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즈믹-밀실 아닌 밀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22.07.25

‘밀실(密室)’이라 하면 문자 그대로 밀폐된 방을 의미한다. 추리소설에서 밀실은 오히려 그 반대 의미에 가깝다. 얼핏 외부와 완전히 차단된 곳처럼 보이지만 만약 시체라도 발견된다면 그 의미는 곧바로 역전된다. 우선 교묘한 물리적·심리적 장치를 이용해 밀실을 가장한다면 살인을 자살로 위장할 수 있다. 범인의 혐의가 분명해도 밀실의 트릭을 밝혀내지 못한다면 범죄를 입증하고 기소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즉 추리소설에서 밀실이란 실제로는 열린 공간을 의미한다. 그것도 완전범죄를 목표로 만들어낸 수수께끼 그 자체를 현현한 공간이다. 그러니 만약 서두부터 무려 1200번의 밀실 살인을 예고하는 소설이라면 이는 장난이나 농담처럼 느껴질 일이다. 그도 아니라면 추리 장르에 대한 반발이거나. 세이료인 류스이의 데뷔작 <코즈믹>은 그런 크고 작은 야심을 그러모은 작품이다.

세이료인 류스이의 <코즈믹> 표지 / 비고

세이료인 류스이의 <코즈믹> 표지 / 비고

1994년 1월 1일, 언론사와 경찰청 등에 일제히 범죄예고장이 전송된다. “올해 1200개의 밀실에서 1200명이 살해당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다.” 자신을 밀실경(密室卿)이라 소개한 미지의 범죄자는 이후 일본 전역에서 매일 3~4명을 살해한다. 첫 번째 희생자는 새해 참배객으로 붐비는 교토 헤이안 신궁에서 예리한 날붙이에 목이 절단돼 사망했다. 이때 피살자의 등에는 그의 피로 ‘밀실일’이라 쓰여 있었다. 그런데도 사망 순간은 물론 수상한 사람을 목격했다는 사람조차 하나 없다. 가히 3만명으로 둘러싸인 밀실이라 할 만하다. 이후 택시기사가 택시 안에서 홀로 목이 잘려 사망하고, 신칸센 화장실이나 스키장 리프트에서도 목이 잘린 시체가 발견되는 등 동일범의 살인이 연이어진다.

그렇게 모두 19건의 살인사건이 무려 400페이지 넘게 이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모두가 밀실은 아니지만, 하나같이 불가사의하다는 면에서 밀실 살인의 함의엔 부합한다. 게다가 일련의 사건들은 <1200년 밀실전설>이란 소설의 세부 내용과 거의 일치하며, 에도시대와 헤이안시대 때도 1200건의 밀실 연쇄살인이 있었다는 기록이 발견된다. 동 시간대 영국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발생한다. 막연하게나마 미스터리이기보다는 제목에서 연상되는 그대로 ‘코즈믹 호러’에 더 가까워 보일 정도다. 그만큼 너무나도 초자연적인 사건처럼 느껴지지만 JDC(일본탐정클럽)라는 작중 공인 기관의 여러 탐정은 각 문헌을 기반으로 사건의 범인과 진상을 기어이 ‘추리’해간다.

더욱이 JDC 탐정들은 각자 독특한 추리법을 마치 필살기인 양 발휘하는 데다 능력에 따라 등급이 구획되는 등 꼭 일본 소년만화를 연상시킨다. 그 추리법이란 것 또한 때때로 잠재의식이나 신통력에 기대는가 하면, ‘독자에 대한 도전’ 페이지마저 어차피 진상을 간파하진 못했을 테니 감으로라도 맞춰보라는 식이다. 이쯤 되면 진지한 건지 조롱하는 건지조차 모호하다. 그러면서도 말장난과 애너그램(문자의 순서를 바꿔 새로운 단어나 문장을 만드는 놀이), 도해를 수십차례 활용하고, 신비주의를 이성주의로 다잡으면서 결국 미스터리 장르의 핵심을 향한다. 어쩐지 반(反)추리소설로 시작해 역(逆)추리소설로, 나아가 초(超)추리소설을 지향하는 듯한 모양새다. <코즈믹>은 1996년 메피스토상 수상 당시에도 추리소설을 역행하는 듯 아예 일본 역사를 아우르는 패기로 눈길(혹은 눈총)을 받았다. 뭐가 됐건 작가가 자랑처럼 앞세운 ‘문제작’이란 수식과 ‘궁극의 엔터테인먼트’를 표방한 메피스토상의 취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임엔 틀림없다.

<강상준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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