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은 소리에 ‘쿠션’ 넣기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올 1월부터 노조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임기는 12개월. 지난 10월 초부터 말년 병장의 심정이다. 돌이켜보니 크고 작은 일이 한 달에 한 번은 일어났다. 면담, 행정업무, 조율, 협상, 회의로 빠르게 지나간 10개월이었다. 고비 때마다 도움을 주신 분들께 감사한 마음뿐이다.

노조 업무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기자는 문제 제기에 충실하면 되지만 노조 일은 달랐다. 동료들과 함께 회사 관리자를 손가락질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사안마다 결과를 내고 ‘끝’을 봐야 했다. 노조 조합원과 사측, 취재기자들과 편집국 관리자 사이를 오가며 조율하는 과정에서 역량의 한계를 느끼기도 했다.

관계 속에서 가끔은 마음이 내려앉았다. 취재원과 마찰이 있을 때 느끼는 감정과는 달랐다. 회사 동료 선·후배는 계속 부대껴야 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히 누군가 비겁하다고 느낄 때, 그러니까 책임을 아래로 미룰 때, 바쁜 일과로 자기 몫 챙기지 못하는 조합원들의 처우가 사측으로부터 외면당할 때, ‘나’만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이와 마주할 때 마음이 내려앉았다.

또 가끔은 싫은 소리도 불쑥 꺼냈다. 일종의 의무감이 작용했다. 노조의 역할은 사측 견제이니 싫은 소리를 가감 없이 해야 하고, 싫은 소리를 듣는 건 윗사람들의 몫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는 무례하게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태도를 바꾼 건 동료와 대화를 하다 힌트를 얻고 나서부터였다. 늘 힘이 돼주던 동료는 “선배가 돼보니 싫은 소리는 듣기 싫은 거더라고요. 그게 사람인 거고, 사람은 다 똑같은 거죠”라고 말했다. 올 하반기부터는 싫은 소리를 포장해봤다. 칭찬하거나 맞장구치다 슬쩍 싫은 소리를 끼워 넣는 식이었다. 대화에 ‘쿠션’을 넣는, 싫은 소리에 완충지대를 만드는 일종의 사회생활이었다. 이제 임기도 2개월여밖에 남았으니 사회생활을 더 잘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겨우 다잡은 마음은 최근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지난 10월 26일 조합원 A가 검찰의 압수수색을 당했다. 혐의는 윤석열 대통령의 명예훼손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후보이던 시절에 쓴 기사가 압수수색 영장에 적시됐다. 경향신문 노조는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와 함께 검찰의 조합원 A 압수수색을 언론사 재갈 물리기,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 침해로 간주하고 강력히 규탄한다는 성명을 냈다.

조합원 A가 모든 무게를 짊어진 듯해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노조가 조합원을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마음을 내려앉게 했다. 10년 가까이 지켜봐 온 조합원 A는 소위 ‘지르는’ 기사를 쓰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취재원에게 끊임없이 전화 돌리고 만나는 과정을 반복했다. 늘 확인한 데까지만 썼다. 조합원 A 옆에서 나는 결코 무리하지 않으면서도 최대한 성실하게 취재하는 법을 배웠다.

상황을 지켜보며 권력 비판 기사는 어떻게 써야 할지 의문이 들었다. 권력자를 향한 문제 제기는 어디까지 가능한 걸까. 내년 1월이면 현업에 복귀한다. 노조 사무국장의 자세를 잃지 않고, 상찬을 늘어놓다가도 슬쩍 싫은 소리를 버무려 기사를 써야 하는 걸까. 쿠션 넣은 기사는 어떻게 써야 하는 건지 감이 안 온다. 복잡한 심경을 한 조합원에게 털어놓자 이런 말이 돌아왔다. “그게 바로 저들이 노린 ‘위축 효과’ 아닐까요.”

<김원진 전국언론노조 경향신문지부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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