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선 무적호-“모든 게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냐”

고장원 SF평론가
2022.07.18

스타니스와프 렘의 <우주선 무적호>(1964)는 미지에 대한 불안과 회의로 가득한 장편소설이다. ‘무적호’라는 작명조차 반어적으로 읽힌다. 강력한 무장을 갖춘 인류 우주선 무적호가 외계행성 레기스 3에 착륙한다. 이 사막투성이 행성에 온 것은 전에 여기 왔다 실종된 또 다른 우주선의 행적 조사 차원이다. 무적호 승무원들은 마침내 우주선 잔해를 발견하지만, 원인을 알 수 없다. 그러다 현지탐사에 나선 승무원 일부가 파리 떼 습격에 뇌가 초기화되면서(초강력 자기장 세례에 신생아 수준으로 지적 발육상태가 퇴행하면서) 실마리가 잡힌다. 상대방에 대한 무지 탓에 상당한 인명피해를 입으며 알게 된 사실은 파리 떼가 실은 곤충이 아니라 벌레 크기의 작은 로봇들로, 이 개체가 모여들어 자기장 네트워크를 이루며, 안개나 구름처럼 한덩어리가 되면 인간 뺨치게 뛰어난 지능을 지닌 존재로 탈바꿈한다는 것이다.

스타니스와프 렘의 <우주선 무적호> 표지 / Wydawnictwo Literackie

스타니스와프 렘의 <우주선 무적호> 표지 / Wydawnictwo Literackie

지능 있는 인공존재를 다룬 소설은 과학소설 역사에서 차고 넘친다. 이 장편이 렘의 작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솔라리스>(1961)를 비롯해 <에덴>(1959), <그의 주인의 목소리>(1968), <대실패>(1986) 등으로 이어지는 ‘최초의 접촉 완전실패’ 시리즈에 속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주된 화두는 불가지론에 입각한 인간중심주의 비판임을 알 수 있다. <우주선 무적호>는 제임스 P. 호건의 <생명창조자의 율법>(1983)보다 훨씬 앞서 자기복제 가능한 무생물(기계생물)의 진화 가능성을 사색한다(기계생물의 진화는 커트 보니것의 외계종족 ‘트랄파마도르인’ 시리즈 첫편 <타이탄의 미녀>(1959)에서도 언급된다. 다만 이 경우 과학적 추론보다 우화적 풍자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결이 좀 다르다). 작가에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러한 존재들과 우주에서 조우했을 때 과연 인류가 그들과 소통 가능할지에 관한 물음이다.

기계파리 떼는 아득히 먼 옛날 이곳을 방문한 외계문명의 잔존물이다. 끊임없는 생존경쟁으로 땅 위의 생명을 말살했고(그 결과 대륙 전체가 풀 한포기 없는 사막이다), 심지어 기계 간 싸움에서도 승리한 최후의 생존자다. 상대적으로 많은 에너지와 복잡한 보급관리체계가 필요한 고등기계조차 이들에게 멸종당했으니까. 기계파리들은 개체나 작은 군집 정도론 해가 되지 않고 행동도 단순하지만, 거대 구름만 한 몸집을 형성하게 되면 강력한 전자기 간섭으로 침입자를 격퇴한다. 대화는커녕 계속 공격만 해오는 상대를 도통 이해할 수 없는 무적호의 선장이 한층 더 강력한 무기로 응전하려 하자 부하 중 한사람은 그런 식의 대응은 보복하겠다고 ‘바다를 채찍질’하는 짓과 진배없다고 조언한다.

<솔라리스>의 원형질바다가 인간을 빼닮은 방문자를 인간들의 기지에 연신 보내는 까닭을 전혀 짐작할 수 없듯이 <우주선 무적호>에서도 곤혹스러운 상황이 반복된다. ‘생각하는 원형질바다’에 비하면 기계생물들은 탄생배경과 작동원리를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다. 하나 인사말을 건네기는커녕 인간은 마치 파리 떼처럼 기계군집생물에 박멸당할 위기에 놓인다.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거나 우주가 생겨난 목적이 인류탄생을 위해서라는 이른바 ‘인류원리’가 무색해진다. 선장의 부관 로한은 결국 다음의 결론에 이른다. ‘모든 게, 모든 곳이 인간을 위해 존재하는 건 아니야.’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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