘마콘도’라는 공간적 배경이다. 마르케스의 실제 고향인 콜롬비아의 마을 아라카타카를 모델로 한 마콘도는 <백년의 고독>이 세계문학의 고전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가장 유명한 문학적 지명 가운데 하나가 됐다. 그렇지만 실제 지명 대신에 마콘도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불리면서 마콘도는 상징적·신화적 의미도 획득하게 된다. 즉 마콘도는 콜롬비아의 축소판이면서, 더 나아가 라틴아메리카 대륙 전체를 상징하는 공간이 됐다. 그것은 1982년에 마르케스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면서 수상연설문의 제목을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이라고 지은 데서도 시사를 얻을 수 있다. 마르케스에게서 ‘백년의 고독’은 곧 ‘라틴아메리카의 고독’의 다른 말이기도 했다.

마콘도와 라틴아메리카를 등치시킨다면 자연스레 마콘도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라틴아메리카의 현대사와 비교하게 된다. 그것이 <썩은 잎>을 읽는 일차적인 독법이다. 이름이 나오지 않는 퇴역 대령(외조부)과 그의 딸 이사벨(어머니) 그리고 역시 이름이 나오지 않는 그의 손자(아이)가 번갈아가며 화자로 등장하는 이 소설의 줄거리를 연대순으로 정돈하면, 대령의 가족이 1898년, 마콘도에 정착한 이후에 일어난 중요한 사건은 1903년에 의사와 본당 신부가 동시에 마을에 등장한 것이다. 마콘도라는 지명의 상징성을 고려하면 서양의 과학(의사)과 종교(신부)가 한꺼번에 마을에 유입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소위 서양식 근대와의 조우이면서 근대로의 전환이다.

문제는 그에 뒤이어 바나나 회사가 들어온다는 점이다. 마을의 연대기로는 1907년에 벌어진 일인데, 바나나 회사가 마을에 도착하고 철도 부설작업이 이루어지면서 근대화는 새로운 단계로 접어든다. 당장 바나나 회사가 노동자들을 위한 진료소를 설치하면서, 그들보다 먼저 들어왔던 의사는 존재감을 상실하고 칩거한다. 그리고 점차 마을의 부패와 타락이 진행된다. ‘썩은 잎’은 이러한 부정적 변화의 상징이다. 바나나 회사와 함께 다른 마을의 쓰레기 인간들과 쓰레기 물건들이 마콘도로 유입됐고 마을을 오염시켰다. 그러다 1915년, 바나나 회사가 철수하지만, 마콘도는 예전의 모습을 회복하지 못한다. 썩은 잎이 모든 것을 가져왔고 또 모든 것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마콘도는 근대와의 조우 이전으로 다시 돌아갈 수 없게 됐지만, 서양과 같은 자연스러운 근대적 발전도 허용되지 않는다. 이러한 비극을 절묘하게 다룬 작품이 <백년의 고독>이라는 사실을 <썩은 잎>은 요약적으로 보여준다.

<이현우 서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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