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커지는 지역경제 격차의 ‘부메랑’

서중해 경제학자
2024.04.15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강원도 화천군은 공공산후조리원·학습관 운영, 대학생 무상교육과 공짜 어학연수 등으로 외지에서 고교 입학생이 몰려들고 있다. 연합뉴스

소멸위기를 겪고 있는 강원도 화천군은 공공산후조리원·학습관 운영, 대학생 무상교육과 공짜 어학연수 등으로 외지에서 고교 입학생이 몰려들고 있다. 연합뉴스

한국에서 심각한 경제 문제 중 하나는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의 확대다. 수도권으로 좋은 일자리와 청년층이 몰리고, 비수도권은 일자리와 인구 모두 줄어드는 현실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이 됐다. 그런데 이 사실은 제조업의 고도화 과정에서 경제활동의 가치사슬이 지역 간 재배치되면서 발생한 결과다. 두 지역의 다른 결과는 하나의 원인에서 기인했다. 현재와 같은 추세라면 지역 간 격차 확대는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더욱 근본적인 문제는 지역 격차 확대가 한국경제 전체의 발전 잠재력을 심각하게 제약할 것이라는 점이다.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산업은 가치사슬로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데, 한쪽의 부실은 다른 쪽의 취약점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현재 지역경제를 받치는 제조업은 대부분 자본심화형 경제발전 체제에서 구축됐다. 자본심화형 경제발전이란 제조업 공장을 전국 각지에 건설하고, 대량 생산제품을 세계 시장에 수출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포항과 구미·울산·창원·여수·광양·군산·당진·아산·반월 등에 대규모 산업단지가 건설되고, 이곳으로 유휴인력이 이주하면서 이들 지역은 급속하게 성장해 국가 산업의 기반이 됐다. 생산기지 건설로 제조업을 확충하고 생산 제품을 세계시장에 파는 전략이 통하는 시대였다.

1997년 외환위기와 이후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한국 제조업에 새로운 도전이자 기회였다. 더 이상 저임금 기반 범용 제조업은 중국 제품과 경쟁이 되지 않았다. 제조업은 고도화 단계로 이행했다. 이 과정에서 제조업 가치 사슬의 분화가 발생하고, 고부가가치 활동은 수도권을 중심으로 재배치되면서 지역경제발전은 정체되기 시작했다. 사회학자 양승훈 경남대 교수의 최근작 <울산 디스토피아, 제조업 강국의 불안한 미래>는 울산을 배경으로 이러한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경제지형 변화는 수도권과 비수도권의 불균형 심화로 나타나고 있는데, 여기에 한정되지 않는다. 지역의 생산 기반이 무너지면 상위의 기능도 유지하는 데 한계가 생긴다. 이는 한국경제가 미래에도 지속 가능할지를 판단하는 관건이 되기도 한다.

자동화로 대응한다고 해도 그렇게 창출된 부(富)는 지역경제 기여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 단순화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두 지역으로 구성된 한국경제를 상정할 때, 비수도권의 제조기반이 취약하면 수도권 상위제조업에 대한 수요 저하뿐 아니라 혁신 유인도 약화한다. 이는 장기적으로 수도권의 고급 경제 기능도 동력이 떨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문제의식으로 22대 국회의원선거 과정에서 제시되고 있는 각 정당의 지역산업 관련 정책을 일별해 보았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에는 ‘정책·공약 마당’이 있다. 이번 국회의원선거에 참여하는 정당과 후보자 측에서 제출한 자료를 모아놓은 것이다. 여기에 수록된 자료를 통해 향후 4년 동안 국회의 정책 흐름을 짚어볼 수 있다.

정당 정책 항목에는 총 59개가 수록돼 있는데, 정당에 따라 내용이 비어 있는 경우도 많다.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순서로 양대 정당의 정책이 가장 먼저 수록돼 있다. 양대 정당의 정책 중에서 지역산업에 관한 부분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다.

■ 수도권 대 비수도권의 경제력 격차, 가장 심각한 경제 문제

먼저 국민의힘이다. 전체 10개 정책목록 중 하나는 ‘건강하고 활력 넘치는 지역 만들기’다. 여기에서는 ①지역의료 격차 해소 ②지역경제 활력 기반 구축 ③함께 누리는 문화생활 기반 마련 등 3개의 목표가 제시돼 있다. 지역경제와 관련한 구체적 정책은 ‘지역 기회발전 특구로 이전하는 중소기업 상속세 면제’, ‘세컨드 홈 활성화 대책을 비수도권 모든 비도심 지역으로 단계적 확대’, ‘지역특화형 비자 사업 대폭 확대’ 등 세 가지다.

더불어민주당은 10개 정책목록의 하나로 ‘혁신성장과 균형발전으로 희망한 내일을 준비하겠습니다’가 들어 있다. 여기에서 ‘혁신성장’은 국가 전체의 산업발전에 관한 것이고, ‘균형발전’은 지역에 관련된 내용이다.

균형발전의 목표와 내용은 ‘5대 초광역권 및 3개 특별자치도를 제도화하는 광역행정청 설치’, ‘대학 서열화 완화, 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9개 거점 국립대 집중 투자’, ‘지역대표 전략산업 및 스타트업 육성’ 등이 제시돼 있다.

양당의 지역산업 관련 정책은 대조적이다. 국민의힘이 제시한 과제들은 미시적이고 지엽적이다. 여기에는 지역산업의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 정책목록의 다른 부분에서 ‘비수도권과 뿌리산업, 인력 수요 등을 감안해 외국인 고용 한도에 대한 탄력성 강화’와 ‘산업단지 규제개혁 통한 규제 대못 뽑기’가 언급돼 있지만, 지역산업의 발전 전망과 전략을 읽기 어렵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은 거대 담론에 가깝고, 이미 작동이 잘되지 않는 사안들을 다시 모아 두었다. 광역권 문제는 문재인 정부 당시에도 운을 떼었지만 실행되지 못하고, 윤석열 정부로 이어지고 있지만 작동이 안 되고 있다. 부산-울산-경남 초광역권은 각 광역지자체의 이해타산이 맞지 않아 이미 결렬돼 버렸다. 대경권과 호남권도 미온적이다. 중부권 정도만이 그나마 명맥을 이어가고 있을 뿐이다.

정치권에서 지역산업을 바라보고 대응하는 내용을 보면 현실감뿐 아니라 실현 가능성도 작아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유사한 레퍼토리가 4년 전에도 등장했고, 아마도 다음 4년 후에도 등장할 것이다. 현재의 추세를 반전시킬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 정치권은 지역 문제를 피상적으로 파악하고 있거나 지역 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

현재 지역이 당면한 문제들은 지역의 중지를 모아도 해결하기 어려운 복합 과제다. 기업 투자와 기술개발을 유인할 기제, 새 시대가 요구하는 인력을 양성할 교육체제, 실제로 고용을 해줄 기업 현장의 수요, 청년들이 원하는 일자리 문제와 현장 사이의 미스 매치, 산업 가부장제로 표현되는 성비의 불균형과 이를 초래한 고용구조의 왜곡 등 여러 사안이 함께 작용한 결과다. 여기에 저출산 문제는 지역 불균형을 더 심화시킨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정치는 크게 두 가지 기능으로 구별할 수 있다. 경제발전을 촉진하는 유인 제도로 작동하거나, 제도 개혁을 가로막아 경제발전을 저해할 수도 있다. 어떤 조건에서 정치는 미래 발전 비전을 제시하고 국가적 힘을 결집하는 구심점으로 작동할 수 있을까? 선거가 끝난 후 정치권에서 진정성과 현실성을 갖고 지역 문제에 대처하기를 희망한다.

<서중해 경제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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