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4일 문화연대와 서울와치 등 시민단체는 서울시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오세훈 시장이 한 244개 공약의 이행 평가와 함께 그가 내세운 5대 공약에 대한 서울시민 1000명의 여론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예산 낭비가 우려되거나 목표 달성이 어려운 사업이 32개, 기후위기와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사업이 30개, 정치적·사회적 갈등을 유발하는 사업이 29개로 나타났다. 막무가내 개발로 미래 가치를 훼손하는 사업도 26개, 계획이 부실하거나 미비한 사업은 19개로 드러났다. 무려 152개 공약사업에서 다양한 문제를 드러냈다고 본다.
‘약자와의 동행’이란 시정 기조를 중심으로 성과를 내고 있다고 강조하는 오세훈 시장은 “핵심 정책을 본격 추진한 결과 비로소 현장에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자평하고 있지만, 각계 시민단체가 최근 발표한 <서울시 공약 이행 1년 평가>
자료집을 보면 오세훈 시장의 공약 중 62%가 각종 법안 위반에 포함되거나 예산 낭비 공약이며, 시민 65%는 공약을 알지 못한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또한 지난 지방선거 5대 핵심 공약인 ▲안심소득으로 복지 사각지대 없는 서울 ▲누구나 살고 싶은 서울형 고품질 임대주택 ▲서울런(Learn)으로 교육격차 해소·교육사다리 실현 ▲공공의료로 보호받는 건강특별시 서울 ▲서울 전역 수변감성도시 조성 추진 등과 관련해서는 53%의 시민이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취임 1년을 맞아 자화자찬과 말잔치를 벌이는 와중에 발표된 보고서의 내용이라고는 도무지 믿기지 않는 결과다.
문화적이라고 보기 힘든 오세훈 시장의 문화공약
오세훈 시장의 공약 대부분이 문제성 공약으로 평가받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문화와 관광 공약은 심히 우려스럽다. <서울시 공약 이행 1년 평가> 자료집에서 문화연대는 오세훈 서울시장 ‘민선 8기 공약실천계획서’의 총 244개 공약 중 문화(24개) 및 관광(2개) 분야 26개 공약에 대한 평가 작업에 참여했다. 공약 현황 조사 및 분석 결과, 오세훈 서울시정 문화 분야 공약 전반의 특징은 공약 대부분이 민선 8기 1년차 사업에 지나지 않아 진행률이 낮고, 대형 문화시설 건립이나 관광을 통한 경제적 이익 창출에 무게를 두고 있는 사업이 대다수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특히 오세훈 시장의 공약 속에는 거주민 삶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해 서울이라는 도시가 가져야 할 문화적 가치와 역할에 대한 고민이 전혀 담겨 있지 않았다. 1000만 시민이 사는 도시의 문화정책이라는 구호가 무색할 정도로 다양성도 찾을 수 없다. 천편일률적인 공약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오세훈 시장의 문화정책 역시 거시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의식과 철학 그리고 비전은 부재한 상태다. 서울이라는 도시를 둘러싼 문화환경의 변화, 새로운 주체와 미래 지향적인 문화의 형성, 문화를 통한 사회적 위기 대응 등의 전략이 보이지 않는다. 이에 접근하기 위한 문화행정 시스템의 개혁과 혁신에 대한 고민도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반복적으로 실패를 경험해온 하드웨어 중심의 공약사업, 환원주의적인 경제적 도구화 전략, 횡단과 통섭이 부재한 문화개발주의 앞에서 답답함마저 드는 게 사실이다.
왜 이렇게 답답한 문화정책이 추진되고 있는 걸까. 시발점은 오세훈 시장의 문화공약이다. 그의 문화공약이 어떤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는지 다시금 꼼꼼히 살펴봤다.
문화연대는 오세훈 시장의 문화공약을 크게 ▲‘문화시설’ 건립에 따른 쟁점 ▲공약의 ‘주체 및 대상’에 대한 관점과 절차적 쟁점 ▲경제적 이익 중심의 ‘사업적 프로그램’ ▲‘지역’ 불균형에 의한 격차 우려 및 타당성 미비 등 4개 항목으로 분류했다.
먼저 ‘문화시설’ 건립에 따른 쟁점에 해당하는 공약에는 노들섬 개발 공약과 서울아레나 복합문화시설 건립, 제2세종문화회관 조성, 잠실MICE복합문화공간 돔구장 조성, 대형 문화시설 건축과 관련된 공약이다. 여기서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 여전히 서울시는 문화시설이 부족한 도시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서울시에는 이미 대규모 공연장이 18개가 넘는다. 2016년 서울연구원이 발표한 ‘서울의 문화시설, 무엇이 가장 많이 늘었나?’에 따르면 2007년부터 10년간 서울의 문화시설 증감률을 조사했더니 공공도서관(104.5%) 다음으로 공연장(76.2%)의 증가율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또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 공연예술조사 보고서’를 보면 2010년 이후 개관한 공연장만 해도 181개에 이른다. 서울은 이미 시설면에선 차고 넘칠 만큼 충분히 ‘문화적인’ 도시다.
그럼에도 여전히 서울시 문화공약의 대부분은 대형 문화시설 건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단순히 문화시설이 많다고 좋은 도시로 평가받던 시대는 가고 없음을 망각한 처사다. 2023년 서울에 맞는 문화행정은 건축물이 아니라 사람과 환경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업적 위주의 문화정책보다 문화에 집중하는 행정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문화시설의 설치에 대한 합리적이고 객관적인 판단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그때그때 주민들의 요구로 문화시설의 확충을 결정하다 보니 충분한 조사와 검토 없이 남발되는 사례가 많다. 그 결과, 시설 중복이나 비효율적 운영으로 이어진다. 서울의 문화시설 현황과 여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고 시민의 요구를 종합적으로 반영할 통합적인 마스터플랜과 통합적 행정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이를 통해 문화시설 확충과 관리 기준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 문화시설에 대한 서울시의 정책적 비전과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두 번째 공약의 ‘주체 및 대상’에 대한 관점과 절차적 쟁점에 해당하는 공약에는 문화비축기지 재정비, 취약계층 청소년 문화예술 향유기회 확대, 종로구 이건희 기증관 송현동 조속 건립 지원, 송파구 풍납동 역사문화 중심도시 개발 등이 포함된다.
송현동에 이건희 기증관을 짓는 문제는 여전히 뜨거운 쟁점 중 하나다. 편취하게 된 방식 및 소유물의 정확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기증관 건립 관련한 이야기로만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건희 개인의 우상화나 시민들의 문화 향유 기회 증진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 곤란하다.
취약계층 청소년 문화예술 향유 기회 확대와 같은 공약은 무상급식 논쟁과 같이 ‘문화약자’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자칫 주체를 대상화하는 공약으로 비칠 가능성이 커보인다. 풍납동 역사문화 중심도시 개발 등도 지역주민과 민주적인 소통 절차 없이 추진될 가능성이 높은 공약이라고 평가한다.
세 번째 경제적 이익 중심의 ‘사업 프로그램’에는 미디어아트 랜드마크 조성, 명동·동대문·남대문·이태원·홍대 등 관광특구 활성화 등이 있다. 모두 관광과 연계된 공약들로 결국은 경제적 이익 창출에만 편중될 게 뻔하다. 서울시민의 생활 및 일상문화에 대한 고려가 결여된 정책이다. 첫 번째 공약들과 엮어 생각하면 결국 큰 자원을 투여해야 하는 사업들이어서 예산 낭비의 극치를 달릴 공약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마지막으로 ‘지역’ 불균형에 의한 격차 우려 및 타당성 미비와 관련된 공약으로, 복합시립도서관(동대문) 건립 추진, 서대문구 김병주 도서관(북가좌동 가재울 뉴타운 서울시립도서관) 신속 건립, 강서구 발산동 도서관 부지 복합 커뮤니케이션 추진 등이 있다.
이 공약들의 경우 ‘지역균형발전’을 목표로 한다지만, 큰 틀에선 보여주기식의 문화시설 건립에 불과하며, 실상은 특정 지역 힘 실어주기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된다. 지역 간 격차 해소는커녕 오히려 더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매년 선거철마다 해당 지역 공약으로 부상하지만, 번번이 추진은 막혀 있는 사안들이다. 복합시립도서관(동대문) 건립 추진의 경우 계속 늦어져 임시 초화원(야외식물정원) 운영 계획까지 등장했다. 이 부지는 오세훈 시장이 과거 시장일 때 추진한 뉴타운 사업 당시 학교 등 교육시설물 건립을 위해 확보한 공간으로, 여전히 도심 속 섬처럼 덩그러니 비어 있는 상황이다. ‘오세훈표 재개발 사업’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공간인 셈이다.
퇴행하는 서울시 문화정책
앞서 살펴봤듯 오세훈 시장의 문화공약에 정작 핵심이어야 할 문화가 빠져 있다. 오세훈 서울시정의 문화 분야 공약은 ‘그레이트 선셋 한강 프로젝트’와 같이 서울시를 거대한 랜드마크로 만들겠다는 일련의 사업들과 궤를 같이한다. 앞서 반복 언급한 ‘대형 문화시설 건립’에 해당하는 공약은 이를 위한 주력 사업이요, 그 연장선상의 사업 목록일 뿐이다.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문화정책의 퇴행성과 생활 및 일상에서 행사할 수 있는 서울시민의 문화적 권리 침해 등은 앞으로 남은 임기(3년) 동안 계속해서 문제로 떠오를 것이다.
우리는 오세훈 시장이 복귀한 2021년 선거 이후 서울시의 문화 퇴행 현상이 매우 빠르게 전개되고 있다는 사실에 특히 주목한다. 안호상 전 국립극장장을 세종문화회관 사장에 임명한 사건이 대표적이다. 안호상씨는 국립극장장 재임 당시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는 국가범죄에 연루된 인물이다. 여러 조사 결과와 정황 등을 통해서 블랙리스트 개입 사실이 드러났다. 그런 자를 서울을 대표하는 문화예술기관인 세종문화회관 사장으로 굳이 임명한 처사는 누가 봐도 상식에 반하는 일이다.
또한 ‘시민 스스로 가까운 일상에서 생활 속 예술활동을 통해 문화적 삶과 공동체를 실현하는 공간’이었던 마을예술창작소 예산을 아무런 이유 없이 전액 삭감하겠다고 시도했다. 시민이 일상적으로 문화를 접할 수 있도록 생활문화, 인력, 자원, 활동, 정보 등을 종합지원하는 거점공간으로, 생활문화 연습 또는 전시 발표·교류 등 생활문화 활동 지원과 지역사회 네트워크 구축 및 지역 문화예술 정보 공유 등의 역할을 수행하는 서울생활문화센터 예산 역시 삭감했다.
약자와의 동행을 강조하는 서울시정이건만, 고령층·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의 다양한 요구와 감성을 배려하는 디자인 확대 사업인 ‘유니버설디자인 추진’, 저소득 비정규직·특수고용노동자에게 휴가비를 지원하는 ‘서울형 여행바우처 지원’, ‘관광 취약계층 대상 여행 활동 지원’ 등과 같은 사회적 약자 대상 사업의 예산이 대폭 감소했다. 애초에 이러한 사업들은 예산 규모가 크지 않다는 점과 갈수록 심해지는 빈부격차 문제, 소수자 인권의 중요성이 대두되는 사회적 흐름 등을 고려할 때,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 조치들이다.
오세훈 시장은 2011년 좋지 않은 사건으로 정계에서 멀어진 바 있다. 약 10년 만에 서울시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긴 시간이 지났지만 달라진 게 없다. 오세훈 시장의 문화정책 추진은 여전히 관 주도의 ‘톱다운’ 방식이다. 시민을 적극적인 문화 주체로 보지 않고, 단순 향유자로 한정한 채 문화공급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생활문화 및 지역문화에 대한 정책의 비전과 방향성도 없다. 문화정책의 범위를 경쟁력과 부가가치 창출의 수단으로서만 한정하고 있다. 문화정책의 명백한 퇴행이다. 서울시민이 만들어온 문화정책의 성과를 무너뜨리고, 인사실패로 민주주의의 원칙마저 위배하는 오세훈 시장의 행보가 지극히 우려스럽다.
이미 세계는 거대한 문화시설보다는 도시의 창의성과 예술성을 높이고 시민의 문화적 역량을 키울 수 있는 생활권 단위의 문화시설에 주목하고 있다. 문화시설의 기능도 기존의 창작과 발표(유통) 중심에서 지역주민과의 교류, 교육을 통한 시민의 문화적 역량 강화, 문화거버넌스의 현장으로 변화해가는 중이다. 시대는 변해가는데, 서울의 문화정책은 왜 거꾸로만 가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두찬 문화연대 활동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