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그날은

지난 10월 22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에 촛불이 켜져 있다. / 권도현 기자

지난 10월 22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 마련된 10·29 이태원 참사 합동 분향소에 촛불이 켜져 있다. / 권도현 기자

미루고 미루다 쓴 여름휴가의 마지막 날이었다. 대책 없이 기른 긴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싶었다. 마침 오후엔 회사 선배의 결혼식이 있었다. 미용실에 가서 ‘커트’를 조금 하기로 했다. 토요일 오전 이른 시각 미용실은 한산했다. 분주히 가위질하던 미용사가 물었다. “핼러윈인데 어디 놀러 안 가세요?” 2022년 10월 29일 ‘나의 그날’은 그렇게 시작됐다.

일요일인 다음날 휴가 복귀가 예정돼 있었다. 팀장 대행 역할을 맡아야 했다. 예정된 기사가 있어 ‘먹거리가 없다’는 불안을 느끼진 않았다. 코로나19 거리 두기가 해제되고 3년 만에 맞이한 ‘대면 핼러윈’이었다. 경향신문 외에도 다수의 언론사가 서울 용산구 이태원동에 취재기자를 보내 핼러윈 축제 인파를 취재했다. 아니, 취재하려 했다.

이색 코스프레, 흥겨운 음악, 북적이는 거리, 마스크를 벗고 즐기는 축제에 흥분한 사람들…. 그날 낮, 후배에게 “재밌게 써보자”고 당부하며 머릿속에 그렸던 기사는 끝내 빛을 보지 못했다. ‘교육 삼아’ 이른 오후부터 현장에 수습기자를 보냈는데, 그는 일순간에 참사의 목격자가 됐다. 모든 것이 불투명하던 그날 밤. 그가 보내온 카톡은 이렇게 시작했다. “선배, 파란 천으로 덮는 거. 사망인 거죠?”

이후 100일은 정말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겠다. 우리는 일을 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을 다친 동료들을 제대로 챙기지 못했다. 나 자신도 물론 돌보지 못했다. 회사에서 심리상담을 받으라고 권유했을 때 ‘굳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간 상담소에서 나는 내내 오열했다. 희생자들에게, 유족에게, 동료들에게 미안했다. ‘기레기 시대’에 엉겁결에 마주한 참사는 너무나 무섭고 무거웠다.

어느덧 이태원 핼러윈 참사 1주기다. 그사이 새로운 구성원도 생겼다. 이제 막 입사한 후배들과 얼마 전 대면식을 했다. 고백하자면 나는 수습기자들이 무섭다. 우리가, 선배들이 당연시한 일에 “왜 그랬냐”고 따져 물을까봐. 질문에 답을 못하고 절절매는 나를 보며 ‘기자 됨’을 후회하게 될까 싶어서.

그들과의 대면식에서 내가 속한 사건팀은 전원이 모여 재난 보도를 주제로 이야기를 나눴다. 입사 3개월 차 후배들은 참사 소식을 접했을 당시 무얼 하고 있었는지, 쏟아져 나온 각종 보도를 보며 무엇을 느꼈는지 등 개인적 경험을 공유했다. 나를 비롯한 선배들은 참사 취재의 어려움과 당시 직면했던 기자로서의 고민, 참사 이후 트라우마를 털어놨다. 그럼에도 ‘왜’ 참사 보도를 해야 하는지, 그렇다면 ‘어떻게 잘’ 보도할 수 있을지 등을 놓고 2시간가량 대화를 했다.

이 같은 시간을 가질 수 있던 건 이태원 참사 이후 취재기자들의 구술 기록을 모아 정리한 자료집을 경향신문 편집국이 만들어놨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에 앞서 벌어진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 현장을 지킨 선배 기자들의 경험담도 담겼다. 대면식을 마무리하던 사건팀장 선배의 말처럼 이런 참사는 다시 없어야 한다.

그렇기에 더욱더 많은 사람이 이태원 참사에 대해 말을 하고, 글을 쓰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서로에게 물었으면 좋겠다. 2022년 10월 29일, 당신에게 그날은 어떤 날로 기억되고 있냐고.

<이유진 사회부 기자 yjle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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