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2013 ‘을’이 소리쳤다

권순철 기자
2013.12.31

아무도 닦아주지 않는 눈물을 훔치며 갑의 횡포에 맞선 사람들, <주간경향>이 뽑은 올해의 인물 ‘을’이다.

올해는 중소자영업자, 비정규직 노동자 등 우리 사회에서 경제적 약자들의 분노가 활화산처럼 폭발한 한 해였다. 대기업의 대리점, 가맹점,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등이 이른바 ‘을’의 반란을 이끌었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경쟁논리에 함몰돼 약육강식의 정글로 변해 있었다. 비정상적인 착취구조가 당연한 듯 일상화돼 있었다. 최소한의 인권마저 무시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을의 반란’은 이런 한국 사회의 적나라한 얼굴을 되돌아보고, 반성하는 계기가 됐다. 연말 대학가에 번지고 있는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도 ‘을의 반란’의 진화형태라고 볼 수 있다.

[표지이야기]2013 ‘을’이 소리쳤다

<주간경향>은 우리 사회에서 음성적으로 자행됐던‘갑의 횡포’를 고발, 공론화시킨 ‘을’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이른바 ‘을’의 반란은 지난 5월 남양유업 30대 팀장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입에 담기조차 힘든 폭언을 하는 동영상이 공개되면서 도화선이 됐다. 남양유업 사태는 곪을 대로 곪은 우리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 사건이었다. 

우리 경제는 지난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 업무의 효율성과 노동의 유연성만 강조해왔다. 일부 기업들은 대리점이나 납품업체를 쥐어짜 본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손쉬운 영업전략을 구사했다. 

기업들의 제품 밀어내기, 납품단가 후려치기, 반품 거부 등이 그것들이다. 특히 ‘갑’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계약서는 ‘노예계약’이나 다름없었다. ‘을’은 그래도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기업과의 거래가 끊기는 등 보복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불공정 계약 하에서 ‘을’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삶의 형편이 나아지기는커녕 오 히려 적자만 계속됐다. ‘갑’의 횡포에 못이겨 궁지에 몰린 대리점주와 가맹점주들이 목숨까지 끊는 사례도 잇따랐다. 

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 등 정부기관은 ‘갑’의 횡포를 제대로 제어하지 못했다. ‘갑’의 횡포가 극에 달했지만 ‘을’의 눈물을 닦아준 곳은 없었다. 600여만명의 자영업자와 750여만명의 비정규직 노동자 등 ‘을’들은 아무런 보호막 없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삶의 벼랑 끝에 내몰린 ‘을’들이 마침내 폭발했다. 잘못된 ‘갑을 문화’를 바로잡기 위해 일어났다. 편의점·화장품·패션·건설업계, 유통업체 협력사 등에서 물량 밀어내기와 불공정 계약의 부당함을 호소하는 증언이 잇따랐다. 

국민들도 공분했다. 일부 기업들의 ‘을 쥐어짜기’ 영업전략이 집중포화를 맞았다. ‘을’들의 목소리는 경제민주화 이슈와 맞물려 정치권의 호응까지 이끌어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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