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탈산업화 시대 ‘지방소멸 대책’ 프레임부터 바꿔라

서중해 경제학자
2024.03.25

경기도 한 군 지역의 빈집 모습 / 연합뉴스 자료사진

경기도 한 군 지역의 빈집 모습 / 연합뉴스 자료사진

2021년 10월 정부는 인구감소지역 89곳을 지정했다. 인천의 강화군과 옹진군, 경기도의 가평군과 연천군 등 4곳을 제외한 85곳이 비수도권 지역이다. 업무를 담당하는 행정안전부 홈페이지는 해당 지역을 지도로 보여준다. 수도권과 동남권 해안지역 그리고 광역시 일부를 제외하면 비수도권 지역의 상당 부분이 인구감소지역에 해당한다. 인구감소지역은 지방소멸 대응 기금을 지원받는다. 2022년부터 운용하고 있는 이 기금은 매년 1조원 규모로 10년(2022~2031) 동안 지원될 계획이다.

올해 4월 열리는 22대 총선을 앞두고 국회미래연구원은 지난 3월 4일 ‘22대 국회에 제안하는 7대 혁신성장 어젠다’를 발표했다. 연구원은 ‘첨단 녹색 사회’를 국가 성장 비전으로 설정하고, 이를 위해 22대 국회에서 관심을 두고 제도 개선을 추진할 필요가 있는 과제 13개를 제시했다. 발표문에는 “국회는 다른 국가기관과 달리 복수의 대립 세력에 의해 공동 운영되는 기관이므로 22대 국회에서 다양한 이해관계와 정견을 가진 정치 세력 간에 보다 풍부한 논의와 합의가 도출되길 기대한다”는 설명을 달았다.

7개 어젠다는 (1)인공지능(AI) 경쟁력 강화 및 신뢰성 제고 (2)국가전략기술 경쟁력 제고를 위한 조세제도 고도화 (3)탄소 중립 달성을 위한 에너지·산업 부문 전략성 제고 (4)녹색전환을 위한 자원안보와 순환경제 (5)고령사회 친화적 노동복지 정책 (6)개인과 지역의 다양한 잠재력 실현을 위한 교육의 질 제고 (7)지역균형발전 등이다. 여섯 번째 어젠다까지는 각각 2개씩의 정책과제가 제시됐고, 마지막 일곱 번째 지역균형발전 어젠다에는 ‘마을공동체수당 신설’ 제안 하나가 들어 있다.

국회미래연구원의 마을공동체수당에 관한 설명을 들어보자. “마을공동체수당은 마을공동체를 유지하고 보존하는 데 필요한 활동자금이다. 마을로 진입하는 도로의 풀을 깎거나 영농폐기물을 수거하고 운반하는 일, 독거노인들의 집수리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이 수당을 신설하면, 전국에 4만8000개의 읍·면별 단위의 마을에 해마다 300만원을 지급해 총 1440억원이 소요된다. 이는 정부가 해마다 지방소멸대응기금으로 1조원을 쓰는 것에 비교하면 해볼 만하다.”

혁신성장 어젠다에 지역균형발전을 포함한 것은 다행이지만, 제안 과제로 마을공동체수당 신설 하나에 머물러 버린 점은 대단히 아쉽다. 보고서는 제안 배경으로 “산업화와 도시 확대, 서울과 수도권 중심의 불균형개발정책으로 농업과 농촌 삶의 질은 지속해서 악화했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진단은 초점이 매우 협소하고 논점이 잘못 잡혀 있다.

이미 진행되고 있는 탈산업화와 축소 도시 문제를 도외시하고 농촌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광역시 중에서도 부산시와 대구시에서 각각 세 기초지자체가 인구감소지역으로 지정돼 있고, 대전 동구·중구·대덕구, 인천 동구, 광주 동구, 강원 강릉시, 경북 경주시, 전북 익산시 등 18개 지역이 관심 지역으로 지정돼 있다. 관심 지역은 인구감소지역 다음으로 인구가 많이 감소하고 있다. 지역균형발전에 있어서 근본적인 도전과제는 도시 대 농촌의 문제가 아니라 어느 지역이건 산업화 이후를 이어갈 새로운 성장동력을 어떻게 창출하는가의 문제다.

인구감소지역 현황 /연합뉴스 그래픽

인구감소지역 현황 /연합뉴스 그래픽

농촌지역뿐 아니라 비수도권의 많은 도시가 인구감소를 경험하고 있는데 이는 (저출생과 함께) 탈산업화와 맞물려 있다. 산업화 이후 성장동력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한국의 많은 지역이 특히 비수도권 지역은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해 있다. 한국을 포함한 세계 경제의 생산구조는 지식기반 디지털 경제로 전환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 지역은 이런 전환을 수용하고 선도할 여건을 갖추고 있느냐는 질문을 스스로 던져야 할 때다.

지역경제를 지금까지 지탱한 제조업 기반 산업경제와 새롭게 재편되는 지식기반 디지털 경제 사이에는 발전 방식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산업경제의 성장 동인은 자본투입을 통해 창출되는데 이 과정에서 비용 효과적인 지역에 발전 기회가 제공된다. 자본투입은 누적될수록 한계 생산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산업경제에서 부는 평균을 중심으로 분포하게 된다.

지식기반 디지털 경제에서는 이런 제한이 풀린다. 지적 활동의 산물인 아이디어는 기본적으로 무한하게 복제가 가능해 한계 생산성의 누적 감소 문제를 극복할 수 있다. 이제 지역은 비용효과 측면이 아니라 모이면서 외부효과가 발생하는 집적의 이점 측면에서 경쟁우위가 결정된다. 무한한 복제 가능성과 집적 이점은 부의 분배에서도 극심한 불평등을 초래한다.

탈산업화와 디지털 경제로의 전환이라는 관점에서는 한국의 어떤 지역도 미래가 확실하지 않다. 지난 60여 년 동안 한국경제의 발전 기반이었던 산업화 모델이 그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이다. 이런 한계를 먼저 경험하고 있는 지역은 저출생과 맞물려 인구감소를 먼저 경험하고 있을 뿐이다.

기왕에 22대 국회에 제안하는 혁신성장 과제라면 지역균형발전과 관련해 프레임을 크게 잡고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마을공동체수당은 그 자체로는 실험해볼 만한 과제다. 보고서가 언급하듯 “지역 정부가 주민에게 하달하는 방식으로 문제를 풀려는 오랜 관행 탓에 마을 주민들은 변화에 수동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취지에는 더 공감하게 된다.

그러나 국회의 싱크탱크가 차기 국회에 제안하는 균형발전전략으로 마을공동체수당에 한정했다는 점은 매우 실망스럽다. 상명하달 방식이 아닌 새로운 거버넌스로 어떻게 지역발전체제가 이행할 것인지, 지식기반이 취약하거나 거의 부재한 지역의 발전 대안은 무엇인지, 나아가 국가 전체로 새로운 성장체제로의 이행과 균형발전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지 등 여러 질문이 산적해 있다.

더욱 근본적인 질문은 프레임 자체에 관한 것이다. 가까운 시일 내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이 반전을 이룰 것으로 전망하기는 어렵다. 적어도 상당 기간 이 추세가 이어질 것이다. 그렇다면 인구감소는 정해진 미래 모습이다. 인구감소 시대에는 산업화 시대를 지배했던 성장 담론은 유효하지 않다. 축소 도시와 축소 경제에 어떻게 적응할 것인가로 프레임을 바꿔야 한다. 지역경제가 당면한 이들 근본과제에 22대 국회는 어떤 비전과 대응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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