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오바마 2기 정부의 해외정책 핵심과제는

백철 기자
2012.11.20

최초의 흑인 대통령은 최초의 ‘재선’ 흑인 대통령이라는 기록을 썼다.

11월 7일 발표된 미국 대선 결과 오바마 대통령은 538명의 선거인단 중 332명을 확보해 206명의 선거인단을 확보한 데 그친 미트 롬니 공화당 후보를 앞질렀다.

대선에서 양 후보는 재정적자, 일자리, 복지 등 경제문제를 두고 입씨름을 벌였다. 하지만 미국 밖의 세계인들은 이들의 대외정책에 좀 더 관심을 기울였다.

올해 3월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에 위치한 미군 초소에서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올해 3월 핵안보정상회의 참석차 방한한 오바마 대통령이 비무장지대(DMZ)에 위치한 미군 초소에서 북한 쪽을 바라보고 있다. | AP연합뉴스

‘대외정책’을 주제로 한 미 대선 3차 토론에서 버락 오바마는 기존의 다원주의적 노선을 견지한 반면, 롬니 후보는 중국·러시아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았다. 오바마는 이라크에 이어 아프가니스탄에서 2014년까지 철군하겠다고 밝혔지만, 롬니 후보는 철군 시기를 단정짓는 것에 반대했다. 전체적으로 롬니는 오바마의 정책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추락시켰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오바마식 다원주의 정책은 미국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의 대선 출구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에서 대외정책을 핵심 이슈라고 대답한 유권자의 56%가 오바마의 노선을 지지했다고 응답했다. 반면 롬니 후보를 지지한 응답자는 33%에 그쳤다.

지난 6월 13일 미국의 여론조사 전문기관 퓨리서치의 조사에 따르면, 대부분의 유럽 국가와 일본, 인도, 브라질은 오바마의 재선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10월 발표된 독일 마샬기금의 여론조사에서도 마찬가지 결과가 나왔다. 이 조사에서 유럽연합(EU) 회원국 국민의 71%는 오바마 정부의 외교정책에 지지를 보냈다.

부시 행정부 시절 유럽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추진된 이라크 전쟁을 오바마가 종식시킨 데 이어, 알카에다의 지도자 오사마 빈 라덴을 사살한 성과가 여론조사 결과로 나온 것이라는 분석도 있었다.

반면 반미주의 여론이 높은 서남아시아 국가들은 이라크 철군 및 아프가니스탄 철군 예정에도 불구하고 오바마 대통령을 신뢰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퓨리서치 조사에 따르면, 서남아시아 주요국들 중 친미 성향이 강한 터키에서만 오바마의 재선을 찬성하는 비율이 반대 비율보다 약간 높았다. 이집트, 파키스탄, 레바논, 요르단, 튀니지 등에서는 오바마 재선에 반대하는 여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오랫동안 미국과 대치해온 멕시코에서도 오바마 재선을 지지하는 여론은 35%였다. 반대 여론은 43%로 조사됐다. 미국과 함께 G2로 분류되는 중국인들 역시 오바마에게 부정적이었다. 퓨리서치는 미국 대선에 대한 전세계의 열기가 2008년만은 못하지만, 예외적으로 중국에서는 4년 전보다 미국 대선에 대한 관심도가 두 배 이상 늘어났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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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바마의 서남아시아 구상
이번 미국 대선에서 대외정책 논쟁은 주로 서남아시아를 무대로 펼쳐졌다. 대선 3차 토론에서 오바마와 롬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서남아시아 정책에 쏟았다.

오바마가 이라크, 아프간에서 철군한 이후에도 서남아시아에서의 지지도가 높아지지 않는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로 2000년대 이후 강화한 이 지역의 반미주의 정서가 완전히 해결되지 않은 점이다. 2003년 이전까지 중동에서 미국을 상대로 한 자살테러는 50여건에 불과했다. 하지만 2004년부터 6년간 이 수치는 1600건 이상으로 올라갔다.

잘랄 알람기르 매사추세츠 보스턴대 정치학과 교수는 지난해 허핑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미국은 역사상 가장 많은 해외 개입 횟수를 기록했다. 해외 개입이 폭력적 반발을 부르지 않는다는 주장이 타당할까?”라며 의문을 표했다.

현재 미국의 대표적인 ‘해외 개입’인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은 많은 상처를 남긴 채 종료될 예정이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이라크전에서 사망한 민간인 수를 집계하는 이라크 바디카운트는 2003년부터 2011년까지 이라크전 민간인 사망자 수를 약 11만명으로 잡고 있다. 브라운대학의 왓슨 국제관계연구소는 아프간전의 민간인 희생자 수를 약 1만3000명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또한 2011년부터 10년간 미 정부가 사용한 전쟁 관련 예산이 최대 3조9913억 달러(약 4305조5170억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미국의 전체 국가부채의 24%에 해당하는 수치다.

비록 오바마가 부시의 대표적 전쟁인 이라크전과 아프간전을 끝내기로 선언했지만, 테러와의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오바마는 무인전투기인 드론을 도입해 파키스탄, 예멘, 리비아 등지에서 테러와의 전쟁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은 드론을 사용해 오사마 빈 라덴 이후 알카에다의 지도자로 알려진 안와르 올라키 및 다수의 알카에다 간부들을 사살했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오바마의 재선을 반대한 국가들은 드론 사용에 대해서도 압도적인 반대 의사를 표했다.

이란 핵 해결 가능할까
오바마는 여러 차례 독재자 대신 민주주의를 택한 아랍 국가들의 의사를 존중해 왔다. 하지만 아랍의 봄 이후 이집트, 리비아 등지에서는 오바마의 기대와 달리 반미 성향의 이슬람주의자들이 득세하고 있다. 그동안 아랍권 독재자들과 미국이 유착관계를 보여온 데 대한 반작용이다.

대표적인 인물은 이집트 민주정부의 첫 대통령인 무함마드 무르시다. 무르시는 지난 9월 유엔총회에서 “이스라엘의 식민주의를 종식시키고 팔레스타인이 독립국가를 건설할 수 있도록 국제사회가 당장 나서야 한다”며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을 반대한 오바마와 상반되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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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르시 대통령은 당선 이후 미국에 앞서 중국을 방문하고, 기존 이집트 지도자들과 달리 대표적인 반미국가 이란을 방문하기도 했다.

이란의 핵개발 사태는 오바마의 또 하나의 짐이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연구소는 “이란 핵문제는 최고 수준의 의제가 될 것”이라며 이란의 핵무기 보유 제지가 오바마 대외정책의 핵심 과제 중 하나일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미국 정부 관계자들은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향후 몇 달간 미국과 이란 양국 정부가 핵개발문제에 대해 직접 협상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이스라엘이 꾸준히 이란 핵시설을 공격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히는 데다가, 내년 6월 이란에서 대선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전격적인 협상이 가능할 수도 있다는 취지였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대표적인 친미국가로 분류돼 왔지만, 오바마 정부가 기존의 미국 대통령들과 달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관계개선을 촉구하면서 양국간의 관계가 예전만은 못하다는 것이 중평이다. 공화당 등 보수파들은 오바마가 지나치게 이스라엘을 경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렇다고 오바마가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도 없다. 지난해 오바마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총회에서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사이에 평화협정이 이뤄지지 않는 한 팔레스타인의 유엔 가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피력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기존의 이스라엘 편향적인 정책을 펴기보다 이스라엘과 다른 아랍 국가들 사이에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분석한다. 숄모 아비네리 예루살렘 헤브루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미국은 광신적 극단주의에 단호히 맞서야 하지만, 이슬람에 대한 이데올로기적·전략적 전쟁을 시작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중국, 러시아와의 협력
서남아시아 만큼이나, 어쩌면 서남아시아보다 더욱 미국이 중시해야 할 지역은 바로 동아시아, 특히 중국이다. 지난해 커트 캠벨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는 미국의 전략적 축이 중동에서 동아시아로 옮겨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오바마는 대선 기간 중 롬니에 비해 중국에 유화적인 제스처를 취해 왔다. 롬니는 자신이 당선되면 중국을 ‘환율 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말했지만, 오바마는 오히려 “중국이 규칙을 따른다면 국제사회에서 잠재적 동반자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과 관계를 개선해야 할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미국이 동아시아 지역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군사전력을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향후 10년간 미국이 국방예산을 줄여야 하는 상황에서 아시아·태평양 지역 동맹국들의 방위비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악화하면 당장 이 지역의 동맹국들이 방위비에 대한 불만을 토로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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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문가들은 오바마의 당선을 일단 좋은 신호로 해석했다. 스인홍 중국 인민대학 미국연구소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정부는 오바마에 익숙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롬니보다 덜 위협적으로 느낄 수도 있다”며 “미국과 중국은 서로 각자의 이익을 존중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2기는 예전에 비해 회복된 러시아와의 관계를 유지해갈 전망이다. 부시 대통령 시절 시작된 미사일 방어체계는 양국의 관계를 급랭시켰다. ‘신냉전체제’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오바마는 취임 직후인 2009년 4월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당시 러시아 대통령을 만나 핵 군축협상을 재개하기로 합의했다. 당시 두 정상은 “서로를 적으로 간주하던 시대는 끝났다”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현재 양국은 2018년까지 핵탄두 숫자를 1500개 미만으로 줄이기로 약속한 상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현 러시아 대통령도 오바마 당선 직후 “크렘린은 오바마의 승리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인다”는 메시지를 발표하기도 했다.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상호 평등과 이익, 존중을 바탕으로 미 행정부와 함께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대북관계 전망
북·미관계는 사실 이번 대선의 쟁점이 아니었다. 하지만 한국의 입장에서 오바마의 대북정책은 중요한 주제다. 오바마 정부 역시 전통적인 미국 정부의 대북정책과 마찬가지로 압박과 대화를 병행해 왔다. 전임 부시 정부와 다른 점은 북한을 ‘악의 축’으로 직접 묘사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 정도다.

그동안 오바마 정부는 대북 경제제재를 계속하는 한편으로는 대화를 시도해 왔다. 올해 2월 29일 미국과 북한은 북한의 핵실험 중단과 미국의 대북지원을 골자로 한 합의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로 대화는 수포로 돌아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바마의 대화 시도는 계속될 전망이다. 오바마 선거본부에서 활동했던 제프리 베이더 국가안전보장회의 아시아담당 선임보좌관은 10월 24일 한 토론회에서 “오바마 행정부 2기 때 북핵 6자회담 재개를 위해 북한과의 직접 대화를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현재 대외정책을 책임지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사임한 상태다. 하지만 새로운 국무장관이 들어선다 하더라도 기존의 대북정책이 크게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마이클 그린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실장은 새 국무장관 물망에 오른 수전 라이스 주유엔 미국대사, 존 케리 상원 국방위원장 모두 현재의 대북정책의 틀에서 크게 벗어난 입장은 아닌 것으로 보았다. 초당적 국무장관 후보로 거론되는 척 헤이글 공화당 상원의원 역시 부시 정부 시절 이라크 침공에 반대 목소리를 낼 정도의 온건파로 알려져 있다.

한편, 이번 대선에서 미국 국내 문제가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기 때문에 북·미관계에서 한국의 역할이 더 중요할 수도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미주연구부장은 최근 한 기고문에서 “오바마 2기 행정부가 경제문제로 계속 발목을 잡힌다면 대북정책에서 적극적 해법을 모색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차기 한국 정부의 역할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백철 기자 pudmake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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