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이번 대표팀 어느 때보다 경험 풍부”

임석빈 인턴기자
2010.05.25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 후배 태극전사들에 ‘팀에 헌신’ 강조

황선홍 부산 아이파크 감독에게 이번 남아프리카공화국 월드컵은 특별하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서 처음 맞는 월드컵이기 때문이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부터 2002년 한·일 월드컵까지 많은 국민이 그랬듯이 그도 후배 태극전사들의 발끝에 울고 웃게 될 것이다. 10년 넘게 국가대표팀 공격수로 날아다닌 ‘황새’ 황선홍 감독과 남아공 월드컵에 대한 전망 및 그의 축구인생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특집]“이번 대표팀 어느 때보다 경험 풍부”

대표팀이 지난 5월 15일 에콰도르와의 평가전에서 2대0으로 승리했다.
“급한 일이 생겨서 전반전밖에 보지 못했지만 좋은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월드컵 성적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보다는 긍정적인 생각이 대표팀에 자리 잡아가는 느낌이 든다. 에콰도르가 1.5군이라고는 하지만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다. 결과와 더불어 당당하고 활기차게 플레이한 것이 좋았다.”

골을 넣은 이승렬을 비롯해 신영민, 김재성 등 새로운 선수들의 활약에 대해 평가한다면.
“재성이와 영민이는 일반 팬들에게 낯설 수도 있지만 선수나 감독 사이에서는 이미 인정을 받고 있다. 프로경기에서 상당히 좋은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승렬이의 경우 대표팀에서 많은 경기를 소화하지 못했지만 중간중간 조커로 활약하고 있다. 어리기 때문에 발전 가능성은 있지만 조금 더 지켜봐야 할 필요가 있다.”

대표팀의 수비가 불안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현대축구에서 포백만 수비한다는 생각은 버려야 한다. 포백으로만 수비한다면 아르헨티나 팀은커녕 K리그 팀도 막아 내기가 벅차다. 미드필더와 공격수가 가담해 도와야 한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결코 약하다고 볼 수만은 없다.”

4강 신화를 이룬 2002년 대표팀과 이번 대표팀의 차이가 있다면 무엇인가.
“이번 대표팀은 어느 때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화려하다. 4강과 원정 첫 승리를 경험했고, 해외파도 많다. 이에 비해 2002년 당시는 화려함이 떨어진다. 하지만 팀에 헌신적인 선수가 많았다. (김)태영이와 (최)진철이도 그랬고, 스타플레이어가 아님에도 모두가 헌신적이었다. 이런 부분을 이번 대표팀이 갖춘다면 2002년 멤버보다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한 팀의 감독으로서 냉정하게 대표팀 성적을 예상한다면.
“어려운 질문이다. 첫 게임인 그리스전이 상당히 중요할 것 같다. 당연히 승점을 얻지 못하면 상당히 어렵게 될 것이고, 이긴다면 긍정적으로 볼 수 있다. 흐름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마지막 평가전인 스페인전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 경기에서 얼마나 좋은 경기력을 유지하고 결과를 내느냐가 첫 경기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02년에도 마찬가지였다. 1년 전 경기에서 5대0으로 졌던 프랑스와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경기 후에 이 정도면 해볼 만하다는 자신감이 붙었다.”

한·일 월드컵에서 황 감독이 첫 골을 넣었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누가 넣을 것 같은가.
“아무래도 선발로 나올 (박)주영이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동국이도 선발로 나간다면 가능할 것으로 본다.”

특히 잘해 줬으면 하는 후배가 있다면.
“동국이랑 (안)정환이가 아닐까? (이)청용이나 (기)성용이는 월드컵이 처음이다. 노장들이 잘 이끌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린 선수들이 플레이하기에 더 수월하다.”

대표팀 주장 박지성이 황 감독과 똑같이 월드컵을 앞두고 대표팀 은퇴를 미리 선언했다.
“나는 월드컵에 대한 마음이 절실했다. 1990년에는 어렸기 때문에 참가에 의의를 뒀고 1994년에는 실패했다. 1998년에는 부상으로 뛰지도 못했다. 월드컵에 대한 좋은 기억이 없어서 절박한 심정이었다. 은퇴를 선언하면서 이번 대회를 끝으로 축구를 그만둬도 여한이 없다는 마음으로 뛰었다. 지성이는 나랑 다르긴 해도 충분히 이해한다. 지성이도 벌써 서른이다. 고질적으로 무릎이 좋지 않기 때문에 힘들 것이다. 무릎 수술 경험이 있는 선수는 대부분 장시간 비행기를 타면 무릎이 붓는다. 나도 그랬고 지성이도 그랬다고 들었다. 장시간 비행기로 이동해 도착하면 정상적인 경기를 위해 2, 3일은 휴식이 필요하다. 그러나 스케줄이 워낙 빡빡해 쉽지 않다. 게다가 책임감도 막중했을 것이다.”

황 감독도 책임감이 막중했는가.
“매 경기가 살얼음판이었다. 팀이 지면 골을 못 넣어서 진 것이고 이겨도 골을 못 넣고 부진했다면 질타당하고…, 부담감이 컸다. 하지만 그만큼 사명감이 있고 국민에게 즐거움을 줄 수도 있는 자리였다.”

황 감독의 뒤를 잇는 이동국 선수가 부상했다.
“큰 부상이 아니라고 들어서 큰 걱정은 하지 않는다. 하지만 후배들이 부상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아프다. 나 역시 생각하기 싫은 정도의 아픈 기억이 있다. 동국이도 마찬가지다. 이번엔 잘 풀렸으면 좋겠다.”
황 감독과 만난 5월 18일에는 많은 비가 내렸다. 장대 같은 비와 황선홍. 머릿속에 불쑥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황선홍의 팬 또는 어지간한 축구팬이라면 같은 장면이 떠올랐을 것이다. 장대비를 뚫고 날린 그림 같은 발리슛, 극적인 한-일전 결승골이었다. 황 감독도 그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가 기억나는가.
“1998년 4월 1일이었다. 내가 넣은 골 가운데 베스트를 꼽는다면 1, 2위쯤 할 골이다. 그 경기 전에 일본에 2연패를 당한 상황이어서 지면 안 되는 경기였다. 더욱이 무릎십자인대 수술을 받고 1년 4개월만에 나선 첫 경기에서 넣은 골이어서 기억이 생생하다. 개인적으로 굉장히 의미 있는 골이다. 물론 대표팀에서 넣은 골은 거의 다 기억하고 있다.”

다시 뛰고 싶은 생각 또한 들지 않는가.
“아니다. 시간이 많이 지났다. 그래도 팬이 많이 모인 경기장을 보면 가끔 뛰고 싶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이제 선수도 해설위원도 아닌 한 명의 축구인으로서 월드컵을 맞이하게 됐다.
“지도자 입장에서 처음으로 맞는 월드컵이다. 즐겁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선수나 해설자인 때에는 세계 축구 흐름이나 전술적 변화를 모두 보기 힘들었다. 이번엔 우리나라 경기뿐만 아니라 스페인 등 세계적인 팀들의 경기를 잘 살펴볼 것이다. 전술적 변화 등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기 때문에 흥미로울 것 같다.”

선수 시절에 ‘황새’로 불렸다. 지도자인 지금은 어떻게 불리고 싶은가.
“감독이니깐… 지략가? 축구를 잘 알고 잘하는 것이 중요하다. 선수 때 황새란 별명은 괜찮았다. 물론 내가 잘해야 붙여 주는 별명이겠지만 좀 더 강한 이미지였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선수 시절에 강한 이미지였다. 이번 월드컵 광고로 인해 많이 친숙해졌다.
“후배들이 월드컵에 나가는데 선배들이 응원한다는 취지가 나쁘지 않았다. 코믹하게 나와서 좀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주위에서 좋게 봐줘서 다행이다. 다른 멤버들과 함께 광고를 찍어서 좋은 추억이 됐다.”

월드컵을 앞둔 후배 선수들에게 조언한다면.
“다치지 않고 자기 역량을 다 발휘했으면 좋겠다. 좋은 성적이 나면 좋겠지만 기대에 못 미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아주 잘해야겠다는 마음가짐도 좋지만 조금은 여유롭게 대처하는 것도 필요하다. 이번 월드컵에서 16강에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다. 하지만 끝나고 나서 후회만 없다면 좋다.”

<임석빈 인턴기자 zomby01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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