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지난 20년 한· 미 대북 정책 ‘엇박자’

2012.11.20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집권 2기와 맞물려 한·미관계의 변화가 관심을 모으고 있다. 한국의 대선을 코앞에 두고 끝난 미국의 대선이 대선 판세뿐만이 아니라 한반도문제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의 집권정당에 따라 상이했던 대북정책의 변천과정을 살펴보면 차기 정권과 오바마 행정부 2기가 제시할 대북정책 방향을 짐작할 단서를 찾을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0년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이명박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10년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 박민규 기자

지난 20년 동안 한·미 양국 집권정당의 정치성향은 서로 상반된 기간이 대부분이었다. 신한국당의 김영삼 전 대통령 재임기간은 미국 민주당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과 겹쳤고, 미국 공화당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재임기간 중 2001~2007년까지의 7년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집권한 시기였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년 후 미국에선 민주당 오바마 대통령이 임기를 시작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클린턴 전 대통령, 이명박 대통령과 부시 전 대통령이 함께 재임한 기간을 합해 4년 정도만 양국 지도부의 성향이 비슷했다.

양국 집권세력의 서로 다른 성향이 가장 크게 표면화된 분야는 대북정책이었다. 역대 한·미 정부의 대북정책을 통계적으로 분석한 김형기 비교민주주의연구센터 연구위원은 양국 모두 집권정당에 따라 대북정책 기조의 차이가 나타나며 포용적인 정책이 북한의 협력을 이끌어내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김 연구위원은 “다른 정권에 비해 북한에 가장 적대적이었던 김영삼 정부에서 갈등지수가 가장 높았고, 미국의 경우도 부시 행정부 1기에서 확연하게 미국 주도의 갈등 전개가 나타났다”고 밝히며, 한·미 양국에서 가장 북한에 적대적인 정권이 들어섰을 때가 대북 갈등도 가장 고조된 시기였다고 분석했다. 연구 결과에 따르면 한·미 양국 모두 포용적인 대북정책을 폈던 김대중-클린턴 재임시에 북한과의 협력은 활발했고 갈등은 적었다. 반면 양국 중 하나라도 적대적인 정책기조를 유지한 시기는 1·2차 북핵위기가 발발한 시기와 일치해 대북 강경노선이 갈등과 직결됨을 확인할 수 있다.

한·미 양국 집권세력 성향 서로 엇갈려
김영삼 정부는 미국 클린턴 행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했다. 이전 노태우 정부는 대북 포용노선을 견지하는 북방정책으로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군사독재 시절보다 대북관계를 진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에 비해 김영삼 정부는 북한에 대한 강경노선과 온건노선을 왔다갔다 하는 등 일관적이지 못한 정책 수립으로 한반도문제 해결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미국과 손발을 제대로 맞추지 못했다. 1993년 3월 북한의 핵확산방지조약(NPT) 탈퇴 선언으로 촉발된 제1차 북핵위기가 1994년 10월 북·미 간 제네바 합의 체결로 일단락되기까지 김영삼 정부는 북·미 양자 간 협상 테이블에서 배제된 채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박순성 동국대 교수는 김영삼 정부가 “미국에는 동맹정치를 요구하고, 북한에는 적대정책을 펴는 전통적 안보논리만을 내세워 북·미 간 협상과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줬다”며 “이전까지 쌓았던 남북관계 개선의 효과를 활용하지 못해 대외적으로도 외교역량에 대한 의구심을 낳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김대중 정부는 대통령이 취임 전부터 견지해온 북한에 대한 포용정책으로 남북관계 개선에 나섰다. 북한과의 긴 협상과정을 겪으며 임기 초에 비해 비교적 유화적인 대북정책으로 선회한 클린턴 행정부도 김대중 정부가 내놓은 ‘포괄적 접근을 통한 대북 포용정책’에 긍정적이었다. ‘햇볕정책’으로 알려진 온건노선이 서해교전과 같은 군사적 마찰을 완전히 통제하진 못했지만 금강산 사업과 남북정상회담 등 구체적인 성과를 보이면서 북·미관계도 공동 코뮈니케를 발표하는 등 호전되는 양상이었다.

한반도 문제에 손발 제대로 못 맞춰
김대중 정부 중반에 정권교체에 성공한 미국의 부시 전 대통령은 이전 행정부의 관계개선과 긴장완화 성과를 무시하고 대북정책을 근본에서부터 재확인한다는 방침에 따라 압박을 강화하는 강경노선을 천명했다. 2002년 불거진 제2차 북핵위기는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을 가동 중이라는 의혹을 제기하자 2003년 북한이 NPT를 탈퇴하면서 확대됐다. 북핵위기 와중에 임기를 시작한 노무현 정부는 미국의 대북 강경노선과는 달리 전 정부의 포용정책을 계승하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한·미 간의 시각차는 지속됐다. 노무현 정부는 원만한 북핵위기 해결을 위해 북한과 미국 관계에서 중재자 역할을 하며 이후 이어진 6자회담에서도 이러한 정책기조를 유지했다. 한국은 미국의 이라크전 파병 요청을 수용하는 한편 개성공단 사업을 실시해 북한과의 관계 유지에 나섰지만 이 시기 남북관계는 악화된 북·미관계로 인해 큰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한·미 대북정책 변화에 북한의 카드는?
부시 행정부 말기에 집권한 이명박 정부는 취임 초부터 대북 강경노선을 일관되게 지속해 왔다.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규정하고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보다 북한체제의 붕괴를 앞당기겠다는 의도의 대북정책을 앞세우면서 북한의 극렬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은 부시 행정부에서 오바마 행정부로의 교체가 이뤄졌지만 자국의 경제문제 해결을 우선해야 하는 여건 때문에 북한과의 관계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대신 ‘전략적 인내’라는 이름의 소극적인 대북정책을 유지했다. 이명박 정부가 미국의 적극적인 관여가 없는 상황에서 지속한 강경한 대북노선은 천안함 사태와 연평도 포격사태 등의 발생으로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을 높이는 결과를 낳았고, 북한 비핵화 및 경제개방이라는 초기의 정책목표는 극도로 경색된 남북관계로 인해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표지이야기]지난 20년 한· 미 대북 정책 ‘엇박자’

오바마 행정부 2기는 한국의 차기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으로는 오바마 행정부 2기의 대북정책 방향이 1기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지만, 차기 집권하는 한국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에 따라 입장 변화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봤다. 이명박 정부와 오바마 행정부는 지난 4년 동안 대북정책 공조를 유지하며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우선되면 6자회담 재개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표명해 왔다. 하지만 현재 나선 대선후보들은 여야에 관계없이 전반적으로 이명박 정부의 강경노선이 그다지 효과적이지 못했다는 점 때문에 보다 포용적인 대북정책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오바마 행정부가 지금 노선을 고수할 가능성은 높지만 한국의 차기 정권과 의견 조율이 필요할 것”이라며 “대선후보들이 대체로 북한과의 대화를 언급하기 때문에 오바마 행정부 1기와 미묘한 차이점을 보이는데, 야권 후보들의 경우 견해차가 커서 조율이 쉽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행정부 2기에서 기본적인 정책기조는 유지되더라도 한반도문제를 놓고 한국과 기싸움이 벌어질 가능성은 있다. 국무장관 등 외교부문의 주요 직책이 교체되면 자연스럽게 대북정책의 초점이 이동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미국의 현 국무장관인 힐러리 클린턴 장관이 사임할 것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다음 장관으로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과 수전 라이스 주UN대사가 유력한 후보로 꼽히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이 신임 국무장관을 통해 보다 적극적인 외교에 나서면 한반도문제에 대한 개입도 보다 확대될 수 있다.
 
전쟁 때문에 중동에 보다 우선순위를 뒀던 대외정책이 2기에 들어서면서 동아시아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노리는 방향으로 선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에 들어설 새로운 정권에 대해 대북정책에 관한 주도권을 잡으려는 움직임이 나올 공산도 크다는 전망이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을 통해 다음 선거에 대한 부담 없이 일할 수 있게 된 만큼 어느 정도의 변화는 있을 것”이라며 “미국은 더 적극적으로 북한문제에 개입하는 방향으로 한국의 정책환경에 영향을 미치려 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에 변화가 예고된 상황에서 북한이 내놓을 카드가 무엇일지를 놓고도 의견이 분분하다. 예전과 달리 이번 미국 대선 과정에서 북한은 별다른 입장을 표명하거나 돌발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다. 이 점 때문에 북한이 오바마 대통령을 적대적으로는 보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입장은 대화·협상국면 조성을 위해 외교적 조치를 취할 가능성도 있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북한이 외교적인 방법보다는 기선 제압을 위한 무력시위와 같은 강경한 행동을 취할 수 있어 대비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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