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티-SF문학의 인종장벽, 흑인작가들이 묻는다

고장원 SF평론가
2020.02.24

단일민족이라 여기면서 지역 차별 조장이 부당하다 따지기보다 외려 이에 편승하는 한국인이 적지 않은 현상을 어찌 보는가? 과학기술이 삶을 시시각각 바꿔놓는 21세기에도 공공연히 지역 차별이 근절되지 않는 현실을 박정희 정권의 대선 전략 이래 작금의 지역구 국회의원 선거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정치꾼들 탓으로 돌리면 될까? 날조된 선전공작이 먹힌다면, 진실과 상관없이 그런 헛소리에 현혹되는 귀들이 있어서다. 그러니 지역색 정도가 아니라 한 나라에 살아도 피부색과 문화 차이로 소수집단이 겪는 고초는 오죽할까.

은네디 오코라포르의 중편 <빈티> 한국어판 표지 / 알마

은네디 오코라포르의 중편 <빈티> 한국어판 표지 / 알마

미국 흑인여성작가 은네디 오코라포르의 <빈티(Binti)>(2015)에서는 지구의 한 시골 소녀가 뛰어난 수학능력으로 은하 최고대학에 입학 허가를 받아 우주여행길에 오른다. 그는 외계종족 메두스인들의 습격에도 불구하고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외려 이들의 평화교섭대리인으로서 공을 세운다. 중요한 것은 주인공 빈티가 아프리카 출신의 16살 흑인 여자아이라는 점이다. 2016년 휴고상과 네뷸러상을 받은 이 중편은 ‘오치제를 바른 소녀’라는 부제에서 보듯, 빈티를 통해 흑인 고유의 정체성이 얼마나 아름답고 고귀한지 누누이 강조한다. 이 여자아이는 고향의 붉은 흙과 식물기름을 섞은 반죽을 가문 특유의 방식으로 꼰 머리카락과 온몸에 늘 덕지덕지 바른다. 누가 뭐라든 그것이야말로 가장 ‘빈티’다우므로. 백인들이 주류인 공항과 우주선에서 그리고 메두스인들 앞에서 그녀는 불안한 속내를 다독이며 기를 뿜는다.

통상 영미 SF계에서 인종문제는 젠더문제보다 관심이 부족한 것 같다. 일찍이 자메이카 출신 흑인여성작가 날로 홉킨슨은 장편 <반지 낀 갈색 피부 소녀>를 쓴 동기가 “늘 인간소외를 뇌까리나 정작 소외된 자의 손에 쓰인 적 거의 없는 이 장르문학을 뒤엎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여전히 영어권 과학소설 저자 대부분은 백인들이다. 이따금 흑인작가들이 과학소설이나 환상소설을 발표하지만 ‘미국 흑인문학’이란 꼬리표가 붙은 채 서가에 비치된다. 장르문학만으로도 좁은 시장인데 인종 분류 태그가 붙은 마이너 문학코너라니. 이런 식의 문화적·문학적 격리는 마술적 리얼리즘 계열의 멕시코 소설들과 북미원주민(인디언) 문학에서도 마찬가지로 일어난다.

N. K. 제미신이 쓴 <빈티>의 서문은 은네디의 여주인공 못지않게 흑인여성으로서의 자의식이 가득하다. 그간 많은 수는 아니나 인종문제를 다룬 수작들이 발표되긴 했다. 하지만 <빈티>를 그 목록에 선뜻 올리자니 2% 이상 부족한 느낌이다. 원인은 간단하다. 소수민족이어도 굴하지 않는 인종적 자부심이 주인공의 사건해결과 별 상관이 없이 겉도니까.

빈티가 명예회복을 한답시고 대량살상을 저지른 외계인들로부터 무사히 살아남아 이들과 움자대학 측 사이 중재를 맡게 된 것은 비주류 인종이란 자신의 변경적 지위를 절감해서가 아니라 운 좋게도 통역과 보호를 동시에 해주는 미지의 장치를 지닌 덕이다. 만일 그녀가 변방인종이라 푸대접을 받은 괴로운 기억을 발판 삼아 그간 우주 문명사회에서 소외되었던 호전적인 외계종족에 대한 이해를 심화시켜 나갔다면 <빈티>를 인종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SF 수작으로 꼽기에 모자람이 없었으리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영화제 4관왕에 오른 것은 반가운 소식이다. 허나 다른 편에서는 미국 SF계의 인종장벽에 대한 흑인작가들의 끊이지 않는 성토가 들려온다. 인종적 편견의 담을 허물자면 얼마나 많은 세월이 필요할까?

<고장원 SF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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