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원전 불안 벗어나려는 동해안 사람들

“서울에 원자력발전소(원전) 세운다고 하면 서울 사람들이 가만히 있을까.
원전 유치 대가로 지원금을 주는 것을 마치 엄청난 혜택을 주는 것처럼 생각한다. 울진이 전력 면에서 나라에 공헌한 게 있는데 지금 울진에는 고속도로, 철도 같은 기본시설이 없다. 그만큼 열악한 상황이다.”(울진주민)

“혐오시설(원전) 유치해서 지역 경제발전하라고? 나라에서는 백날 깨끗하고 안전하다고만 선전하는데 그러면 서울에 지을 것이지 왜 삼척에 지으려고 하나.”(삼척주민)

2011년 4월 삼척시에서 열린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합동미사와 범시민 촛불문화제’. | 경향신문

2011년 4월 삼척시에서 열린 ‘핵 없는 세상을 위한 합동미사와 범시민 촛불문화제’. | 경향신문

울진과 삼척 주민의 날선 목소리가 ‘서울 사람’을 향했다. 울진에는 4기의 원전이 가동 중이다. 삼척은 지난해 영덕과 함께 신규 원전 후보 부지로 선정됐다. 이들 지역의 주민들은 전력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지역인 서울 등 대도시가 정작 원전의 문제를 일부 지역의 문제, 남의 문제로만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생산전력의 60~70%는 서울이 쓰고 있는데 0.1%의 전력도 안 쓰는 주민들이 이에 대한 갈등과 위험부담은 모두 안고 있다는 불만이다. 원전지역 주민들은 길게는 수십년간 원전과 이를 둘러싼 갈등으로 몸살을 앓았다. 특히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은 더욱 커졌다.

유치 찬성 측, 경제적 이익 우선
대표적인 곳이 울진군이다. 울진에서 원전은 30년 가까이 지역 갈등의 소재였다. 울진에 원전이 착공된 것은 1981년이다. 당시 주민들은 깨끗하고 연기도 안 나는 큰 공장이 들어온다는 정도로만 원전을 알고 있었다. 정부가 원전에 대해 주민들에게 알려주는 것은 없었다. 주민들이 원전의 안전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된 것은 1986년 체르노빌 사고가 터지면서다. 이때부터 시작된 원전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은 그 후에도 계속돼 신규 원전 유치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까지 이어졌다.

원전 유치를 찬성하는 측의 논리는 경제적 이익이다. 원전 6호기를 가지고 있는 울진도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고 있다. 2011년에는 500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지원을 받았다. 기본지원사업 177억원, 사업자지원사업 177억원, 신울진건설 특별지원사업비 90억원 등이 지원됐다. 울진군의 1년 예산이 4200억원인 것으로 미루어 보면 전체 예산의 10%가 넘는 상당히 큰 금액이다. 이미 6호기의 원전을 가지고 있는 울진군이 지난해 다시 원전 유치에 뛰어든 이유다. 지원금의 규모가 상당하다보니 대도시에 비해 상대적으로 낙후된 지역에서는 원전 유치를 경제적인 관점으로 보게 된다.

울진 원자력발전소 | 연합뉴스

울진 원자력발전소 | 연합뉴스

몇천억원 단위의 지원금과 돈의 논리에 따라 원전 유치가 이루어진 것은 2005년부터다.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방폐장) 부지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이해찬 전 총리는 3000억원 플러스 알파를 제시한다. 큰 규모의 경제적 지원을 내세워 지역간 경쟁이 불거지고 원전 유치는 돈의 논리를 따르게 된다. 안전성에 대한 논의는 중·저준위 폐기물은 고준위 폐기물보다 상대적으로 안전하다는 말이 전부였다.

그렇다면 원전 유치로 지역경제는 발전했을까. 울진에서 지역 발전과 경제적 실익을 체감하는 주민들은 별로 없다. 이는 울진군의 인구 급감이 방증한다. 현재 울진군 인구는 5만2000여명이다. 2007년에 비해 2000명이, 2004년에 비해 6000명이 줄었다. 학교, 병원, 도로 등 기본 인프라도 턱없이 부족하다.

‘핵 마피아’ 토호세력만 수혜자
특히 어민들이 느끼는 소외감은 크다. 울진 죽변항에서 어업을 하면서 울진원전피해보상대책위원회 활동을 하고 있는 남순현씨는 “원전으로 들어오는 돈이 몇백억원이라고 하고 몇천억원의 경제효과가 있다고 말들은 하는데 어민들은 전혀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며 “국가가 주민들을 현혹시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닌가”라고 말했다. 원전이 생기고 나서 어가소득은 오히려 줄었다. 연안에서 잡던 미역, 자연산 김, 전복, 해삼, 성게 등이 사라졌다. 

남씨는 “원전에서 나오는 물 온도가 해수보다 8℃가 높다. 원전은 1초도 안 쉬고 1초당 300톤의 열폐수를 내보낸다”며 “플랑크톤 같은 영양분이 죽고 인위적으로 해류가 변동되다보니 연안에 붙어 살던 바다생물이 다 고사한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1월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와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 사람들’,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회원들이 울진 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핵발전소 신규 부지 후보지 선정 폐기’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경향신문

지난 11월 삼척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와 ‘핵으로부터 안전하게 살고 싶은 울진 사람들’, 영덕핵발전소유치백지화투쟁위원회 회원들이 울진 원자력본부 정문 앞에서 ‘핵발전소 신규 부지 후보지 선정 폐기’를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 경향신문

그렇다면 이 지원금은 모두 어디로 갈까. 울진에서 원전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남효선씨는 “소위 핵마피아라고 하는 지역 토호세력들이 유착해서 경제적 이익을 얻어갈 뿐, 지역주민들에게는 아무런 혜택이 돌아가지 않는다”며 “원전 지을 때 지역 토목업자들에게 2000만~3000만원짜리 작은 공사 하청주는 게 전부일 뿐”이라고 말했다.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을 오고가는 경제적 논리가 앞서면서 안전성 문제는 공론화 과정에서 사라졌다. 지자체 관계자는 일방적으로 경제적 논리만으로 주민들을 설득한다. 장시원 울진군 의원은 “핵발전소의 위험성을 알아야 사고 위험도 줄일 수 있다. 그러나 반상회 등에서 지자체 관계자들이 경제적 논리만 부각하고 홍보한다. 심사숙고할 문제를 이렇게 풀어간다는 것은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반대 늘어
지역주민들이 대부분 고령인 것도 안전성 문제가 공론화되지 않는 또다른 이유다. 남순현씨는 “죽변항 어민들은 대부분 60~70대로 나이가 많다. 배고픈 시절, 6·25전쟁 등 다 겪어본 사람들이라 안전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고, 고령이다보니 생애에 큰 애착이 없다. 또한 그간의 삶을 통해 힘 있는 사람들과 맞서게 되면 화를 입는다는 생각이 있다보니 특별히 문제제기를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새롭게 원전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갖게 된 건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발생하면서다. 원전이 실제로 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가까운 일본의 예를 통해 확인한 것이다. 장시원 울진군의원은 “일본을 생각하면 안타깝지만 그래도 후쿠시마 사고를 통해 전 세계에 불고 있는 핵발전소 광풍이 멈출 수 있었다”며 “정부가 안전하다고만 하지 말고 원전이 위험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울진군 죽변항 | 박송이 기자

울진군 죽변항 | 박송이 기자

신규 원전 부지인 삼척도 후쿠시마 사고 이후 원전 유치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삼척시는 지난해 12월 원전 건설 후보지로 결정됐다. 이붕희 삼척핵발전소백지화투쟁위원회 사무국장은 “삼척은 후쿠시마 이전에도 반대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었다. 그러나 후쿠시마 이후에는 찬성과 반대에 대해 확실히 목소리를 내지 않았던 말없는 다수의 시민들이 반대로 돌아섰다”며 “원전 유치에 이권이 걸려 있는 사람들을 제외하고 많은 사람들이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새로 선정된 지역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이 만들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것도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이다. 정부에 따르면 2016년에는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이 포화상태에 이른다. 경주 방폐장 건설 당시 정부는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안전하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설득했다. 정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인다고 해도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은 위험물질이라는 것이 명백하기 때문이다. 이 사무국장은 “올 초 삼척시의 사업보고서를 보면 ‘제2원자력 연구원’이라는 애매모호한 사업계획이 있다”며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삼척시청 측은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 처리장 건설계획은 없다”고 말했다.

“탈핵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현재 백지화투쟁위원회는 원전 유치 과정의 민주적 절차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삼척시는 지난해 2월 원자력유치위원회의 유치 찬성 서명운동에 96.9%의 주민이 서명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국장은 “삼척시민들 중 백지화투쟁위원회처럼 적극적으로 반대하는 사람만 추려도 3%가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서명을 6~7번 하기도 했다더라”며 “이건 제대로 된 민주적 절차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바로 다음달인 지난해 3월 민주노동당 강원도당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삼척지역 응답자의 45.6%가 원전 유치에 ‘반대한다’고 밝혔고 ‘찬성한다’는 응답은 41.1%였다.

삼척 원자력발전소 유치 관련 주민투표 찬성서명부에 서명한 시의원들. | 박송이 기자

삼척 원자력발전소 유치 관련 주민투표 찬성서명부에 서명한 시의원들. | 박송이 기자

최근에는 주민투표 공방이 일고 있다. 백지화투쟁위원회 측은 삼척시의원 8명의 ‘원전유치 주민투표 찬성 서명부’를 공개하며 찬반 주민투표를 즉시 시행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만약 주민투표를 하지 않으면 총선 이후 삼척시장에 대해 주민소환을 이어나갈 방침이다.

삼척은 원전 유치 찬·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상태이지만 영덕은 이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지 않다. 원자력 에너지 클러스터를 만든다는 것이 경북도의 계획이다. 원전 유치를 반대해온 박혜령 영덕투쟁위 집행위원장은 이번 총선에 녹색당 예비후보로 출마한 상태다. 박 예비후보의 말에 따르면 영덕에서는 공무원들의 반대여론 관리가 철저하다. 그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불안한 주민들끼리 자연스럽게 원전의 위험성에 대해 이야기가 나왔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자 관에서 여론관리를 해 사석에서도 아무 이야기를 못하게 됐다”며 “모임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오면 어떤 경로를 통해서인지 공무원들한테 전화가 오고 장사하는 사람들은 잘못 이야기하면 위생검열 등으로 보복을 당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영덕군청 측은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 근거 없는 이야기”라며 이에 대한 논란을 일축했다. 박 예비후보는 “지역주민의 반대 목소리가 전혀 드러나지 않은 상황에서 원전 문제가 총선에 묻힐 우려가 있다”며 “이렇게 될 경우 대책위의 활동이 더 어려워질 것 같아서 녹색당 예비후보로 출마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총선에서 의미 있는 득표를 한다면 이를 지자체장 주민소환으로 이어나간다는 계획이다.

울진, 삼척, 영덕 등 동해안 지역을 중심으로 지난해 9월 ‘동해안 탈핵연대’가 출범했다. 동해안 탈핵연대는 경상북도의 원자력 클러스터 정책을 비롯해 동해안의 핵단지화를 저지하기 위한 공동행동에 나설 계획이다. 천주교와 환경단체, 시민단체가 중심이다. 지역간 연대를 통해 근본적으로 국가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이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장시원 울진군의원은 “후쿠시마 사고 이후 핵이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전국민들의 삶의 지속가능성 문제로 확대됐다”며 “탈핵은 지역주민들만의 문제가 아니며 이제 더 이상 선택의 문제가 아닌 필수의 문제”라고 말했다.

<경북 울진·강원 삼척ㅣ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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