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후쿠시마 1년, 달라진 일본과 변치 않은 한국

2012.03.13

역사는 2011년 3월 11일을 어떻게 기록하게 될까. 미증유의 사태는 아직 현재진행형이다. 일본 동북 지방을 덮친 쓰나미와는 별도로 ‘후쿠시마 원전폭발’ 사고의 후유증은 그때까지 지속될지 모른다. 20세기 후반 덮친 체르노빌 사건에 이어, 21세기 초반 벌어진 이 최악의 참사를 두고 세계는 바야흐로 변화의 길에 들어서고 있다. 어쩌면 지난해 3월 11일은 문명사적 전환이 일어난 날로 기록될지 모른다. 후쿠시마 1년, 일본과 세계는 어떤 길을 가고 있나. 그리고 우리가 살고 있는 한국의 선택이 과연 올바른 것으로 역사는 기록하게 될까. <주간경향>이 특집기획으로 후쿠시마 원전사태 이후 지난 1년을 되짚어보는 까닭이다. <편집자 주>


2월 28일, 언론을 대동한 일본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이 진행 중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2월 28일, 언론을 대동한 일본 도쿄전력 관계자들이 복구작업이 진행 중인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를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벌써 1년이다. 후쿠시마 제1원전 사고.
지난 2월 28일, 사고 1주년을 맞이하여 일본에서는 민간독립검증위원회가 내놓은 진상조사보고서가 공개되었다. 보고서가 내놓은 ‘내막’은 충격적이다. 사고가 난 3일 후인 3월 13일, 총리실은 ‘최악의 사태’에 대한 논의를 했다. 후쿠시마 원전이 완전 통제불능 상태가 될 경우, 대량의 방사능 누출로 인근 원자력 발전소 작업인원의 철수도 불가피하게 된다. 결국 후쿠시마뿐 아니라 이바라키 현의 도카이 원전에서 ‘멜트다운’이 일어나는 상황(‘악마의 연쇄반응’)이 벌어지게 되면 최악의 경우 인구 3500만명의 도쿄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이를지도 모른다는 논의가 있었다. 정부는 안심하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최악의 위기 직전상황까지 갔다는 지적이다.

사고는 현재진행형이다. 아직도 3000여명의 작업인원이 방사능 피폭을 감수하고 노출된 핵연료봉을 식히는 작업을 하고 있다. 사투는 계속되고 있다. 후쿠시마 사건과 관련한 정보가 신문에 보도되지만 많은 일본 사람들은 정확한 정보가 은폐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2월 말, 일본 후쿠시마 현 미나미소마 시에 거주한다는 42세 여성의 블로그가 화제를 모았다. 학교에서 교편을 잡다가 학원을 운영했던 이 여성은 후쿠시마 사태 이후 자신의 신체에서 일어난 변화를 사진으로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있다. 이 여성은 “지난해 가을부터 겨울 사이에 자신의 이(齒) 대부분이 빠져버렸으며, 지난 2월 말부터 갑자기 왼쪽 자리 대퇴부에 물집이 잡히는 등의 이변이 일어났다”고 주장했다. 방사능 내부피폭의 흔적이라는 것이다.

여전히 진행형인 3·11사고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일어난 지난해 3월 11일을 전후로 세상은 달라졌다. 독일은 이미 가동중단한 2기를 포함해 원전 8기를 가동중단했다. 남은 9기의 원전도 2022년까지 폐쇄하겠다는 계획을 천명했다. 2월 29일, 세계 최장 운전 원전이 가동을 중단했다. 영국의 올드베리 원전이다. 1967년 가동을 시작한 이 원전의 정화작업은 2101년까지 계속될 예정이다. 세계 최대 신규 원전 건설국가였던 중국도 일본 후쿠시마 사고 이후에 원전 추가건설 심의를 중단했다. 심지어 대표적인 원전 수출국인 프랑스도 야당인 사회당 주도로 원전폐기 정책을 내놓았다.

변화 흐름은 공식집계에서도 확인된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집계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에서 가동 중인 원전은 436개. 폐쇄 과정에 들어간 원전은 현재 전 세계적으로 5개다. 현재 건설 중인 원전은 모두 63기인데, 대부분 극동아시아에 집중되어 있다.

2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에 “핵발전을 멈춰라”고 적힌 옷을 입은 남성과 소녀가 참석하러 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2월 19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원전 반대 집회에 “핵발전을 멈춰라”고 적힌 옷을 입은 남성과 소녀가 참석하러 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가장 드라마틱한 변화를 겪은 나라는 역시 사고당사국인 일본이다. 2월 21일 일본 간사이전력의 다카하마 원전 3호기가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을 중단했다. 전체 54기 중 남은 원전은 2기뿐이다. 하지만 남은 2기의 원전도 늦어도 4월 말이면 정기점검을 위해 가동이 중단되고, 해당 지자체가 재가동을 동의하지 않는 형식으로 ‘올스톱’할 예정이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양이원영 환경연합 에너지기후팀 국장은 “물론 일본사회에서 여전히 원자력에너지를 지지하는 세력은 있지만 일본사회는 절약을 이제 강요가 아니라 새로운 도전으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명사적 견지에서 3·11사건은 대재앙이다. 지난해 이 사건이 나기 전까지 21세기 들어 가장 큰 사건은 9·11 테러사건이었다. 그런데 3·11은 비교가 안 된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더 큰 위험이 닥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최열 동아시아탈원전·자연에너지네트워크 공동대표의 말이다. 지난 20세기 가장 큰 사건이 전반기의 히로시마·나카사키의 핵투하라면, 후반에 일어난 것이 체르노빌 사건이다. “20세기의 핵무기와 핵발전소가 일으킨 재앙이 이미 한 차례 인류에게 경고했는데, 그것을 과학기술로 해결할 수 있다는 자만심이 대형 재난을 초래한 것이다.” 최열 대표를 비롯한 한국과 일본의 시민사회인사 200명은 지난해 11월과 올해 1월, 탈원전선언을 발표했다. 최종적으로 3월 11일 일본 도쿄 히비야공원에서 열리는 후쿠시마 사건 1주년 행사 ‘Peace on Earth’ 에서 311인이 참여하는 탈원전선언 및 퍼포먼스를 진행할 예정이다.

후쿠시마 1년 전 원자력발전에 대한 한국과 일본의 인식은 거의 같았다. 교토대 원자력실험실에 근무하는 고이데 히로아키씨의 책 <원자력의 거짓말>에 따르면 일본 정부당국과 전력회사는 “원자력발전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 않으므로 친환경적이다”라고 주장해왔다. 같은 논리는 한국에서도 발견된다. 지금도 한국수력원자력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면 “원자력은 저탄소 녹색에너지”라는 홍보 CF가 게시되어 있다.

3·11 21세기 최악의 문명사적 사건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에 이명박 대통령은 ‘저탄소 녹색에너지로서의 원자력’이라는 기존의 입장에 대해 가타부타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대통령과 한국정부의 입장은 “후쿠시마 사건을 참고로 삼아 안전성을 강화하면 된다”라는 것으로 정리됐다. 지난 2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은 취임 4주년 특별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대통령은 종전의 ‘저탄소 녹색에너지’를 언급하는 대신 “원자력을 폐기하면 전기료 40% 인상이 불가피하며 국가적으로 15조원의 에너지 비용을 써야 한다”며 ‘현실 불가피론’을 폈다. 이 대통령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금년이면 원자력 기술 100%를 우리기술로 할 수 있는 강국이 되며, 그렇게 되면 세계 원전 5대 강국에 들어가서 세계와 경쟁할 수 있다”며 원전산업육성론을 폈다. 현재의 전 세계적인 탈원전 국면을 ‘원전 수출 기회’로 보는 것이다.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일본에서 미증유의 사태가 일어났고, 그 뒤로 일본사회가 겪고 있는 고통을 보면서도 한국에서는 지금도 원자력발전이 값이 싸다든가 다른 대안이 없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이 어이없다”며 “한국사회가 새로운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는데, 지난 1년간의 모습을 보면 그 기회를 잃어버린 것이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양이원영 국장은 “이미 수십년의 탈핵운동 전통을 가진 일본에 비해서 우리 사회의 원자력에 대한 문제제기 수준은 아직 미미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하지만 3·11 이전에는 원전이 지어져 있는 지역에 국한된 운동이었다면 이후 종교계나 생협이 적극 탈핵운동에 나서는 모습 등에서 한국의 탈핵운동도 질적으로 한 단계 더 발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열 대표는 “비밀주의와 정보통제가 결국 최악의 참사를 낳았다는 체르노빌의 교훈은 후쿠시마에서 벌어진 3·11 대재앙에서도 그대로 발견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은 더 이상 늘리지 말고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는 한편, 대안을 모색하자는 것”이라며 “단기적으로는 올해 총선과 대선에서 쟁점이 되겠지만 인류사적 견지에서 볼 때 3·11을 계기로 일어난 문명사적 전환에 언제 동참하느냐의 문제다”라고 덧붙였다.

<정용인 기자 inqbu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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