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상 초유 현직 대통령 탄핵소추 성난 민심의 역풍을 부르다

글/원희복 선임기자·사진/이상훈 선임기자
2015.10.20

여의도가 ‘대한민국 정치 1번지’가 된 것은 1975년 9월 22일 제94회 정기국회가 열리면서부터다. 그전까지 국회의사당은 광화문 뒤에 있던 중앙청(현재는 헐렸음)과 태평로 구 부민관(현 서울시의회)을 전전했다. 전쟁통에는 대구·부산의 극장과 심지어 체육관을 국회로 쓰기도 했지만, 대체로 태평로 국회의사당 시절이 가장 길었다.

정부 수립과 한국전쟁, 그리고 장기집권, 군사 쿠데타, 3선 개헌 등 파란의 현대사와 함께한 25년의 태평로 의사당 시절은 국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벌어졌다. 국회 의정기념관 1층에는 의정 진기록관이 있다. 여기에 보면 본회의 최다 발언 의원(3대 국회 박영종 의원), 발언 속도가 가장 빨랐던 의원(3·4·5대 김선태 의원), 최장 의사진행 발언(1964년 김대중 의원의 5시간19분) 등이 기록돼 있다. 여기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수치스런 의정기록인 최단시간 법안 통과(1958년 12월 신국가보안법 날치기), 최장 본회의장 농성(1967년 3선 개헌을 위한 6·8 총선 부정 항의) 등의 의정기록도 대부분 태평로 국회에서 세워졌다. 따라서 1975년 시작된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특이하거나 주목된 의정 신기록은 없었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던 여의도 국회. 지붕 원형 돔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내린다는 의미라지만 첩첩이 경찰이 가로막고 경비를 서고 있다.

헌정사상 최초로 현직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했던 여의도 국회. 지붕 원형 돔은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결론을 내린다는 의미라지만 첩첩이 경찰이 가로막고 경비를 서고 있다.

경호권 발동, 3분 만에 가결 처리
그런데 2004년 3월 9일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는 헌정 사상 전무후무한 표결이 가결됐다. 이날 오전 11시22분 박관용 국회의장은 경호권을 발동해 농성 중이던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강제로 끌어냈다. 경위에게 끌려 나가면서 울부짖는 의원들을 뒤로하고 박 의장은 “개회를 선언합니다, 의사일정 제1항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상정합니다”라고 선언했다. 이어 나온 조순형 의원은 “제안설명은 유인물로 대체합니다”라고 말하자 의장은 “투표를 실시합니다”라고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중간에 의사봉을 두드리는 시간까지 합해 헌정사상 처음 발의되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심의는 불과 3분 만에 끝났다. 표결 결과 재적의원 270명 중 열린우리당 의원을 제외한 야3당(한나라당, 민주당, 자민련)과 무소속 의원 195명이 투표해 찬성 193표, 반대 2표로 가결됐다.

국회의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로 현직 대통령의 직무는 정지됐다. 이런 대통령 ‘궐위사태’는 혁명이나 쿠데타 등이 아닌 정상적인 헌정질서에서는 처음이었다. 이런 대통령 공백기간은 헌법재판소의 탄핵안 기각 결정이 내려진 5월 14일까지 두 달 넘게 계속됐다.

그렇다면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가결된 이유는 무엇인가.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제출한 탄핵안 제안사유를 보면 “노 대통령은 국민을 협박하여 특정정당 지지를 유도하고 총선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을 반복함으로써 국민의 자유선거를 방해하는 행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2004년 3월 9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열린우리당의 반대 속에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2004년 3월 9일 박관용 국회의장이 열린우리당의 반대 속에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선포하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현직 대통령에 대한 탄핵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법 위반 결정이다. 노 대통령은 2004년 2월 24일 방송기자클럽 초청 대통령 기자회견에서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해줄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 발언에 대해 야당과 보수단체의 대통령의 선거 개입·선거법 위반 논란이 일었다. 이에 중앙선거관위는 선거법 위반 결정을 내리고, 3월 3일 대통령에게 ‘중립의무를 지켜달라’는 공문을 보냈다.

당시 선관위 결정에 대해 청와대는 “헌법기관의 결정을 존중하지만 납득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밝혔다. 나중에 노 대통령은 자서전에서 “대통령이 선거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한다는 것은 틀림없는 말이다. 예를 들어 여당 후보가 공무원을 동원해 돈봉투를 뿌리거나 군인들이 여당 후보를 찍도록 병영에서 공개투표를 지시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인 대통령이 선거와 정치에 대한 의사표현을 하지 못하게 막는 것은 헌법과 법률을 잘못 해석한 것이라고 본다”라고 적었다.(노무현 <운명이다> 2013)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알리는 <경향신문> 호외를 시민들이 읽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대통령 탄핵안 가결을 알리는 <경향신문> 호외를 시민들이 읽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비주류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이지매
사실 대통령의 정치적 발언 한계는 애매모호하다. 지난 7월 25일 박근혜 대통령은 국회에서 송부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배신의 정치는 결국 패권주의와 줄 세우기 정치를 양산하는 것으로,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대통령이 국무회의라는 공식 자리에서 ‘선거에서 여당 유승민 원내총무를 낙선시키라’는 요지의 발언을 한 것이다. 당선의 덕담이 아닌, 낙선의 악담이 오히려 더 정치적일 수도 있다. 이 발언도 논란이 일었지만 중앙선관위는 이를 문제삼지 않았다.

국회에 제출된 탄핵소추 의결서에는 ‘총선 민심에 영향을 미치는 언행’ 이외에 ‘측근과 참모들의 권력형 부정부패’와 ‘국민경제 파탄으로 IMF 위기 때보다 더 극심한 고통’을 들고 있다. 이에 대해 노무현재단 측은 “2004년 3월 8일 검찰 중간수사 발표에 따르면 여당의 대선캠프 불법자금은 113억8700만원인 데 비해 한나라당이 수수한 불법자금은 823억원”이라고 밝혔다. 야당이 훨씬 대선 불법자금을 많이 썼다는 것이다.

경제 파탄 주장에 대해서도 노무현재단 측은 “노 대통령 재임 5년간 평균 실질경제성장률은 4.34%였다”면서 “2008~2012년 이명박 정부 5년 평균은 2.9%에 불과했다”고 반박했다. 실제 박근혜 정부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8%로 더 떨어졌다. 대통령 탄핵 사유에는 가계부채 439조원 초과도 있다.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인 2007년 가계부채는 665조원 수준, 이명박 정부 5년간 가계부채는 1000조원에 이르렀다. 현 박근혜 정부 2년 반에는 1130조원이 넘어섰다.

결국 야당이 제기한 대통령의 정치 중립 위반, 측근의 부정부패, 경제파탄 등 세 가지 탄핵 이유는 ‘허구’였다.

그렇다면 정부 수립 최초의 현직 대통령 탄핵의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비주류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정치적 이지메’였다. 노 대통령 자신도 국회 탄핵안이 가결된 직후 “저는 항상 원칙을 지키다가 정치권의 비주류와 소수로 살아왔다”면서 “정치에서 원칙을 버리고 좋은 게 좋다고 타협하면 결국 국민에게 손해가 되고 정치는 제자리걸음을 하거나 퇴보한다”고 소회를 밝혔다.(노무현, <운명이다> 2013) 노 대통령 스스로 ‘원칙을 지키는 비주류’로 평가한 것이다. 한승헌 변호사는 ‘보수세력의 비주류 대통령 흔들기’라고 규정했다.(한승헌의 재판으로 본 현대사, <경향신문> 2015)

여기에 대통령의 발언을 거두절미하고 왜곡한 보수언론이 앞장섰다. 한 보수신문은 2004년 1월 14일 ‘노 대통령, 측근비리 수사 발표 다음날 불만 표시 “검찰 두 번은 갈아 마셨겠지만”’이라고 보도했다. 청와대에서 열린 송년오찬 모임에서 대통령이 이런 발언을 했다는 것이다. 야당은 이런 발언을 통해 노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간섭·방해했다며 탄핵사유서에 명시했다. 하지만 해당 언론은 2005년 2월 19일 “확인 결과 노 대통령은 그런 발언을 한 사실이 없는 것으로 밝혀져 바로잡습니다”라는 정정보도문을 실었다.

노 대통령의 탈권위주의적 행보도 대통령을 ‘우습게’ 아는 요소가 됐다. 2003년 3월 9일 평검사와의 대화에서 ‘판사 출신의 여성’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한 것에 ‘앙심을 품은’ 한 검사가 “대통령도 취임 전 부산 동부지청장에게 청탁 전화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라고 말할 수 있던 것도 그런 배경이다. 이때 노 대통령은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죠?”라는 유명한 발언을 남겼다. 이 발언도 ‘국가원수로서 품위를 스스로 훼손하는 부적절한 발언’으로 지목돼 탄핵사유에 포함됐다.

국회 의정기념관에 설치된 ‘16대 국회 대통령 탄핵’ 섹션은 기념이라기보다 민심을 읽지 못한 ‘참회’의 증거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국회 의정기념관에 설치된 ‘16대 국회 대통령 탄핵’ 섹션은 기념이라기보다 민심을 읽지 못한 ‘참회’의 증거라는 표현이 적당하다.

처음 등장한 촛불시위 외국까지 번져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서 대통령 권한은 정지되고 고건 총리가 직무를 대행했다. 하지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여소야대 국회가 탄핵한 것에 국민이 들고 일어섰다. 국회 앞에서는 1만5000명 시민이 모여 ‘16대 국회 장례식’을 열었다. 그 주말인 3월 20일 서울 광화문을 비롯한 전국 40여개 도시에서 30만명의 시민들이 촛불을 들고 ‘탄핵 반대’ 시위를 벌였다. 촛불시위는 이때 처음 등장했다. 탄핵 반대 촛불시위는 미국·캐나다·호주 등 외국으로 확산됐다.

마침 그해 4월 15일이 제17대 총선일이었다. 국민들은 여소 열린우리당에 과반수가 넘는 152석을 안겨줬다. 역대 총선에서 여당이 최초로 원내 과반수를 차지한 것이다. ‘탄핵 5인방’이라 불리며 탄핵을 주도했던 박관용 국회의장,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 홍사덕 총무, 새천년민주당 조순형 대표와 유용태 원내총무가 모두 낙선, 정계에서 물러났다. 자민련 김종필 총재도 낙선해 정계를 떠났다. 대통령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의 준엄한 심판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대통령 탄핵안은 헌법재판소 심사로 넘어갔다. 헌재는 7번의 변론 끝에 2004년 5월 14일 탄핵안을 기각했다. 헌재는 대통령이 헌법과 법률 일부를 위반했으나 그 위반 정도가 탄핵의 사유가 될 정도로 중대하지는 않다고 판단했다. 노 대통령은 다시 현직에 복귀했고, 이로써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법적 심판이 끝났다.

현직 대통령에 대한 국회의 탄핵안 가결은 우리 국회의 ‘무소불위’ 능력을 과시한 사례다. 지금도 여의도 국회에 있는 의정기념관 16대 국회 섹션에는 ‘대통령 탄핵소추’가 첫 번째 성과로 장식돼 있다. 한승헌 변호사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대통령도 헌법재판소가 탄핵 결정을 하면, 달리 불복할 길도 없이 바로 파면된다, 탄핵은 참 무서운 제도”라며 “정치적으로 악용되거나 오판을 하면 대통령직뿐 아니라 국민주권마저 날려보내는 흉기가 될 수도 있다”고 문제를 지적했다.

탄핵안 가결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대통령 지위가 제왕적이라는 주장이 허구임을 드러내는 실례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내각제 요소가 결합된 우리나라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은 미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매우 미약하다. 우리 대통령은 국무총리를 임명하기 위해 국회 동의를 얻어야 하고, 대통령이 임명한 국무위원에 대해 국회가 해임을 결의할 수 있다.

문제는 기소를 독점하는 검찰을 대통령의 참모·비서로 쓰는 비상식의 정치, 국가정보기관을 정치에 활용하려는 비민주적 리더십이 대통령의 권한을 비정상적으로 키운 것이다. 그러한 비정상적·제왕적 대통령의 행태를 당연시하다 보니 대통령제도가 제왕적이라고 오해하고 있는 것이다.

탄핵안 가결에 앞장선 정치인이 모두 선거에서 낙선, 정계를 떠나야 했던 것은 바로 국회가 민심을 읽지 못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다. 민심을 읽지 못하는 정치, 민심과 소통하지 못하는 정치인의 말로가 어떻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따라서 의정기념관에 설치된 ‘16대 국회 탄핵안 가결’은 국회의 업적이 아닌 국회의 참회록이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화강암 팔각기둥 24개가 건물을 받치고 지름 64m의 원형 돔이 지붕을 덮고 있는 형태다. 이는 24절기(연중 내내)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통합의 결론(원형 돔)을 내리는 것을 의미한다고 한다. 국회의원 배지로 사용되는 국회 문장은 ‘화합과 소통’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금 국회는 국민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있는가. 통합의 결론을 내리고 있는가. 2015년 10월 지금 국회의사당 정문에는 경찰이 꼭꼭 둘러싸 경비하고 있다. 정문 모습부터 자유로운 의견 수렴과 다양한 의견의 통합은 난망해 보인다.

<글/원희복 선임기자·사진/이상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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