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중국 시진핑시대 ‘안정적 변화’ 전망

2012.11.20

베이징에서는 계엄을 방불케 하는 엄중한 경비 속에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이하 당 대회)가 시작됐다. 이른바 양회라 불리는 전인대가 열리는 3월과 당 대회가 열리는 10월(혹은 11월)마다 베이징은 열병을 앓는다. 검문검색이 강화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회의가 열리는 천안문 광장 주변은 평소의 자유로운 분위기와는 다르게 출입시 통제가 강화될 뿐 아니라 주변 도로를 지나는 택시의 창문 봉쇄 등 엄격한 제한이 뒤따른다.

특히 대표단이 머무르는 호텔이나 주변 지역은 술집은 물론이고 식당 등 제반 상업시설들도 잠시 영업을 제한받기도 한다. 올해는 이런 일상적인 통제에서 정도가 더해 베이징 시민들의 일반적인 취미생활인 연 날리는 것까지 금지될 정도로 도를 넘는 통제가 실시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 최고 권력자의 자리인 공산당 총서기에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 | 연합뉴스

중국 최고 권력자의 자리인 공산당 총서기에 내정된 시진핑 국가부주석. | 연합뉴스

어느 때보다 유난히 진통 겪은 당 대회
이렇듯 이번 당 대회 준비과정은 유난히 진통을 겪었다는 것이 세간의 평이다. 보통의 경우 7∼8월에 열리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내부 조율을 끝내고 당 대회는 우호적인 분위기에서 화려하게 시작되는 데 비해, 이번에는 시진핑의 잠적사태, 당장(黨章)에서 마르크스-레닌주의 삭제 논란, 원자바오 총리의 재산문제 등 당 대회 개최 직전까지도 대내외적으로 혼란스러운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이번 당 대회는 사전에 차기 정치국 상무위원회 명단이 사실상 공개되는 관례와는 다르게 11월 15일 열릴 제18기 중앙위원회 제1차 전체회의(18기 1중전회)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 결과를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평가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사실상 사전 합의에 의한 예측 가능성을 최대 장점으로 내세운 개혁·개방 이후의 중국 정치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번 당 대회의 핵심 쟁점은 향후 권력 방향을 가늠하게 할 정치국 상무위원회 세력분포와 당 총서기가 되는 시진핑의 리더십이 어떻게 제시될 것인가다. 후진타오 시대의 9명에서 다시 장쩌민 시대처럼 7명으로 축소되게 될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어느 계열이 다수를 차지하느냐와 장쩌민의 삼개대표(三個代表),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에 이은 시진핑의 리더십 실체가 무엇이 될 것인가 하는 문제다.

이 중 정치국 상무위원회 세력분포의 문제는 지난 8월 베이다이허 회의에서 장쩌민 계열이 다수를 차지하는 방향으로 대략적인 합의가 이루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장쩌민의 브레인이자 현재 숨은 정치적 실체인 쩡칭훙 전 부주석의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제17차 당 대회에서 리커창을 제치고 시진핑을 차기 총서기로 내정시키는 데 성공하면서 시작된 이 장정은 자신을 제치고 태자당의 새로운 실세로 떠오르던 보시라이를 후진타오 계열과 손잡고 쳐내는 데 성공하면서 정점을 이루었다.

개혁·개방 이후 중국 정치의 경우 일반적으로 이 선에서 모든 갈등이 봉합되고 새로운 협력적 경쟁구도가 만들어져 왔다. 차오스를 쳐낼 당시 장쩌민과 리펑이 그랬고, 후진타오와 원자바오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지금의 중국 내 권력구도는 이런 일반적인 관례와는 달리 당 대회가 진행되는 이 시점에도 원만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인 정치적 합의가 아닌 봉합책으로서의 정치국 상무위원회 차액선거의 실시는 이런 상황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당내 민주주의가 많이 진척됐다고는 해도 중국에서의 선거는 합의에 의한 예측 가능한 선거가 일반적인 데 비해 지금 채택된 차액선거는 돌발적인 상황 발생 가능성이 큰 것이 사실이다.

이런 현상은 기존 중국에서 관행적으로 인정되어 왔던 파벌들이 급격히 재편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그간 중국 내 파벌은 장쩌민 계열의 상하이방, 쩡칭훙을 통해 장쩌민과 손잡은 태자당 대 후진타오 계열의 공청단파로 구분되어 온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러한 파벌구조는 현실정치에서는 상하이방-태자당-군 원로로 이어지는 장쩌민 계열과 공청단파-테크노크라트의 연합 형태인 후진타오 계열로 나타나게 된다.

장쩌민 2기부터 후진타오 2기까지 10여년을 공고하게 버텨오던 이 구조가 파열음을 내게 된 계기는 태자당 내의 주도권을 둘러 싼 보시라이 사건이다. 이 과정에서 태자당과 군 원로들이 보시라이가 내세우던 좌파사상을 둘러싸고 분열되면서 중국 정치가 한 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상황으로 접어들게 된다. 여기서 쩡칭훙은 시진핑을 차기 지도자로 옹립할 때 힘을 보탰던 지방 관료들과의 광범위한 제휴를 통해 자신들의 세력을 취합한 뒤 후진타오 계열과 손잡고 보시라이를 쳐내게 된다. 지난 8월 베이다이허 회의가 끝날 때만 해도 이 새로운 협력적 경쟁구도로 이번 당 대회가 순조롭게 마무리지어질 것으로 예상됐었다.

상하이방-태자당-군원로 세력과 결탁
그런데 이 기회에 태자당과 군 원로 그룹의 좌파 계열를 쳐내려는 세력과 이에 대응하려는 좌파 세력들의 갈등이 고조되면서 시진핑 잠적, 당장 논란, 원자바오 재산파동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가 벌어지게 되었고, 이 과정은 결과적으로 중국 정치에 새로운 파벌 형성의 단초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번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선출의 가장 큰 특징은 홍색자본가의 대거 등장이다. 장쩌민의 삼개대표에서 시작된 기업가들의 당 대회 진출의 길이 성숙단계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들 홍색자본가들은 지방의 국유기업 대표, 관료들과 더불어 강력한 지방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지방 관료들은 이미 시진핑 추대 때 범장쩌민 계열, 정확히 얘기하면 시진핑 계열로 편입된 상태이고, 홍색자본가들은 본질적으로 친장쩌민 성향을 나타내고 있다. 여기에 후진타오 계열의 개혁적 테크노크라트들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지방 국유기업 대표들이 가담하면서 장쩌민의 정치적 그늘 아래 쩡칭홍을 매개로 상하이방-태자당-군 원로로 연결되는 범시진핑 계열이 형성되고 이들이 중국 정치의 현실적 힘으로 나타나게 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소외된 좌파 태자당-군부들은 자신들을 정치적으로 대변할 대안을 모색하고 있지만 뚜렷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상태로 보인다. 공청단파와 테크노크라트의 연합세력인 후진타오 계열은 일련의 정치투쟁 과정에서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데 실패한 데다가, 자신들의 힘의 원천이라 할 중앙관료집단의 규합에 실패하면서 급격히 위축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일부 좌파의 ‘잃어버린 10년’ 주장은 이들에게 뼈아픈 얘기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중국의 뿌리 깊은 중앙관료조직에서 아직은 주도권을 점하고 있고, 후진타오가 정치적으로 건재한 이상 이들의 미래를 비관하기에는 너무 이른 것 같다. 그러나 이번 정치국 상무위원회에서 이들이 심리적 마지노선인 범후진타오 계열, 혹은 중립 성향을 포함하여 3석을 지킬 가능성은 그리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중국인들은 중의적인 표현을 중요시한다. 역으로 중의적인 표현, 특히 공식 매체의 행간의 뜻을 보면 중국 권력의 실제 흐름을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다. 지난 10월 11일 중국 인민일보에 “成功之路 光明之路 希望之路”라는 논설이 실렸다. 직역하면 성공의 길, 광명의 길, 희망의 길이라는 후진타오의 지난 10년을 평가한 글이다. 그런데 이 글을 기점으로 인민일보의 전과 후의 논점에 미묘한 변화가 보인다. 이 글의 부제는 제16차 당 대회 이후 중국 특색사회주의 정치 발전의 길이다. 이전이라면 후진타오의 과학적 발전관을 부제로 삼았을 것이다. 중국 특색사회주의는 아직 자신의 대표이론을 갖지 못한 시진핑이 주요하게 언급하는 정치 슬로건이다. 원제의 중의적인 해석을 보면 이 변화의 실체에 보다 가까이 접근할 수 있다. 성공의 길, 덩샤오핑이 내세운 선부론이 연상된다. 희망의 길, 후진타오의 조화사회가 연상된다, 아직은 희망일 뿐이다. 문제는 광명의 길이다. 가장 화려한 찬사임과 동시에 광명은 장쩌민이 한때 근무했던 유제품 회사의 명칭이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중의적이라면 과민한 걸까?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중 대화를 나누고 있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뒤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중국 공산당 제18차 전국대표대회 중 대화를 나누고 있는 후진타오 국가주석과 장쩌민 전 국가주석의 뒤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지나가고 있다. | AP연합뉴스

범시진핑 계열의 가장 큰 특징은 이공계 중심의 상하이방, 공청단파와는 다르게 인문사회계열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 시진핑 스스로가 칭화대에서 마르크스주의 이론과 정치사상 교육을 전공했다. 특히 시진핑은 문화혁명 때 중국 고등교육이 전면 중지된 시기 대입시험 없이 당성을 기준으로 선발한 홍농공병(홍위병, 농민, 노동자, 군인 중에 선발) 학생 출신이다. 이들은 보통 학습능력보다는 당에 대한 충성도와 업무 추진능력을 더 인정받는 그룹이다. 이러한 시진핑의 교육 배경은 향후 그의 대표이론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전통 중시 중국특색사회주의 강조
시진핑은 관례상 아직 자신의 고유 이론을 공식화시키고 있지는 않지만 기존 발언에서 특히 자신의 정치적 배경이던 당 학교에서의 연설을 살펴보면 온고지신의 역사관과 중국 특색사회주의, 그리고 이론 학습과 실천을 강조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그 자신이 사상을 위해서 이혼까지 감수한 경력(그는 태자당 출신 첫 부인의 영국 유학 제의를 거부하고 이혼했다. 80년대 태자당 출신들은 정치에 혐오를 갖고 외국 유학을 선호했었다.)이 있듯 시진핑은 전형적인 마르크스주의 이론가이기도 하다. 향후 시진핑의 공식 이론은 전통을 강조하는 데서 출발할 가능성이 크다. 이론적 원칙에 충실하면서 현실문제에 대응하려 할 것이다.

이런 시진핑의 정치사상적 성향은 그의 권력 배경인 태자당-군 원로-지방 세력과 결합되면서 후진타오에 비해 보수적인 성향을 띠게 될 가능성이 크다. 특히 그의 새로운 권력기반인 지방 관료들과 국영기업 대표들이 중앙 테크노크라트의 개혁 요구에 수세적으로 대처해온 과거를 생각할 때 향후 중국 개혁의 향방은 급속적인 변화보다는 온고지신 형태의 안정적 변화에 경도될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지금 중국의 현실이 온건한 개혁에 만족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점이다. 일정 규모를 갖춘 경제에서는 사실상 가장 높은 지니계수를 나타내는 나라가 중국이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 후진타오가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사회안전망 사업이 그 진척과는 상관없이 현실적인 유효성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늘어만 가는 인민들의 복지 확대 요구를 온건한 개혁으로 충족시키기에는 정치적 부담이 큰 것이 사실이다. 경제환경 역시 녹록지 못하다. 연안을 중심으로 1만 달러의 함정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중국 경제성장 속도가 둔화하는 상황에서 시진핑이 과거 장쩌민이나 후진타오처럼 성장의 과실을 안정적으로 누릴 것이라고 예측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대외적으로도 G2의 위상에 맞는 정치, 군사적인 역할을 해내기에 중국은 아직 준비되지 못한 것이 너무 많다. 결국 시진핑의 시대는 이런 다각적인 요구들이 종합적으로 분출되고 이 요구들을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많다. 국내뿐 아니라 국제사회에서의 요구도 지금의 중국이 신임 시진핑 총서기가 원활하게 처리하기에는 너무 벅차 보인다. 특히 연임에 성공한 오바마가 중국에 대해 보다 자신감을 가지고 공격적인 정책을 펼 것이라는 예측이 만연한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전문가들이 예측하는 중국의 미래가 그렇듯 상황이 비관적인 것만은 아니다. 문제는 시진핑이 아니라 시진핑이 대표하는 중국의 파워엘리트들이 기존의 전망을 어떻게 현실화시켜 나가는가이다. 이들은 개혁·개방 이후 수없는 위기상황에 대처하면서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 왔다. 이들은 지금도 정책적으로 진화하고 있다. 더구나 시진핑 시대는 과거와 비교할 수 없는 안정적인 권력구조를 보이고 있다. 중앙정권은 불안한 듯 보이지만 그것을 받치는 지방권력, 경제적 통제력, 거기다 무엇보다 중요한 군부 장악력은 덩샤오핑 이후 최고 수준이다. 강한 장악력을 가진 중국, 그러나 흔들리는 중국. 역사적으로 이런 중국이 선택한 방향을 너무나 잘 아는 우리가 걱정해야 할 현실이다.

<강현구 세한대(구 대불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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