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완벽한 챗GPT 뒤에 유령 노동자 착취가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수빈·김민주 지속가능바람 기자, 이윤진 ESG연구소 부소장
2023.07.03

톱니바퀴 이미지는 자동화 시스템 속에 숨겨진 채 유령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 pixabay

톱니바퀴 이미지는 자동화 시스템 속에 숨겨진 채 유령처럼 일하는 노동자들을 떠올리게 한다. / pixabay

영화 <설국열차> 후반부에 어린아이가 등장해 톱니바퀴를 돌리는 장면이 나온다. 스스로 완벽하게 굴러갈 것 같은 열차라는 자동화 시스템 속에서, 알려지지 않고 유령처럼 일하는 이 아이는 인공지능(AI)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유령 노동자(ghost worker)’를 떠올리게 한다.

유령 노동자는 새로운 경제 형태의 등장으로 발생한 플랫폼 노동자의 한 분류다. 국제적으로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정의를 두고 여전히 토론이 진행 중이다. 장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대표발의해 심사 중인 ‘플랫폼 종사자 보호 및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의안번호 제8908호)에 따르면 플랫폼 노동자는 계약의 명칭이나 형식과 관계없이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중개 또는 알선받은 노무를 제공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사용하지 아니하고 주로 자신의 노무를 제공하고 그 대가로 보수 등을 받는 사람이다. 즉 그때그때의 노동수요에 따라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간헐적·일회적·초단기적으로 일감을 중개해 일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필요할 때 필요한 사람과 임시로 계약을 맺는 경제 형태인 ‘긱 이코노미(gig economy)’와 플랫폼과 기술력을 가진 회사가 수요자의 요구에 즉각 대응해 제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문형 경제(on-demand economy)’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등장이 플랫폼 노동자를 급증케 했다. 고용노동부의 플랫폼 종사자 규모와 근무실태 조사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의 플랫폼 종사자는 2022년 약 80만명으로 2021년 66만명 대비 20.3%(13만4000명) 증가했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온라인 노동은 연평균 26% 이상 성장하고 있으며, 소프트웨어 개발 및 기술, 크리에이티브와 멀티미디어 분야가 가장 빠른 성장세를 보인다. 온라인 노동은 재택근무 등 유령 노동과 다른 의미의 노동을 포함한다. 2016년에 퓨 리서치센터는 미국에서 성인 2000만명이 유령 노동으로 돈을 번 것으로 추산했다.

아마존의 대표적 유령(플랫폼) 노동 풀인 메커니컬터크(MTurk)에 참여한 사람(1건 이상 작업 참여)은 2019년 기준 25만810명이다. 이중 22만6500명 이상이 미국에 산다. MTurk는 학술 연구자들이 사용하는 고품질 연구데이터를 만든다. 구글을 위해 일하는 유령 노동자는 전 세계에 약 1만명이 있다고 추정된다.

2017년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노동 종사자 규모는 경제활동인구의 10% 미만 정도라고 한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14개국에서 전체인구의 9.7%가 플랫폼 노동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독일, 영국, 이탈리아 등 유럽 7개국에서 주 1회 이상 디지털 긱 경제에 참여하는 노동자는 5~12% 수준이었다.

완벽해 보이는 AI 뒤에 사람이 있다 

플랫폼 노동은 노동이 제공되는 방식에 따라 현장 기반형(location-based)과 웹 기반형(web-based)으로 나뉜다. 유령 노동자가 대표적인 웹 기반형 플랫폼 노동자다. 미국의 인류학자인 메리 그레이와 컴퓨터 과학자인 시다스 수리가 실리콘밸리의 보이지 않는 노동자를 인터뷰하고 그 실태를 고발한 <유령 노동>(Ghost Work·2019)이라는 책에서 유령 노동자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비슷한 어감의 ‘유령 고용인(ghost employee)’이라는 말이 이전에 있었으나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장부상 허구의 노동자란 뜻으로 유령 노동자와는 의미가 판이하다. 일반적으로 실제 유령 노동의 시작은 2000년대 초 아마존의 온라인 서점 시장으로 알려져 있다. 아마존은 중복되거나 오래된 책의 재킷 이미지, 웹 페이지 내의 오탈자를 찾는 과정에서 데이터베이스 정리를 위해 미국과 인도에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값싼 노동력을 고용했다.

어린아이가 톱니바퀴를 돌리는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설국열차> / CJ엔터테인먼트

어린아이가 톱니바퀴를 돌리는 장면이 등장하는 영화 <설국열차> / CJ엔터테인먼트

유령 노동자는 AI와 머신러닝이 완벽하지 않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간단하고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한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트위터 모두 AI를 기반으로 한 필터링 시스템을 통해 사용자에게 유해한 콘텐츠를 걸러내지만, 이 과정의 이면에 유령 노동자의 조력이 없으면 걸러냄이 완벽해질 수 없다.

우버는 운전자의 실시간 ID를 확인하는 자동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이 시스템은 우버 계정의 인물과 운전자가 동일한지 확인하기 위해서 셀카를 요청하고, 시스템이 동일 인물인지를 판단하지 못하는 사진에 대해서는 유령 노동자가 동원돼 확인 작업을 벌였다. 네이버는 모니터링 요원을 통해 포털에 올라오는 정보의 개인정보 유출이나, 지도 거리뷰 시스템 속 사람의 얼굴과 자동차 번호판 모자이크 처리를 감지한다. 이처럼 API(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사이의 통신에 사용되는 언어나 메시지 형식), 암기식 계산, 사람의 창의성을 결합한 일을 ‘크라우드 소싱’이나 ‘마이크로 워크’, 또는 ‘크라우드 워크’라고 말한다.

사람에게 유해한 콘텐츠, 사람이 구별? 

유령 노동자의 일은 단순히 사람의 신원을 구별하는 데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들은 알고리즘의 오류를 수정한다. 대표적으로 다음과 같은 일들이다.

첫째, 포르노그래피. 알고리즘은 노출된 사람의 신체 부위를 구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포르노성 유해 이미지를 구별한다.

둘째, 언어 이해. 알고리즘은 인간 언어의 뉘앙스를 파악하는 데 혼란을 겪으므로 농담과 비꼼의 차이를 구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셋째, 잘못된 분류, 이미지에 대한 단순한 분류 실수를 정정하는 일을 한다.

넷째, 혐오 발언. 인공지능은 혐오 발언을 감지하는데, 아직 인간의 도움이 필요하다. 즉 사람에게 보였을 때 사회정서적으로 문제를 야기할 수 있는 요소를 사람이 구별해야 한다는 얘기다.

어떤 질문을 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고 정답을 알려준다는 대화형 AI인 ‘챗GPT’의 완벽함 뒤에도 유령 노동자의 작업이 있다. 챗GPT는 단어를 이용해 문장을 구사하는 데 뛰어난 능력을 보인다. 하지만 인터넷에서 수천억 개의 단어를 필터링 없이 학습했기 때문에 성차별, 인종차별 발언과 더불어 폭력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는 문제점이 있다. 문제점을 수정하기 위해 챗GPT 개발자인 ‘오픈AI’에서는 혐오 발언, 폭력, 성차별적 표현의 예시를 설정하고 이것을 걸러내는 시스템을 구축하고자 2021년 11월부터 수만 개의 텍스트를 케냐의 아웃소싱 회사인 사마(Sama)에 보냈다. 요청사항은 아동의 성적 학대, 살인, 자살, 고문, 자해, 근친상간과 같은 이미지와 텍스트를 걸러내는 것. 구글도 마찬가지다. 사람들이 구글의 검색엔진에서 포르노, 선전, 위험한 의학적 조언을 배제하고, 우리가 제대로 된 정보를 찾을 수 있는 이유는 에드 스택하우스(Ed Stackhouse)라는 데이터 서비스 회사가 수많은 ‘어두운 정보’ 가운데에서 사람들에게 보일 수 있는 검색 결과만을 통제하고 보여주기 때문이다.

유령 노동자, 노동자 법의 사각지대에 

유령 노동에 종사하는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노동자’로 정의되지 않는다. 노동자에 합당한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타임’ 인터뷰에 응한 사마의 노동자 4명은 날것의 데이터를 분류하는 과정에서 정신 폭력적인 이미지와 텍스트를 접하고 모두 업무과정에서 정신적 피해를 입었다고 답했다. 정신 상담원이 상주하긴 했지만 회사의 무리한 업무 요구로 실질적인 상담 기회가 없었고, 정신질환 위기를 겪으면서도 그게 유일한 수입원인 까닭에 업무를 그만두지 못했다. 그것이 그들의 현실이었다. 금전적 보상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사마의 노동자가 실제로 받은 임금은 1시간당 1.46~3.74달러로, 계약서에 명시된 1시간당 12.5달러에 턱없이 못 미쳤다. 정도는 덜하지만, 에드 스택하우스의 노동자 상황도 비슷하다.

AI가 만드는 문자 콘텐츠 중 혐오발언 등 유해한 부분은 사람이 직접 걸러낸다. 사진은 생성AI가 문자로 구성한 AI의 얼굴 이미지 / midjourney

AI가 만드는 문자 콘텐츠 중 혐오발언 등 유해한 부분은 사람이 직접 걸러낸다. 사진은 생성AI가 문자로 구성한 AI의 얼굴 이미지 / midjourney

유령 노동자를 포함한 플랫폼 노동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많은 국가에서 노동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우선적으로 플랫폼 노동은 종사자의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공식적인 통계 자료를 찾기 어렵다. 플랫폼은 거래량과 노동자 수에 관한 정보를 제공할 법적 의무가 없고, 주요국들이 아직까지도 공식 노동 통계를 편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플랫폼 노동자는 고용의 비전속성, 수행 업무 또는 서비스의 초단기성, 업무 수행의 장소 및 시기의 불특정성, 업무 또는 서비스 선택의 자율성 또는 독립성 등을 특징으로 하므로 전통적인 종속노동의 범주에 포섭해 규율하기 어렵다. 또 노동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하나의 사업에 노무를 제공해야 하는 전속성과 노무를 상시적으로 제공하고 보수를 받아 생활한다는 계속성을 충족하지 못한다. 이에 따라 플랫폼 노동자는 임금 노동자가 아닌 독립사업자, 자영업자로 취급받는다. 이렇게 되면 단체협상, 단체행동과 같은 임금 노동자의 권리를 제약받는다. 노동자들 역시 개별적으로 일하기 때문에 서로를 경쟁자로 인식해 단결하지 못하는 악순환이 계속된다.

법률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면 사회보장제도 접근에 어려움을 겪는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17년 2350명의 플랫폼 노동 종사자들을 대상으로 수행한 조사를 보면 플랫폼 노동이 주업일 때 부업인 사람들에 비해 사회보험보장률이 낮았다. 같은 해 불가리아, 덴마크,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등 EU 8개국 플랫폼 노동자를 대상으로 주요한 사회보장제도 접근에 대해 국제노동기구가 설문조사한 결과도 실업, 돌봄 등에서 60~70%가 사회보장 밖에 있었고, 그 밖의 보장 영역에서도 절반 이상이 제도로부터 배제됐다.

실체 없던 노동자에게 이름을 붙여주세요 

점점 커져가는 플랫폼 노동 시장의 규모를 고려할 때 정규직 시간제 고용, 자영업 그 어느 쪽에도 온전히 속하지 않는 유령 노동자에게 제대로 된 이름을 부여해야 한다. 2019년 1월 ILO의 ‘미래 업무 글로벌 위원회’는 “플랫폼이 노동자를 고용할 때 권리를 보호하고 존중하는 최소한의 기준을 설정하고 디지털 노동 플랫폼 간의 국제 거버넌스를 구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 2018년에는 종사상 지위 분류체계를 정비하면서 기존 임금 노동자와 자영업자 외에 종속 계약자(Dependent Contractor)를 추가할 것을 제안했고, 대한민국 정부는 이에 따라 종사상 지위 분류 개편 작업을 진행 중이다.

실질적 노동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 플랫폼 노동을 주업으로 하는 노동자에 한해 산재보험을 임금 노동자와 같은 방식으로 바꾸고, 고용보험 및 국민연금에도 가입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 사회보장을 강화해야 한다.

프랑스 법원은 플랫폼 종사자를 일괄적으로 독립자영노동자에 포섭하지 않고 계약관계의 실질을 고려해 법적 종속관계가 인정되는 임금 노동자로 보호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2016년 일명 ‘엘 콤리 법(Loi El Khomri)’이라 불리는 ‘노동, 사회적 대화의 현대화 및 직업적 경로의 보장에 관한 법’이 통과되면서 플랫폼 종사자는 산재보험, 노동 3권, 직업교육, 플랫폼 내 고유 활동과 관련된 모든 자료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 등을 보장받게 됐다. 우리나라도 현재 국회에 플랫폼 종사자법이 발의돼 있다. 그러나 법령상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최소한의 보호장치를 제시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 한계가 뚜렷하다.

혁신적인 기술로 세상을 선도하기 위해 언제나 남들보다 앞서가는 플랫폼 기업이 법 규정이 미비하다는 이유로 자사를 위해 일하는 유령 노동자의 권리 보장에 눈을 감는다면, 이는 명백한 시대의 퇴행이다. 소비자가 검색엔진, AI, 자동화 등을 통해 누리는 높은 수준의 플랫폼 서비스의 이면에 <설국열차>의 인간 톱니바퀴가 숨어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나마 유령 노동자의 상황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근본적으로는 현실을 못 쫓아가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

<안치용 아주대 융합ESG학과 특임교수, 이수빈·김민주 지속가능바람 기자, 이윤진 ESG연구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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