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오세티야 전쟁
두 영화는 각각 서방과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한다. 물론 진실은 2개일 수 없다. <5 데이즈 오브 워>를 보면 러시아, <어거스트 에이트>를 보면 조지아가 침략자다.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인 셈이다.
2008년 발발한 조지아와 러시아 간 남오세티야 전쟁은 21세기 신(新)냉전의 서막을 연 사건으로 평가된다. 1991년 소련 해체 이후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한 미국 주도 하의 나토(NATO)가 구(舊)동구권으로 진출하는 상황을 막지 못한 러시아의 자존심은 바닥으로 추락했다. 소련의 억압에 시달렸던 신생국가들은 독립유지를 위해 미국과 유럽연합(EU)에 손길을 내밀었다. 러시아는 이를 자국 세력권 침범으로 받아들였다.
체첸 전쟁 이후 푸틴이 집권하며 21세기 초반의 경기호황으로 겨우 추스르기 시작했다. 이에 러시아는 미국이 이라크와 아프간 양면전쟁에 허덕이는 상황을 확인하고 주변 세력권을 정비한다. 조지아는 독립 당시부터 비(非)조지아인이 주류이던 자국 내 자치공화국 압하지야와 남오세티야 문제로 분란을 겪고 있었다. 여기에 러시아가 둘의 후원자로 개입한다. 전쟁은 언제든 터질 수 있었고, 정치적 결단만 남은 상황이었다.
서방의 시각 대변한 전쟁 스펙터클 <다이 하드 2>와 <클리프 행어>의 레니 할린 감독이 연출한 <5 데이즈 오브 워>는 종군기자의 눈으로 본 전쟁 이야기다. 주인공은 이라크 전쟁 당시 조지아 평화유지군에 의해 구조된 경험 이후 남오세티야로 향한다. 현지에서 전투에 휘말린 주인공 일행은 러시아군과 오세트 민병대가 전쟁범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촬영한 뒤 데미도프 대령에게 붙잡혀 메모리카드를 내놓으라는 협박을 당한다. 이라크에서 자신들을 구했던 레조 대위의 부대에 구출된 일행은 참상을 알리고자 방송국이 있는 도시 고리로 향하지만, 이곳은 최대의 격전지다.
액션 연출 장인이 만든 영화는 전형적인 ‘할리우드 스타일’이다. 여기에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블랙 호크 다운>에 영향받은 극사실주의 전투장면을 조합했다. 도입부의 이라크 전투부터 영화는 내내 전쟁 스펙터클의 한복판으로 관객을 이끈다. 정치 스릴러를 더해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린다. 당시 조지아 대통령 미하일 사카슈빌리가 전쟁에 대처하는 모습은 골리앗에 맞서는 다윗으로 묘사된다. 오세트인(人)이지만 미국 유학파 지식인 타티아, 애국심 강한 레조 대위가 종군기자들과 협력한다. 반대편에는 전쟁의 폭력적 본질을 상징하는 러시아군 데미도프 대령과 ‘더러운 작전’ 전문 코사크 군인 다닐이 선다. 주인공은 그들의 전쟁범죄를 규탄하지만, 이들은 ‘전쟁은 원래 그런 거다’란 운명론과 함께 조지아 정부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알려준다.
러시아 시각을 영화화… 역사전쟁 선포 정반대 입장으로 러시아에서 만든 <어거스트 에이트>가 있다. 제목은 ‘8월 8일’, 바로 전쟁이 시작된 날이다. 기이할 만큼 두 영화의 구조와 분위기는 닮았다. 국내 소개 당시 러시아 판 <트랜스포머>로 홍보한 덕분에 ‘낚였다’는 반응이 많았다. 이혼녀 크세니아는 여름휴가를 애인과 보낼 겸 남오세티야 평화유지군으로 근무하는 전 남편에게 어린 아들 토마를 보낸다. 토마는 한부모 가정에서 겪는 혼란 때문에 현실에서 도피해 로봇에 빠진 상태다.
설마 했던 전쟁이 (조지아의 침공으로) 터진다. 이제 크세니아는 토마를 구해야 한다. 러시아판 ‘엄마는 강하다!’ 기조로 할리우드보다 더 전형적인 할리우드 가족주의 액션물로 흘러간다. 러시아 군인들은 21세기에 기사도가 부활한 듯 목숨을 걸고 모자 상봉을 돕는다. 뻔한 전개에도 불구하고 전투묘사에 대단한 공을 들인데다 소년의 상상 속 로봇 전투장면까지 가미해 최첨단 ‘배달의 기수’를 선보인다.
<어거스트 에이트>는 가부장적 가족주의 세계관을 예찬한다. 당시 대통령이던 메드베데프를 모델로 한 젊은 지도자가 등장해 미국에 주눅 들지 않는 단호한 결단력을 선보인다. 토마가 현실을 부정해온 건 믿고 의지할 ‘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긍정적 어른으로 묘사되는 러시아 군인 레흐는 할리우드 액션영화의 과묵한 영웅 못지않다. 토마는 자연스레 그를 따른다. 반면에 영화 속 미국과 서방에 줄을 대거나 겁내는 자들은 좋게 그려지지 않는다. 미국의 심기를 거스르면 신냉전 시대가 도래할까봐 겁내는 정치고문이나 부와 쾌락만 좇는 크세니아의 애인인 은행가는 타락하고 비겁한 존재에 불과하다. 외세에 맞서 국민을 지키는 강한 지도자와 정부, 군대의 역할을 긍정하는 태도가 가득하다.
재앙의 기원을 찾아서 두 영화는 각각 서방과 러시아의 입장을 대변한다. 물론 진실은 2개일 수 없다. <5 데이즈 오브 워>를 보면 러시아, <어거스트 에이트>를 보면 조지아가 침략자다.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건 러시아가 분명하지만 평화유지군으로 활동하던 러시아군을 선제공격한 건 조지아군이었음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다. 두 영화는 서로의 입장을 옹호하고자 프로파간다(선전선동) 성격을 짙게 가미했다. 영화를 통한 ‘역사전쟁’인 셈이다. 본질은 과연 무엇일까?
답을 찾기 위해선 1992~1993년의 조지아 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소련이 해체된 자리에 15개 국가가 탄생했지만, 개별 국가 내에도 자치공화국이 별개로 존재했다. 개별 독립국 안에서 주류민족의 핍박을 받을 걸 겁낸 소수민족의 분리운동은 불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확산한다. 러시아에 대해 체첸이 그랬던 것처럼 조지아 내 압하지야인과 오세트인은 분리독립을 시도했고, 러시아가 후견인이 된다. <텐저린즈: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는 30년 전 조지아-압하지야 내전 현장이 배경이다.
산골에서 감귤농사를 짓는 에스토니아인(人) 노인 이보는 집 앞에서 전투를 벌이다 부상당한 압하지야 측 체첸용병과 조지아군인을 각각 구해낸다. 깨어난 둘은 서로를 죽이려 들지만 생명의 은인이 하는 말을 거역하진 못한다. 이보는 둘을 떼어놓고 서로 죽이지 못하게 서약을 받지만 살얼음판은 계속된다. 잡아먹지 못해 안달이지만 한집에서 먹고 자면서 둘은 조금씩 같은 인간을 대하는 표정으로 변해간다. 그러나 현관 앞까지 찾아온 전쟁은 작은 비무장지대인 이 공간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조지아 감독 자자 우루샤제는 자국 내 민족분쟁에 소수자인 에스토니아인 주인공을 등장시켜 균형감각과 성찰을 유도한다. 대부분 장면이 실내에서 진행되기에 심리극을 보는 기분도 든다. 전쟁영화라면 상상할 수 있는 장대한 액션 장면을 기대하면 실망하겠지만 인간들의 분쟁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웅장한 카프카스 풍광과 함께, 결국 온전히 수확할 수 없는 과수원 풍경이 영화 속 주인공들의 운명과 고스란히 겹친다.
영화는 전쟁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연민과 성찰 그리고 이를 비웃는 전쟁의 광기 속으로 보는 이를 끌어들인다. 같이 밥을 먹고 대화를 하며 원수지간이라도 서로 이해하려 노력하는 가능성의 순간이 의미심장하다. 끝내 당시 내전은 불완전한 봉합으로 끝났고, 15년 후 남오세티야 전쟁으로 이어진다. 지금도 이보가 살던 산골은 조지아 내 분쟁지역으로 남아 있다. 러시아가 미(未)승인국의 후견자로 버티는 것 역시 여전하다.
<김상목 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