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지이야기

한·EU FTA 4개월 성적표 ‘낙제’

2011.12.06

성장·고용 효과 부풀린 정부… 농업·축산업 개방 적자폭 증가 전망

한·EU FTA가 발효된 지 4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10월 기획재정부는 GDP, 고용, 무역수지 등 각종 지표에서 한·EU FTA 체결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기획재정부는 한·EU FTA 체결로 향후 10년간 GDP가 5.6%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단기적으로 3만명, 장기적으로 25만명의 고용효과가 발생하고 연평균 3억6100만 달러(4020억원)의 흑자가 나타날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 7월 1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한ㆍEU FTA 발효 기념 리셉션’에서 오른쪽부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EU 대사, 장 마리 위르티제 주한 EU 상의 회장 및 주한 EU 외교단이 건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월 1일 외교통상부에서 열린 ‘한ㆍEU FTA 발효 기념 리셉션’에서 오른쪽부터 김종훈 통상교섭본부장, 토마시 코즈워프스키 주한 EU 대사, 장 마리 위르티제 주한 EU 상의 회장 및 주한 EU 외교단이 건배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가 그린 청사진대로 한·EU FTA의 효과는 나타나고 있을까. 그러나 지난 4개월 간의 성적은 초라하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올해 2분기 GDP는 0.9% 성장했으나 한·EU FTA가 체결된 3분기는 0.7%로 성장폭이 오히려 줄었다. 고용 부분 역시 마찬가지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10월 말 고용률은 59.9%로 6월 말 고용률(60.3%)에 비해 하락했다. 단기적으로 3만명의 일자리가 생긴다고 했지만 오히려 고용률은 감소한 것이다. 한·EU FTA가 체결된 7~10월의 무역수지도 전년 동기에는 49억달러 흑자였는데 올해는 10억7000만 달러 흑자로 큰 폭으로 줄었다. 38억 달러의 무역 흑자가 감소한 셈이다. 주요 지표들로 미루어봤을 때, 한·EU FTA에 따른 경제 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기획재정부·EU의 예측 현격한 차이
정부의 장밋빛 전망이 들어맞지 않은 이유는 뭘까.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유럽이 재정위기라 어려운 상황”임을 이유로 들며 “그래도 무역수지 흑자가 계속 나오는 등 무역에서 선방을 하고 있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유럽 재정위기는 부분적인 원인에 불과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유럽 경제위기의 영향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근본적으로 FTA 효과를 정부가 뻥튀기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EU FTA뿐만 아니라 한·미 FTA도 마찬가지인데 FTA가 전체무역에 긍정적으로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며 “그렇다면 결국 GDP나 고용에 미치는 영향도 미미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FTA와 같은 급진적인 개방의 경우 수출 증대 효과보다는 농업과 중소기업을 파괴하는 효과가 더 크다”고 말했다.

정부 측의 전망이 애초부터 지나치게 낙관적이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지난 2010년 국정감사에서 민주당 전병헌 의원은 기획재정부가 전망한 한·EU FTA 효과와 EU 측이 전망한 한·EU FTA 효과의 차이가 현격하게 다르다는 점을 지적했다. 전병헌 의원실에 따르면 EU 측은 한·EU FTA 체결로 한국은 10년간 GDP가 0.84% 증가하고 고용효과 또한 미미할 것으로 전망해 우리 측의 예측과는 큰 차이를 보였다. 한·EU FTA 발효 4개월이 지난 현재의 상황은 EU 측의 전망이 좀 더 정확했음을 보여준다.

중소기업 관세 혜택 ‘그림의 떡’

2010년 12월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한·미 FTA 반대와 쌀값 안정 등을 요구하며 수확한 벼를 불태우고 있다. /경향신문

2010년 12월 전국농민대회에서 농민들이 한·미 FTA 반대와 쌀값 안정 등을 요구하며 수확한 벼를 불태우고 있다. /경향신문

정부가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한·EU FTA를 졸속으로 처리해 효과가 미흡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11월 9일 민주당 박주선 의원실에 따르면 FTA 특혜관세 혜택을 받기 위한 중소기업의 준비가 크게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EU FTA로 인한 ‘특혜관세 혜택’을 받기 위해서는 ‘인증수출자’로 지정되어야 한다. 11월 현재 총 8206개의 인증수출 대상기업 중 절반에 못 미치는 3734개(45.5%) 기업만이 인증수출자로 지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기업은 대상기업 419개 중 283개(67.5%)가 인증수출자로 지정되었으나, 중소기업의 경우 대상기업 7787개 중 3451개(44.5%)만이 지정된 것으로 나타났다. FTA 발효 이후 혜택이 대기업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박주선 의원은 “삼성경제연구소의 보고서에 의하더라도 중소기업의 수출 확대를 통한 수출 제품의 다양화 없이는 한·EU FTA의 폭넓은 관세인하 혜택은 ‘그림의 떡’에 불과하다고 했다”고 지적했다.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피해가 커지고 적자폭이 증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EU FTA나 한·미 FTA의 경우 중장기적으로 농업·축산업의 빗장이 풀리면서 우리에게 더욱 불리해져 피해가 커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주요 피해품목인 돼지고기의 경우 5~10년 이후에 관세를 철폐하도록 되어 있다. 최세균 한국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2009년 보고서에 따르면 양돈 산업은 EU와의 FTA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게 될 가능성이 높다. 보고서는 또한 “분유, 연유, 유장, 치즈 등 다양한 낙농품의 수입이 증가하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낙농업은 생산 감소와 소득 감소라는 부정적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시장 개방에 대비한 효율적 대응과 선제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호중 농업농민정책연구소 녀름연구팀장은 ‘효율적 대응’과 ‘선제적인 대책’을 아무리 세워도 실제 농가에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농업규모나 발달 정도에서 이미 경쟁 상대가 안 되기 때문이다. 이 연구팀장은 “기본적으로 EU는 덴마크처럼 양돈이나 낙농이 발달해 있는 나라가 많다. 협동조합 형태, 다국적 기업 형태로 규모가 크다”며 “우리가 시설이나 규모를 키운다고 해서 그들보다 가격경쟁력, 품질경쟁력을 갖추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이 연구팀장은 “결국 살아남는 건 친환경축산 같은 일부 틈새 시장에서 성공한 소수의 농가들이고 다른 농가들은 스스로 전업을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한·EU FTA로 아노미 상황에 빠져 있는 가운데 한·미 FTA 비준까지 처리되고 나니 농가들의 심리적 좌절감이 크다”고 말했다.

한·EU FTA 이외에 다른 국가와 맺은 FTA 성적도 좋은 편이 아니다. 한·칠레 FTA의 경우 7년 연속 무역적자로 89억 달러 누적적자를 보고 있으며, 한·EFTA(EU에 속하지 않은 서유럽 4개국) FTA도 4년 연속 무역적자로 88억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다. 홍헌호 연구위원은 “중장기적으로 손익을 계산하면 농업과 중소기업 부분이 파괴돼 시간이 지날수록 적자폭도 증가할 것”이라며 “결국 FTA로 인해 일부 대기업만 살아남고 양극화는 더욱 심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박송이 기자 p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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