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끝)스마트폰 터치스크린의 ‘매끄러움’

2016.06.28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볍게 쓸어서 사진이나 전자책 페이지를 넘기고, 화면 위의 개체를 손가락 끝에 달고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기술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스마트폰 위에서 세계는 평평하고 매끄러운 곳이 되었다.

스마트폰은 2000년대 테크노컬처의 가장 쉽고 강력한 상징이다. 창조경제와 창업열풍의 상징이고, 3차든 4차든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산업혁명의 상징이고, 언제 어디서든 연결되어 있지만 가깝지는 않은 인간관계의 상징이고, 손가락 끝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고 싸우는 라이프스타일의 상징이다. 스마트폰은 또한 이 시대를 지배하는 하나의 감각 혹은 욕망인 ‘매끄러움’을 상징한다. 스마트폰의 모든 기능과 의미가 ‘매끄러움’이라는 느낌으로 표현될 수 있다. 매끄러운 연결과 결합, 매끄러운 이동, 매끄러운 소비가 스마트폰을 장착한 2000년대 테크노컬처의 지향점이다.

매끄러움은 우리를 편하게 하고, 즐겁게 하고, 또 현실을 긍정하게 하고 미래를 낙관하게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마트폰의 매끄러움을 환영하는 동시에 경계해야 한다. 최근 번역 출간된 <아름다움의 구원> 첫 장에서 한병철 교수는 마치 스스로 재생하는 ‘인공 피부’처럼 매끄러운 LG의 스마트폰 지플렉스를 언급했다. 이 제품의 상처나지 않는 피부는 부드러운 곡면을 이루고 있어서 통화할 때는 얼굴에, 보관할 때는 엉덩이에 매끄럽게 달라붙는다. 한 교수는 “이러한 밀착성과 무저항성이 매끄러움의 미학의 본질적인 특징들”이며, 스마트폰이 구성하는 세계는 제프 쿤스의 매끄러운 예술 작품이 보여주는 세계와 닮아 있다고 지적한다. 그것은 “미식(美食)의 세계, 순수한 긍정성의 세계이며, 그 안에는 어떤 고통도, 상처도, 책임도 없다.”

5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미디어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구글의 새로운 스마트폰들을 바라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5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구글 미디어 행사에서 한 참석자가 구글의 새로운 스마트폰들을 바라보고 있다. / AFP연합뉴스

가장 작은 단위에 집약적 기술 구현
매끄러움이 하나의 기술적·문화적 특성으로서 21세기에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다. 한국인들은 1960년대의 플라스틱에서 거친 자연을 대체하는 매끄러운 물질을 경험했고, 1970년대의 고속도로에서 전국을 하나로 이어주는 매끄러운 이동을 경험했고, 1980년대의 인체공학적 사무용 가구에서 일하는 몸을 떠받쳐주는 매끄러운 구조를 경험했다. 매끄러움은 현대의 다양한 테크놀로지를 하나로 묶어주는 기술적 스펙이자 문화적 가치가 되었다. 테크놀로지의 경험을 통해 한국인들은 깨끗하고 풍요롭고 편안한 세계, 마찰과 갈등과 위험이 없는 매끄러운 세계를 꿈꾸었고, 그 불가능성에 절망하기도 했다. 스마트폰은 매끄러움이라는 기술감각적 특성을 가장 작은 단위 안에 가장 집약적으로 구현함으로써 한국인들을 다시 한 번 꿈꾸게 한다.

스마트폰에 이르러 매끄러움의 가장 선명한 경험은 손가락으로 집중되었다. 많은 이들에게 스마트폰의 위력은 빠른 계산 속도가 아니라 터치스크린을 누르는 손끝의 감각을 통해 인지되었다. 2009년 애플의 아이폰이 한국에 들어오기 전까지 스마트폰과 터치폰은 서로 구별되는 범주의 제품으로 다루어졌고, 이를 결합하는 ‘터치 스마트폰’이 새로운 경향으로 제시되기도 했다. 지금은 손가락 터치로 작동하지 않는 스마트폰을 상상하기 어렵고, ‘스마트’는 직관적인 사용자 인터페이스를 통한 손쉬운 작동과 연결이라는 뜻을 포함하게 되었다. 매끈한 화면에 손끝을 대자마자 경쾌하게 반응하는 애플리케이션은 우리의 소통과 오락과 구매를 매끄럽게 해주었다.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볍게 쓸어서 사진이나 전자책 페이지를 넘기고, 화면 위의 개체를 손가락 끝에 달고서 이곳저곳으로 돌아다니는 것은 기술적으로 또 심리적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스마트폰 위에서 세계는 평평하고 매끄러운 곳이 되었다.

[한국 테크노 컬처 연대기](25 끝)스마트폰 터치스크린의 ‘매끄러움’

이 평평하고 매끄러운 세계, 즉 스마트폰의 화면을 소중하게 다루고 지켜내는 일에 상당한 돈과 정성이 들어가고 있다. 금이 간 스마트폰 화면은 주위 사람들의 즉각적인 공감과 동정을 유발하고, 지문 자국으로 뒤덮인 화면은 보는 사람의 마음을 어지럽게 한다. 물리적 충격으로 화면이 깨지거나 금이 가는 것을 막아주는 케이스와 지문, 기름기, 긁힘을 막아주는 보호필름은 대부분의 스마트폰 사용자들에게 필수 아이템이 되었다. 2013년 KT경제경영연구소가 의뢰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스마트폰 사용자의 94%가 케이스를, 90%가 보호필름을 쓰고 있었다. 이 무렵 스마트폰 케이스는 약 1조원, 보호필름은 약 4800억원에 달하는 큰 시장을 형성했다. 이는 일차적으로 스마트폰이 사람들이 몸에 지닌 물건 중 가장 비싼 것이기 때문이겠지만, 스마트폰의 핵심이 청각을 이용하는 전화가 아니라 시각과 촉각에 호소하는 터치스크린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기도 하다.

터치스크린이 상처를 입거나 지저분해지는 것을 막아주는 보호필름의 한 가지 단점은 손가락과 스마트폰 표면의 강화유리 사이에 얇은 막을 집어넣음으로써 원래의 매끄러운 촉감을 감소시킨다는 것이다. 또 시각적인 선명함과 투명함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스마트폰 자체의 강화유리가 제공하던 매끄러운 시각과 촉각을 손상하지 않는 동시에 그것이 직접 외부의 자극에 노출되지 않도록 막는 일은 논리적으로 또 기술적으로 까다로운 과제이다. 이 어려움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으로 등장한 것이 보호필름 자체를 강화유리로 만들자는 생각이다. 0.2㎜ 정도 두께에 경도 9H 정도의 단단한 강화유리를 스마트폰 위에 덧씌우면 시각과 촉각의 매끄러움을 유지하면서 보호막의 기능도 충실히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유리 필름은 스마트폰 화면 보호필름 중 고급 제품군에 속한다. 유리를 유리로 덮어서 보호하는 어색함을 감수하면서까지 손가락이 느끼는 매끄러움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강력한 의지가 엿보인다.

음성을 대신한 새로운 대화의 방식
스마트폰 화면의 평평함과 매끄러움은 그것을 통한 의사소통에 ‘깊이’가 결여되어 있다는 의심을 불러 일으킨다. 흔히 대화의 깊이와 연결지어 생각하는 대화의 내밀함이 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음성 통화를 하는 두 사람이 자신들의 대화에서 온전한 주역을 맡았다면, 카카오톡과 같은 모바일 메신저에서 대화를 나누는 사람은 자신의 대화의 관객이 된다. 대화에 참여하는 동시에 한 발 물러서서 대화를 관람하는 것이다. 대화의 내용은 시간에 따라 화면 위쪽으로 움직여가는 대본의 모습을 띤다. 지나간 대화의 흐름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어서 편하지만, 이것은 언제라도 캡처되어 인터넷 공간에 전시될 가능성을 전제하는 대화이다. 발화에서 전시까지 모든 과정이 손가락 끝에서 매끄럽게 진행된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 숨진 김모군의 영결식이 치러진 6월 9일 구의역 안에 시민들이 검은 리본과 함께 추모메시지를 빼곡히 걸고 있다.

구의역에서 스크린도어 정비를 하다 숨진 김모군의 영결식이 치러진 6월 9일 구의역 안에 시민들이 검은 리본과 함께 추모메시지를 빼곡히 걸고 있다.

스마트폰은 느림과 불편함에서 나오는 ‘깊이’ 대신 부드럽고 빠른 실시간, 쌍방향 소통의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었다는 평가도 있다. 그러나 터치스크린 위의 대화는 오히려 대면 대화나 음성 통화의 격렬한 실시간성과 쌍방향성을 회피하는 수단이다. 전통적인 대화에서 종종 경험하는 쑥스러움, 긴장감, 또는 짜증이 스마트폰 대화에서는 한결 줄어든다. 대면 대화나 음성 통화를 매끄럽게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각종 언어적·심리적·신체적 기술들이 스마트폰 메신저 대화에서는 덜 중요해지거나 그 방식이 바뀌었다. 스마트폰 시대의 대화의 문제를 연구하는 셰리 터클 교수가 지적했듯이 이제 상대방의 목소리를 듣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그와 동시에 목소리를 들려주고 듣는 행위가 점점 귀한 일이 되었다. 터치스크린 대화의 매끄러움과 편안함에 비해 목소리 대화는 거칠고 어색하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더 깊이가 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더 많은 노력과 경험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다.

최신 스마트폰은 나름대로의 ‘깊이’를 추구하고 있다. 아이폰 최신 버전에 장착된 ‘3D 터치’는 손가락이 화면을 누르는 세기를 구분하여 사용자가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해준다. 가로와 세로만 있던 터치스크린에 세 번째 축인 ‘깊이’를 도입하여 왠지 3차원의 세계에 더 가까이 다가간다는 느낌을 준다. 아이폰 사용자는 손가락에 힘을 주어 화면을 꾸욱 누름으로써 숨어 있는 내용을 미리 보거나 원하는 기능을 더 빠르게 실행할 수 있게 되었다. 애플은 이것을 “어떤 일이든지 좀 더 깊이 누르기만 하면 너무나도 다양한 방식으로 그 경험이 향상됩니다”라고 설명한다. 당연한 말이지만, 3D 터치가 향상시키는 경험은 ‘현실 세계의 경험’이 아니라 ‘아이폰 사용의 경험’이다. ‘깊이’라는 요소는 터치스크린 위에서 3차원 세계의 복잡성을 경험하도록 해준다기보다는, 세계에서 필요한 부분만 빠르고 선명하게 부각시켜서 모든 일을 더 간단하고 매끄럽게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

스마트폰이 한국 사회에 끼친 문화적 영향 중 하나는 ‘경험’, ‘관계’, ‘깊이’ 같은 말들을 재정의하여 그것을 ‘사용자’, 즉 스마트 기기 사용자를 중심으로 하는 개념으로 만든 것이다. 이 개념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 혹은 사람과 세계 사이가 아니라 사용자와 기기 사이에서, 즉 디지털 인터페이스에서 발생하고 구현된다. 경험이란 사용자가 인터페이스를 겪으면서 획득하는 것이고, 관계란 인터페이스를 통과해서만 생성되는 것이고, 깊이란 인터페이스를 조금 비틀어서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 개념들은 모두 조금씩 매끄러워졌다. 긁히지 않는 강화유리의 보호를 받으며 실패와 고통의 가능성은 최소화되었다. 스마트폰 인터페이스처럼 직관적인 것은 좋아지고, 직관적이지 않은 것은 불편해졌다. 일반 터치와 깊은 터치 사이의 미세한 차이가 터치스크린 안과 밖의 거대한 차이 못지 않게 주목받게 되었다.

터치스크린과 대비, 포스트잇의 재발견
그래도, 아직, 현실은 터치스크린이 아니다. 현실은 터치스크린에 묻은 지문과 기름기보다 조금 더 지저분하고 끈적거린다. 얼마 전 강남역 10번 출구와 구의역 스크린도어에 붙은 포스트잇은 터치스크린의 매끄러움과 닿아 있으면서도 그것과 구별되는 끈끈함을 지녔다. 일회용으로 가볍게 쓰인 다음 흔적 없이 매끄럽게 떼어지고 버려지는 줄 알았던 포스트잇이 거친 현실을 고발하고 거기에 착 달라붙어서 놓지 않으려는 의지의 상징이 되었다. 스마트폰 화면을 옆으로 밀고 3D 터치를 깊게 눌러도 가닿을 수 없었던 공포와 분노가 지하철역 출구의 투명한 벽에 포스트잇을 꾹 눌러 붙이는 것으로 표출되었다. 스마트폰 스크린에서 우리가 그토록 제거하려고 애쓰는 손때와 끈끈함이 포스트잇의 모습으로 매끄러운 스크린도어를 뒤덮었다.

터치스크린에 비하면 포스트잇은 거칠고 불편한 매체이다. 스마트폰 스크린은 세계를 통째로 보여준다는데, 포스트잇은 겨우 한두 개의 문장을 잠시 동안만 담을 수 있을 뿐이다. 기자들은 포스트잇 메시지를 보도하기 위해 노트북 컴퓨터에 일일이 옮겨적어야 했고, 서울시는 강남역 포스트잇이 비를 맞지 않도록 옮겨서 보관해야 했다. 한 번 터치만 해놓으면 클라우드에 영구히 저장되는 매끄러운 감정의 표출 대신, 바람 불면 날아가고 비가 오면 떨어질 포스트잇을 붙이고 보관하는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 오직 한마디를 적어놓기 위해 지하철 2호선을 타고 강남역과 구의역으로 찾아간 사람들은 어떤 변화의 조짐을 보여주는 것일까.

<전치형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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