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피폭보다 피폭인 낙인이 더 고통

2012.03.13

후쿠시마, 1월 중순 일본 피스보트의 안내를 받아서 그곳에서 1박 2일을 보냈다. 30여개국에서 온 요코하마 탈핵세계대회 참석자와 언론인 60여명이 동행한 대규모 현장방문이었다. 한국에선 ‘동아시아 탈원전 자연에너지 네트워크’를 조직한 최열 환경재단 대표 등 10여명의 학자와 환경운동가들이 외부세계에 공식적으로 공개한 후쿠시마의 실상을 일부 접할 수 있었다.   

후쿠시마시는 후쿠시마 다이이치 원전에서 서북쪽으로 60㎞ 떨어져 상대적으로 안전해 보였다. 후쿠시마역의 아침은 여느 소도시의 기차역과 다를 바 없어 보였다. 직장인과 교복 입은 학생들이 바쁘게 오갔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광경이 눈에 띄었다. 일행이 투숙한 후쿠시마뷰호텔 근처 인도가 온통 빙판길이라 사람들이 조심스런 거북이 걸음을 하고 있었다. 일본 하면 뒷골목까지 깨끗하고 안전하게 관리되는 커뮤니티 문화가 떠올랐는데 인구 20만명 도시의 대로변 인도가 빙판으로 방치되고 있었다.

탈핵세계대회 참석자들 곁으로 ‘접근금지’를 의미하는 붉은 띠가 휘날리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탈핵세계대회 참석자들 곁으로 ‘접근금지’를 의미하는 붉은 띠가 휘날리고 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학교운동장서 노는 아이들 사라져
마침 일행이 들고 온 방사능계측기를 이곳 저곳 지면에 대니 간혹 시간당 1마이크로시버트를 오르내렸다. 우리나라 성인의 연간 허용 피폭량 1밀리시버트(1000마이크로시버트)를 기준으로 하면 인구 20만명이 사는 후쿠시마시는 아직도 일상생활만으로 허용치 이상 피폭이 되는 지역이다. 위험한 환경에서 후쿠시마 시민들은 제 한몸 지키기에도 바쁜 듯했다. 학기 중이지만 눈 덮인 학교 운동장에는 인기척이 없다. 방사능 오염 때문에 문부과학성이 운동장이나 놀이터 사용시간을 1시간으로 제한하자 아이들이 노는 모습도 사라졌다.

후쿠시마에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아사히와 NHK 등 일본의 주요 언론조차 외면해온 후쿠시마 사람들의 실상을 엿볼 수 있었다. 전력회사들이 방송과 신문의 광고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어서 일본의 언론은 후쿠시마의 고통에 침묵하고 있다는 등 비판이 거셌다. 탐바 후미노리 후쿠시마대학 교수는 도쿄전력과 정부의 비상대책 부재가 후쿠시마 주민들을 위험과 고통에 방치했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후쿠시마 1호기가 3월 12일 폭발했지만 방사능의 대량누출 때문에 대피가 시작된 것은 3월 15일이었다. 피난 결정과 조치가 지연되어 상당수 후쿠시마 원전 인근 주민들도 한 달 넘게 피폭을 받으며 살았다. 16만명이 후쿠시마현 바깥으로 피난을 떠났다. 반경 20㎞ 출입금지구역 바깥 지역이라도 제염(방사능 오염 제거)에 5년을 잡기 때문에 오염지역 주민들은 5년 이상은 낯선 곳에서 피난살이를 해야 한다. 가족이 흩어진 경우도 다반사다. 다른 도시의 공영아파트에서 피난살이 중인 아이들은 그곳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도 흔하다. 이들에겐 방사능 피폭보다 히바쿠사(피폭인)라는 낙인이 더 큰 고통일 수도 있다.

후쿠시마현에 남은 대부분의 사람들도 살 길이 막막하다. 바다엔 어로작업이 금지되었고 쌀이나 농작물은 방사능 검출 여부와 관계없이 후쿠시마산이면 팔리지 않는다. 정부는 대책이 없다. 아이들의 건강조차 지켜주지 못한다. 

탈핵세계대회 참석자들이 후쿠시마 원전 주변 20㎞ 통제선을 방문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탈핵세계대회 참석자들이 후쿠시마 원전 주변 20㎞ 통제선을 방문했다. 환경운동연합 제공

도쿄도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세워진 원전 때문에 후쿠시마현 200만 주민들은 거대한 방사능폐기물과 후쿠시마인이라는 차별을 물려받게 되었다. 도쿄대 강상중 교수가 말한 ‘기민(棄民)’이란 말이 후쿠시마의 상황을 압축해준다. 히로시마, 나가사키 피폭자들처럼 후쿠시마 피폭자들이 국가로부터 ‘버림받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전력과 일본 정부를 믿을 수 없게 되자 시민들이 스스로 ‘시민 방사능 측정단체’를 만들어 방사능 오염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마루모리씨는 “어머니로서 아이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국내외의 도움을 받아 후쿠시마현에서 방사능을 측정하고 있다. ‘방사능에서 어린이를 지키는 후쿠시마 네트워크’의 요시노씨도 정부와 전문가들을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기 위해 방사능 모니터링을 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한 국제회의에서 30여명의 전문가들이 아무런 자료도 없이 후쿠시마의 방사능 오염이 심각하지 않다고 발표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 이 일을 시작했다.

시민들 스스로 방사능 오염 모니터링
다테시에는 이이타데 마을에서 온 피난민들의 임시 거주시설이 있다. 그곳에서 이이타데 마을에 살던 하세가와씨의 증언을 들었다. 이이타데 마을은 사고 지점에서 45㎞ 떨어졌지만 바람의 영향으로 방사능 오염이 심각해져서 집단이주가 실시된 지역이다. 3월 14일 3호기 폭발이 발생한 후 시간당 40마이크로시버트라는 심각한 방사능이 계측되었지만 촌장과 관계자들은 이를 은폐했다고 한다. 3월 하순에 교토대학 원자력실험소의 전문가들이 “이런 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니 상상할 수 없다”고 놀랐다고 한다. 방사능 오염을 은폐하고 무시하다 보니 피폭은 지속되었다. 4월 30일이 되어서야 하세가와씨를 비롯한 낙농가들은 폐농을 결정하고 이주를 시작했다. 마을을 떠나야 했던 농민들은 살아갈 기력을 잃었다. 재난의 와중에 마을의 낙농인이 자살했다. 하세가와씨의 친구는 “원전만 없었다면”이라는 짧은 메시지와 어린 두 딸을 남기고 생을 접었다.

출입금지구역에 접한 미나미소마시에선 20㎞ 통제선까지 가보았다. ‘출입금지’라는 전광판 앞에서 마스크를 착용한 관계자들이 차량을 통제하고 있었다. 통제선 안쪽의 들판은 고요했다.

후쿠시마 사고 후 미나미소마시 인구는 7만명에서 4만명으로 줄었다. 한때 인구가 1만명까지 줄었는데 오갈 곳 없는 중장년들은 다시 돌아왔다. 계속 이곳에서 살아야 할 운명인 주민들은 끊임없이 제염과 재건을 언급했다. 건물과 표토의 오염물질을 제거하는 작업을 촉진하기 위해 주민단체가 생겨나고 제염에 대한 연구도 활발히 진행되고 있었다. 주민들이 돌린 ‘바다, 하늘 숲으로 둘러싸인 미나미소마시’ 관광 홍보물을 보면서 가슴이 아팠다. 주민들은 오염의 위험성보다는 제염, 안심, 부흥을 강조하고 다짐했지만 이들의 간절한 바람이 실현될지는 알 수 없었다. 마을과 농지는 5년이면 제염을 한다고 하지만 경험해보지 못한 계획일 뿐이다. 표토를 제거하면 농업도 불가능해질 것이다. 후쿠시마 원전 주변 도시들이 방사능 오염지역이란 낙인을 벗는 것도 쉽지 않다. 영국의 윈즈케일도 방사능 오염의 오명 때문에 셀라필드로 개명했다.

사고지점은 그 자체가 거대한 방사성폐기물이다. 인근의 제염작업으로 방사성 토양과 쓰레기가 늘어나면 이것 또한 어딘가에 모아야 한다. 54기의 원전이 배출하는 방사능 쓰레기들도 처분할 곳이 적당하지 않다. 전문가들은 후쿠시마의 출입금지구역에 이들 방사능 쓰레기의 처분장이 들어설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40여년 전 후쿠시마 1호기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후쿠시마는 영원히 핵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어 보인다.

추운 겨울이 가고 봄이 성큼 다가왔다. 궁금하다. 후쿠시마현에도 봄이 오는지….

이상훈<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위원>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매체별 인기뉴스]

    • 경향신문
    • 스포츠경향
    • 주간경향
    • 레이디경향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