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야권지지자들 “대안방송이 필요해”

2013.01.08

‘민주화는 한판의 승부가 아닙니다. 허탈과 좌절을 떨쳐버리고 한겨레신문 창간에 힘을 모아주십시오.’ 1987년 12월 23일부터 한국일보, 동아일보, 조선일보, 중앙일보에 잇달아 실린 광고다.

1970년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에서 자유언론실천운동을 하다 해직된 해직기자들을 중심으로 논의되던 새 언론 창간 구상은 1987년 6월항쟁 이후 급진전했다. 자본조달 방식, 신문편집 방침, 창간 일정 등을 확정하고 그해 11월 2일부터 모금을 시작했다. 그러나 목표인 50억원은 아득한 액수였다. 1987년 12월 16일 치러진 대선이 모금의 도화선이 됐다. 6월항쟁으로 힘겹게 성취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의 과실은 어이없게도 노태우 당시 민정당 후보가 가져갔다. 창간 준비 사무국으로 문의가 폭증했다. 대선 이전인 12월 12일까지 40여일 동안 모인 돈은 16억원. 대선 이후에는 하루에만 1억원이 모였다.

2012년 12월 1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원들이 언론 자유를 훼손했다며 현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언론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은 대선 이후 새로운 ‘국민방송’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표출되고 있다. | 연합뉴스

2012년 12월 12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원들이 언론 자유를 훼손했다며 현 정부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언론에 대한 시민사회의 문제의식은 대선 이후 새로운 ‘국민방송’이 필요하다는 요구로 표출되고 있다. | 연합뉴스

여권 편향적 공영방송에 대한 반발
2012년 12월 19일 대선을 치른 야권 지지자들 사이에서도 새 언론이 필요하다는 요구가 분출하고 있다. 얼핏 1987년의 상황과 비슷해 보인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여론이 높았는데도 집권여당 후보가 승리해 야권 지지자들에게 좌절을 안겨주었다는 점과 이 상황을 돌파할 수단 중 하나로 대안 언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다만 이들이 원하는 새 언론은 신문이 아니라 방송이다. 여기에는 이명박 정부 5년 동안 공영방송이 여권 편향적인 방송을 하는 한편, 공정보도를 요구하는 해당 방송 언론인들의 요구를 강하게 억눌러 왔다는 사실이 작용했다.

새 방송에 대한 요구는 현재 두 갈래로 수렴되고 있다. ‘<뉴스타파> 강화’와 ‘<국민TV>(가칭) 출범’이다. 현 정권에서 해직된 언론인들을 중심으로 2012년 1월 출범한 <뉴스타파>는 12월 14일 방송을 끝으로 두 번째 시즌을 마감하고 2013년 계획을 세우던 중이었다. 대선 이후 제작진의 발걸음에 더욱 속도가 붙었다. 대선 다음날인 12월 20일부터 전화가 쇄도했다. 응원의 말과 울음이 뒤섞였다. 12월 15일까지 6000여명이던 후원회원이 12월 20일 하루에만 3000명이나 더 늘었다. 21일에는 9000명이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다. 12월 27일 현재 <뉴스타파> 후원회원은 2만4000명이다. 대선 후 일주일도 안 돼 후원회원이 4배나 증가한 것이다.

제작진은 이 열기를 수렴할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 대강의 계획은 나왔다. 우선 그동안 전국언론노조의 지원을 받아 제작하던 <뉴스타파>를 법인화한다. 이를 위해 2013년 1월 중 ‘준비위’ 또는 ‘발전위원회’를 꾸려 공익재단 형태 등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한다. 또 다른 중요한 변화는 그동안 주 1회 방송하던 것을 주 2회 방송으로 확대편성한다는 것이다. 관건은 인력과 재원이다. 지금까지 <뉴스타파>는 YTN, MBC, KBS, 국민일보 등 기존 언론에서 해고를 포함, 중징계를 받은 언론인들과 전국언론노조에 파견된 언론인을 중심으로 제작됐다. 인원은 4∼5명 수준이었다. 주 2회 방송을 하려면 단순 계산으로도 두 배 이상의 인력과 재원이 필요하다.

재원 문제는 긍정적이다. <뉴스타파>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박중석 전국언론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 위원장(KBS 기자)은 “주 2회 방송에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려면 후원회원이 3만명은 필요하다. 지금 추세라면 가능할 것 같다”고 말했다. 인력 충원 문제는 유동적이다. 일차적인 인력 충원 대상은 전문적인 보도역량을 갖춘 해직언론인들이지만 일괄적으로 <뉴스타파> 참여를 강제할 수는 없다. 경력기자나 대학생 인턴기자 채용도 인력 충원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뉴스 아이템도 기존 탐사보도를 주축으로 국제뉴스와 토크쇼 등으로 더욱 다변화할 계획이다. 기존 언론과의 전략적 제휴도 추진한다. 시사주간지 <시사인>과의 콘텐츠 교류 협의는 이미 진행 중이다.

자본금 마련·야권편향 등 우려 목소리도
<국민TV>는 해직언론인들의 결사체 형태로 운영돼온 <뉴스타파>를 넘어 정식 방송으로서의 외형과 규모를 갖춘 새 방송사를 세워야 한다는 흐름이다. <국민TV> 출범의 기본 구상은 팟캐스트 <나는꼼수다>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김용민 PD가 제안한 ‘미디어협동조합’을 토대로 하고 있다. 협동조합 형태로 출자자들을 모아 방송 출범에 필요한 종잣돈을 마련하고 방송사 운영도 협동조합 형태로 한다는 구상이다. 2012년 12월에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됐기 때문에 법적 근거는 마련돼 있다.

<국민TV> 설립에 뜻을 같이하는 시민사회 인사 14명은 12월 27일 1차 준비모임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국민TV>의 기본 구상들이 논의됐다. ‘출자금 5만원 이상을 내는 조합원은 모두 1표의 의결권을 행사한다’ ‘70여명의 방송 제작인력과 행정요원, 이에 걸맞은 사옥을 마련한다’ ‘TV 송출이 가능한 방송뉴스, 팟캐스트용 토크쇼 등 가능한 모든 포맷의 뉴스를 제공한다’ ‘출자자가 100만명을 넘기면 케이블 채널 진출도 고려한다’ ‘실무절차를 마치면 조합원 모집공고를 낸다’ 등이 그 내용이다.

새 방송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높지만 우려도 있다. 방송은 천문학적인 규모의 자본을 필요로 한다. 2011년 12월에 출범한 보도전문 채널 <연합뉴스TV>의 납입자본금은 600억원이었다. MBC 1회분을 제작하는 데만 인건비를 제외하고도 평균 4000만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성을 갖춘 방송 인력 충원의 문제도 있다. <국민TV> 준비모임은 70여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기존 경력자 중에서 이 정도 규모의 인력을 확보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1988년 한겨레 창간 당시에는 1970년대 해직자들과 1980년 언론통폐합 당시 해직자들만이 아니라 당시 현역 언론인들의 이직도 잇따랐다. 케이블 채널 진출까지 고려한다면 문제가 더욱 복잡해진다. 채널 허가권을 방송통신위원회가 갖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야권 편향적인 방송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우려도 있다.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국민TV>의 기획 자체는 충분히 검토 가능한 것”이라고 전제하고 이렇게 말했다. “제도권 방송사를 통한 고전적 형태의 방송이 갖는 유효성은 끝났다. 주류 언론이 붕괴한 지점을 대체한 건 (팟캐스트 SNS 등) 분산된 형태의 저널리즘 운동인데, 전통적 모델의 방송을 하겠다는 것이 적절한 선택인지 고민할 필요가 있다. 또한 정치적 흥분을 동원하는 방송이 적합한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한다. 채널과 콘텐츠에 대한 논의 이전에 야권의 대선 패배에 대한 시민사회의 반성과 성찰이 우선해야 한다.”

김용민 PD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자본과 인력의 문제는 조합원이 얼마나 모이느냐에 따라 다르다. 최신 기술을 이용하면 기존 방송보다는 비용을 크게 줄일 수 있다”며 “야권에 편향적인 방송이 아니라 시시비비를 제대로 가리는 보도를 하겠다. ‘친야당’이 아니라 ‘반여당’, ‘편향성’이 아니라 ‘양비론을 지양하는 경향성’을 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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