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페리온 시리즈> 외

고장원 SF평론가
2020.03.09

유전공학과 접목한 파격적인 우주선들

댄 시몬스의 <히페리온> 한국어판 표지 / 열린책들

댄 시몬스의 <히페리온> 한국어판 표지 / 열린책들

통상 우주선 하면 쇳덩이부터 떠오른다. 액화된 수소나 산소를 점화시키는 화학반응이 기본 작동원리이고. SF에서는 좀 더 상상의 나래를 뻗어 아직 실현되지 않은 플라즈마 상태의 이온이나 반물질을 연료로 삼기도 한다. 스티븐 호킹의 지지 아래 유리 밀러가 연구 재원을 대는 ‘브레이크스루 스타샷’ 프로젝트처럼 우주선이 고작 몇㎝, 몇g에 불과하다면 광자, 즉 빛이 미는 힘만으로도 이웃 별로 날아갈 수 있다. 하지만 제약 없이 뭐든 시도하는 SF작가들은 이처럼 식상한 틀에서 벗어나 아주 파격적인 우주선 개념을 내놓는다. 이른바 우주선에 관한 ‘개념적 돌파’(개념적 돌파란 기존 인식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을 만한 발상의 코페르니쿠스적 대전환을 지칭하는 SF 용어다)랄까? 유전공학과 맞물린 일종의 친환경 우주선 유형이 단적인 예다. 이그드라실호(댄 시몬스의 <히페리온 시리즈>)와 셋째물고기호(은네디 오코라포르의 <빈티>), 그리고 디스커버리호(<스타트랙 디스커버리 시리즈>)라고 들어보셨는지?

길이가 무려 1㎞에 이르는 이그드라실호(The Yggdrasill)는 우주선의 기본뼈대가 거대한 나무다. 나무가 진공의 우주에서 죽지 않게 주요 부위가 투명한 격벽으로 에워싸여 있으며, 근처 항성의 빛을 받아 광합성을 한다. 덕분에 별도의 산소탱크가 필요 없다. 우주에서는 중력이 없어 나뭇가지가 방사형으로 고루 뻗어나가므로 우주선은 부분적으로 공이나 구 모양에 가깝다. 이런 타입은 우주 공간에서만 항행 가능하며 지구 같은 암석행성 지표면에서의 이착륙은 불가능하다.

거대한 새우처럼 생긴 셋째물고기호는 딱딱한 외골격이 우주의 진공과 추위를 막아주며 이 생물의 몸속에 있는 세 개의 호흡낭에 사람들이 탑승한다. 이 살아 있는 배가 생체기술의 걸작인 까닭은 호흡낭들이 유전공학 덕에 인간 거주구로 쓸 수 있을 만큼 애초보다 훨씬 더 커졌기 때문이다. 호흡낭 안에는 성장발육이 왕성한 식물을 심어 승무원들이 뱉는 이산화탄소를 산소로 바꿔놓는다. 심지어 이 새우우주선은 이착륙도 가능하다. 착륙 시 대기 마찰로 형편없이 타버린 외부껍질은 지상의 중력에 적응하고 나면 허물처럼 벗겨지고 새로 돋아난 껍질로 대체된다.

디스커버리호는 알쿠비에르 항법을 이용하는 초공간·초광속 우주선이나 무적은 아니다. 빛보다 빨라 봤자 우주는 거의 무한이라서 완벽한 성도가 없이 정확한 목적지에 다다를 수 없다. 그러나 지구상의 극미동물인 완보류를 거대하게 부풀려놓은 형상의 우주괴물이 보이는 생체리듬을 역추적해 문제를 해결한다. 이 괴물의 먹이는 우주 곳곳에 희박하게 흩어진 일종의 균사포자들이므로 승무원들은 이 괴물의 뇌에 기록된 먹이분포 정보를 정교한 지도처럼 활용한다.

SF 속 생명공학이 우주여행에 관여하는 부분은 우주선만이 아니다. 21세기 들어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우주산업 선진국들이 실질적인 건설방안을 모색해온 궤도엘리베이터 또한 탄소나노튜브 같은 최첨단 과학기술이 아니라 자연의 힘에 기대는 아이디어도 있다. 래리 니븐의 장편 <무지개 화성>은 궤도엘리베이터 건설상의 난점을 기발한 설정으로 우회하는데, 화성에 오래전 궤도엘리베이터로 써도 충분할 만큼 거대하게 자라는 나무가 있었음이 밝혀진다. 이러한 예들이 그저 덧없는 몽상일까? 유전공학이 인간을 복제하고 나노 디지털 공학이 뇌를 복제하려는 시대에 과학기술이 우리의 삶을 어디까지 변모시킬지 수십 년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물어보시라.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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