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원격대학의 테크놀로지와 교육의 미래

2016.06.21

지난 10년간 사이버대학은 그 교육효과에 대해 또렷하게 증명할 수 있는 사례가 보고된 적이 없다.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누군가 망치고 있다는 점에 분노해야 한다.

19세기 우편시스템을 이용해 속기나 언어를 가르치던 일이 20세기에는 라디오와 TV를 이용해 방송교육으로 발전하고, 21세기에는 인터넷을 이용한 사이버대학 등으로 발전해 왔다. 원격대학의 이념은 피교육자의 지리·사회·경제·연령·신체 등 어떠한 여건이나 처지를 막론하고 하등의 제약을 가하지 않는다는 교육철학에 기반한다. 테크놀로지는 제약으로부터 학생과 선생을 해방시키는 기초다. 원격교육(distance education)의 역사는 곧 테크놀로지의 변천사이며, 앞으로도 새로운 기술에 의해 진화할 것이다.

한국의 경우, 최초의 원격대학은 1972년 설립한 한국방송통신대학이었다. 농어촌 직장인·군인 등 근로 청년들과 주부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를 부여해 국민 교육수준의 향상을 꾀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당시 이 방송의 가청지역은 전국의 40%에 불과했다. 방송을 듣지 못한 채 교재만으로 독학하라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결국 KBS 3채널과 MBC라디오 전국망을 이용해 간신히 방송교육을 시작할 수 있었다. 반면, 1986년 일찍이 힐츠(Starr Roxanne Hiltz)는 TV나 라디오 같은 일방향 미디어가 아니라 인터넷이라는 쌍방향 미디어를 통해 과거와는 질적으로 다른 의사소통이 교수와 학습자 간 원격으로 이루어진다는 가상교실(The Virtual Classroom)의 개념을 제시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망이 곧바로 실현되기는 어려웠다. 개인용 컴퓨터와 네트워크 통신기술의 보급이 대중화되길 기다려야 했다. 실험적인 기술을 교육현장에 적용해 보편적인 교육시스템을 새로 구축하는 일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The Virtual Classroom: Learning Without Limits Via Computer Networks. Starr Roxanne Hiltz. Intellect Books, 1994

The Virtual Classroom: Learning Without Limits Via Computer Networks. Starr Roxanne Hiltz. Intellect Books, 1994

현재 21개교에 재학생 10만명
2000년대의 한국은 세계 어느 나라보다 IT 인프라를 잘 갖추고 있었다. 미국이나 영국의 원격대학과 비슷하거나 더 월등한 환경에서 사이버대학을 구축할 수 있었다. 정부는 세계 교육의 변화를 재빠르게 수용해 나갔다. 교육과학기술부가 평생교육을 진흥할 목적으로 1998년 ‘가상대학 프로그램 시범운영대학 선정계획’을 발표했고, 약 2년간 시범운영을 거친 후 평생교육법을 공표했다. 2000년부터 사이버대학의 인가를 시작했다. 2001년에는 9개였던 것이 2008년에는 17개 대학이 되었다. 2008년에는 고등교육법 제2조에 의해, 일반 대학과 같은 학위수여기관 자격을 얻었다. 이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현재 21개교 약 10만명의 재학생이 사이버대학을 통해 교육받고 있다. 사이버대학은 원격교육의 진화 끝에 있는 듯 보인다. 굳이 사이버대학이 아니더라도 민간교육기업의 인터넷 강의를 쉽게 접할 수 있으며 그 사용자도 많다. 이쯤 되면 힐츠의 가상교실 유토피아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어야 한다.

2000년대 사이버대학의 미래를 예견하는 자들은 이렇게 썼다. 사이버대학을 통해 한국인들은 미국의 명문대 학위도 어렵지 않게 취득한다. 아침 11시에 일어나 늦은 아침을 먹으며 집에서 첫 강의를 수강하고, 여행을 하면서도 노트북으로 기말고사를 본다. 직장인들은 틈틈이 자기계발을 하거나 업무에 필요한 교육을 사이버대학을 통해 받는다.”(1999. 4. 3. <동아일보> 3면 ‘안방서 미 대학 학위 딴다’, 1999. 11. 11. <동아일보> 11면 ‘뉴 밀레니엄 뉴 라이프 (6) 사이버 학교’)

그러나 현실은 이렇다. 영미권 명문대의 사이버대학 학위를 따려고 해도 영어의 진입장벽이 커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게다가 한국에 상륙하려던 외국 사이버대학들은 벌써 철수해 버려서 절차를 밟기 어렵다. 사회적으로 사이버대학의 학위는 직장인들의 경력 형성을 위한 것쯤으로 취급하고 실제로 그렇게 운용된다. 한 사이버대학은 돈만 받고 학점을 퍼주다가 감사에 걸렸고, 또 다른 사이버대학의 이사장은 교비 80억원을 횡령했다.(2013. 11. 7. <경향신문> ‘친·인척 채용… 무시험 학점… 학교 돈 유용… 사이버대 사이비 운영’) 학습 의욕을 가진 학생들이 있으나 여전히 일방향적이고 형식적인 교안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돈이 되는 강의는 마구잡이로 개설해 수강생을 늘린다.(2010. 12. 17. <경향신문> ‘서울대, 돈만 된다면 늘리고… 온라인 유료강의 중·고생 확대’)

여기에 10년 전 개인적인 이야기지만 필자가 사이버대학에서 튜터로 일한 경험도 추가해야 할 듯하다. 필자는 수업을 보조하는 튜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간과 기말고사 문제를 출제하고 채점했다. 그 수업은 필자의 전공과는 거리가 먼 과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새로운 교과목 강의 스크립트를 짜는 일도 했었는데, 담당교수는 필자가 시나리오를 써주지 않으면 강의 녹화가 불가능했다. 그는 학식이 부족한 것은 아니었으나 녹화강의에 적절한 교수법을 갖추지 못했다.

K-MOOC의 강의동영상, 문학이란 무엇인가?-정명교(연세대)

K-MOOC의 강의동영상, 문학이란 무엇인가?-정명교(연세대)

디지털 졸업장 공장이 된 대학
새로운 미디어가 그 도입 초기, 좌충우돌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이제부터라도 원격대학의 테크놀로지가 안정적으로 사회화되었다는 것을 방증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연구논문의 페이퍼 워크나 통계분석은 테크놀로지의 사회화를 제대로 증명할 수 없다. 대신 공적으로 인준할만한 스토리텔링의 사례가 떠오르는지 확인해보자. 그런 면에서 사이버대학은 그 교육효과에 대해 또렷하게 증명할 수 있는 케이스가 보고된 적이 없다. 더 나은 교육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테크놀로지의 역량이 가속화되지 않는 점에 분노해야 한다. 어쩌면 한국의 교육문화라는 것이 배우는 일보다는 학위가 주는 간판을 중요시했기 때문에 원격교육의 취지를 살리기 어렵다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학습자의 욕망이 아니라 그 욕망을 추인하고 이용하는 쪽에 있음을 직시해야 한다. 이 점에서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매한가지다. 투박한 착취냐 세련된 착취냐의 문제일 뿐이다. 기술사학자 데이비드 노블(David F. Noble)은 <디지털 졸업장 공장>(그린비, 2006)을 통해 미국 지식산업 자본가들이 원격대학의 신화를 과장하면서 한편으로는 학위 장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19세기 말부터 시작된 미국의 우편교육 붐을 분석하면서 지금도 반복되는 사기극의 원형이라고 소개한다.

우편교육이 돈이 될 것으로 전망되자 하버드나 컬럼비아 같은 명문 대학들이 원격교육 사업에 나섰다. 당시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받을 수 있는 교육이라는 선전문구는 작금의 사이버대학 붐과 너무나 닮아 있다. 교육이 필요한 노동자들을 학생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정작 교육은 당장 생계가 어려운 시간강사나 대학원생들이 도맡았다. 많은 양의 과제를 처리하는 이들이 질 높은 교육을 제공할 리 만무하다. 그는 로버트 레이드의 연구를 인용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교실은 없고”, “교수들은 종종 훈련되지 않았거나 존재하지 않고”, “대학의 행정담당자들은 그들이 제공하는 것과 똑같이 비도덕이고 이기주의자다.” 그는 오늘날 사이버대학 붐 뒤에는 이보다 더 악랄한 음모가 있다고 지적한다. 교수에 의해 만들어진 교육 콘텐츠들은 교수의 수업을 수업교재의 차원으로 전락시킨다. 이제 더 이상 교수들의 활동이 필요하지 않게 된다. 교수가 떠나도 작업물은 남게 되어 교수는 잉여인력이 된다. 체화된 교수의 지식과 수업설계 능력이 기계로 전이되어 학교 행정국의 손아귀에 떨어지게 된다. 이제 행정국은 패키지화된 교과목을 전달하기만 하면 되는, 숙련도 낮은 지식노동자만을 고용하면 된다. 이것은 우리에게도 곧 다가올 미래의 암울한 풍경이다.

그렇다면 원격교육의 주도권을 정부에 맡기는 것은 어떨까? 1996년 교육부는 에듀넷을 만들어 국가멀티미디어 교육지원센터로 기능하고자 했었다. 기초교육뿐 아니라 고등교육의 원격지원을 위한 기반 시스템으로 구상되었다. 가까운 시일에 초고속망이 전국적으로 갖춰지면 에듀넷의 원격학교를 통해 평생교육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공표했다. 20년이 지난 지금 에듀넷은 본래의 목표에 제대로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학습자료의 무료화라든가 농어촌 지역을 위한 수업자료 개발 등은 칭찬할 일이지만 그 정도뿐이다. 원격교육 콘텐츠를 선도적으로 만들고 보급하고 있지 못하다. 규모나 인기면에서는 민간 업체의 인터넷 강의가 앞선다.

아프리카TV를 이용한 원주고등학교의 방학식 장면. / 출처 : http://m.blog.naver.com/sumina00/20202227335

아프리카TV를 이용한 원주고등학교의 방학식 장면. / 출처 : http://m.blog.naver.com/sumina00/20202227335

귀감이 될만한 살만 칸의 성공사례
지식산업 자본가나 정부가 아닌 곳에서 그 가능성을 얻어 보자. 칸 아카데미의 설립자 살만 칸의 성공사례가 귀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멀리 사는 조카의 수학실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유튜브에 과외영상을 업로드하면서 온라인 교육을 시작했다. 어느 날 그의 수학 강의를 빌 게이츠의 자녀가 보게 되고, 이를 통해 칸의 비범한 능력을 알아본 빌 게이츠가 수백만 달러를 칸 아카데미에 기부하게 된 이야기는 유명하다. 그의 강의는 유독 학습효과가 높다고 평가되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흥미롭다.

그가 유튜브를 사용한 이유는 돈을 들이지 않고 동영상을 자유롭게 업로드할 수 있는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유튜브는 당시 10분 제한으로 업로드 분량을 제한했는데, 그래서 언제나 수업영상을 10분 단위로 끊어 올려야 했다. 우연하게도 10분이라는 시간은 네티즌들이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가장 적당한 시간이었다. 또한 자신의 얼굴을 비춰줄 카메라와 조명을 구입할 수 없어 검은 전자칠판만을 녹화했는데, 마치 옆에서 같이 지도해주는 과외선생님과 같은 정서적 효과를 냈다. 학생은 선생의 얼굴을 보면 학습에 오히려 방해를 받는다.

기술과 자본의 제약에서 시작한 매우 사적인 영상물이었지만 그의 콘텐츠는 누구나 공부하고 싶게 만들었다. 게다가 칸은 유능하게도 간단한 퀴즈와 상호작용을 요구하는 프로그램을 만들 줄 알았고, 이 능력을 이용해 지속적으로 학습자의 요구에 맞춰나갔다. 그의 강의 스타일은 수년간의 피드백과 연구 끝에 완성한 것이며, 지금도 계속해서 수정·개발 중이다. 각종 기부금이 몰려들고 있는 칸 아카데미는 칸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수학, 과학, 예술사, 역사, 생물학 분야의 강의 수천 개를 제작해 무료공개하고 있다. 칸의 강의처럼 완전히 무료로 공개되는 강의들을 MOOC(Massive Open Online Courses)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코세라(coursera), 에드엑스(edX), 유다시티(udacity), 노보에드(NovoED), 퓨처런(Futurelearn) 등의 단체들이 있다. 대개 비영리단체이거나 기업체일지라도 기본적으로 무료로 강의를 공개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우고 있다. 과거의 어떤 원격교육보다 본연의 개방성과 상호작용성을 유지하려는 기조가 형성되고 있다. 비유하자면 웹1.0과 웹2.0의 차이와도 같다.

기존의 사이버대학의 커리큘럼과 MOOC의 차이는 교육을 네트워크 위에 ‘어떻게’ 얹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서 나온다. MOOC는 사이버대학이 설립 초기 약속했던 각 학교단위 간 자유로운 학점 교류를 구현하고 있으며, 배우는 선에서 모든 것이 공짜다. 이들의 수익모델은 기부나 코스 수료를 확인하는 증서 발급에서 나온다. 이 증서는 기존 대학의 학점 같은 것이 아니다. 성적 대신 학습자가 다양한 전공과목을 어떻게 믹스해 왔는지 추적하여 보여준다. 즉 자신의 성적이 아니라 포트폴리오를 보여주는 방식이다. 이들은 이제 우리의 교육이 평가가 아니라 창조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칸의 사례에서 배워보자. 그는 강의의 난이도를 학습자별로 더욱 세분화하는 방법을 택한다. 하나의 난이도를 가진 코스는 본의와 다르게 솎아내기를 하지만 다양한 난이도를 가진 코스는 천천히 그러나 결국은 최종단계에 이르도록 학습자를 이끌기 때문이다. 즉 그는 80%짜리 이해는 없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학습자가 100% 이해에 이르도록 다양하게 루트를 열어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칸의 방법은 간단한 것이다. 도처에 널려 있는 인터넷 자원을 가지고 최대한의 상호작용을 디자인하는 일이다. 이 점에서 MOOC는 기술이 아니라 배려의 문제다.

데이비드 노블은 기술이 곧 종교가 되는 순간을 피하라고 충고한다. 과거 ‘사이버대학은 교육혁명이다’라는 말이 대표적이다. 마찬가지로 현재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주도해 만들고 있는 한국형 MOOC에 대해서도 똑같이 조언해야 한다. ‘MOOC는 교육혁명이다’라는 주장을 하기 전에 ‘왜’라고 물어야 하며, ‘어떻게’를 같이 구상해야 한다. 그 파트너는 상호작용을 밥 먹듯이 하면서 자란 아이들이 되어야 한다. 아프리카TV로 중계되는 방학식에서 가상 화폐인 초콜릿을 감히 교장선생님에게 쏘는 그런 아이들 말이다.

<오영진 한양대 ERICA ‘기계비평’ 기획자>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