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지위 불안’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2021.05.10

‘벼락거지’라는 말이 유행이다. 아파트와 주식, 암호화폐의 재테크 열차에 탑승하지 못해 상대적 박탈감을 겪는 사람들의 자조적 타령이다. 아랑곳하지 않으려 해도 계속 듣다 보면 불안감이 뭉게구름처럼 한 무더기 피어오른다. 사회적 계서제(hierarchy)에서 밑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는 두려움만큼 삶을 뒤흔드는 감정은 찾기 힘들다. 불안의 핵심은 낮은 지위로 추락하는 데 있다. 작가 알랭 드 보통의 베스트셀러 <불안>의 원제목이 ‘지위 불안(status anxiety)’인 것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지점이다.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은행나무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은행나무

보통에 따르면 지위는 사회적 사다리에서 개인이 자리 잡은 위치이자 가치다. 타인의 배려와 존중을 갈망하는 사람 누구나 더 높은 지위를 얻으려 하고 지금의 포지션보다 떨어지면 사회에서 추방된다는 걱정에 휩싸이게 된다. 안타깝게도 위쪽에 빈자리는 별로 없다. 설사 올라가더라도 유지는 더욱 어렵다. 홍진(紅塵)에 부대끼는 모든 이들이 불안에서 벗어날 수 없을 바에야 그것을 이해하고 이야기하는 것도 유익한 대처법이 될 수 있단다.

크게 보면 불안의 원인은 다섯가지다. 먼저 사랑의 결핍이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인간은 인정욕구의 노예다. 돈, 명성, 권력의 추구는 사실상 사랑에의 갈구다. 인간은 사랑이라는 헬륨이 단 한 순간도 공급되지 않으면 바람이 새는 풍선과도 같아 자아상이 해체된다고 한다. 사회적 지위와 인간의 가치를 등호로 간주하는 속물근성도 불안을 조장한다. 속물에게 인정을 못 받아 괴로운 것이 아니라 속물적 가치를 강요하는 언론이나 SNS가 평안한 마음을 들쑤시기 때문에 힘든 것이다.

무엇보다 근대사회에서 평등의 가치가 확산하면서 기대수준이 높아지고, 신분질서의 해체로 능력주의 문화가 확산한 것도 삶을 불만스럽게 만든다. 안분지족의 전근대적 세계관과 달리 누구나 인생역전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성공담이 더 궁핍한 인생을 만든다는 것이다. 게다가 전통사회와 달리 경제가 지위를 결정하는 현대사회의 특성상 불확실성은 갈수록 가중된다.

진단이 나왔으니 처방전을 받을 차례다. 철학과 예술, 정치와 기독교 그리고 보헤미안적 생활방식이다. 삶의 본질과 의미를 탐구하는 철학과 예술은 지위에 대한 개인의 주도권을 회복시켜준다. 타인의 평판에 우리의 가치를 맡기지 말자는 엄격한 훈육이 아버지와 같은 철학이라면, 범상한 삶의 고귀함과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위로가 예술이라는 어머니다. 정치와 기독교는 지위 분배의 원칙을 재구성하는 방안을 알려주면서 불안감을 해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아예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가자는 보헤미안은 대안적 삶에 정통성을 부여하면서 세속적 실패가 성공의 다른 얼굴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따져보니 불안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삶은 없는 것 같다. 지위를 없앤다고 불안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 지위를 인정받는 길들이 다양하다는 명제에서 출발하면 된다. 속물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한다면 대가를 지불해야 하겠지만 가족이나 철학자, 보헤미안 등 누구로부터 인정받기를 원하느냐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으니까.

<정승민 독서팟캐스트 ‘일당백’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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