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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동의 현대사, 바로 ‘그때 그 장면’

2010.01.05

1910년 경술국치는 20세기 한국사를 얼룩지게 한 비극의 서막이었다. 사진은 한일강제합병 직후 만주로 떠나는 이주민 행렬. <경향신문>

1910년 경술국치는 20세기 한국사를 얼룩지게 한 비극의 서막이었다. 사진은 한일강제합병 직후 만주로 떠나는 이주민 행렬. <경향신문>

2010년 한국 사회는 일본 제국주의에 나라를 빼앗긴 경술국치 100주년을 맞는다. 지난 100년 우리 사회는 식민지, 분단, 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치면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숨가쁜 역사의 굴곡을 만들어 냈다. (Weekly 경향) 2010년 연중기획 ‘역사의 현장에서 미래를 묻다’는 경술국치 100주년, 한국전쟁 60주년, 4월 혁명 50주년, 전태일 분신 40주년,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을 중심으로 민족과 분단, 노동과 산업화, 민주주의와 평화의 문제를 현재 관점에서 해석하고 미래 과제를 탐색한다. 여기 모은 현대사의 역동적인 순간들은 그 여정을 떠나기 위한 출발점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이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17일 충칭 임시정부 연화지청사 앞에서 환국 기념촬영을 위해 모였다. <경향신문>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과 가족들이 광복 직후인 1945년 9월 17일 충칭 임시정부 연화지청사 앞에서 환국 기념촬영을 위해 모였다. <경향신문>

한국인들은 광복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새도 없이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1948년 4월 19일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에 반대해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기 위해 서 있는 김구 일행. 왼쪽부터 선우진, 김구, 김신. <경향신문>

한국인들은 광복의 기쁨을 충분히 누릴 새도 없이 분단의 아픔을 겪어야 했다. 사진은 1948년 4월 19일 남북한 단독정부 수립 움직임에 반대해 38선을 넘어 북한으로 가기 위해 서 있는 김구 일행. 왼쪽부터 선우진, 김구, 김신. <경향신문>

분단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 당시 종군기자 카메라에 잡힌 미 해병대의 상륙 모습. <연합뉴스>

분단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 당시 종군기자 카메라에 잡힌 미 해병대의 상륙 모습. <연합뉴스>

1950년 12월 3일 평양, 파괴된 대동강 철교에서 피란민들이 남하하고 있다. 사진은 소설가 박도씨가 미국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의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보관하고 있는 한국전쟁기 전후의 사진들을 책으로 엮은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에 수록된 것. <경향신문>

1950년 12월 3일 평양, 파괴된 대동강 철교에서 피란민들이 남하하고 있다. 사진은 소설가 박도씨가 미국 메릴랜드주 칼리지파크의 국립문서기록보관청(NARA)이 보관하고 있는 한국전쟁기 전후의 사진들을 책으로 엮은 사진집 <지울 수 없는 이미지>에 수록된 것. <경향신문>

정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4월 북한 인민군 병사들이 회담장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향신문>

정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른 1953년 4월 북한 인민군 병사들이 회담장 주변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경향신문>

이승만 정권의 반민주주의적 정치 행태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사진은 4·19혁명 당시 중앙청으로 몰려가며 돌을 던지는 시위대. <경향신문>

이승만 정권의 반민주주의적 정치 행태는 시민들의 거센 반발을 불러왔다. 사진은 4·19혁명 당시 중앙청으로 몰려가며 돌을 던지는 시위대. <경향신문>

4·19혁명 당시 대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4·19혁명 당시 대학생들이 거리로 몰려나오고 있다. <경향신문>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하야했다. 사진은 1960년 4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을 듣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경향신문>

이승만 대통령은 결국 하야했다. 사진은 1960년 4월 25일 이승만 대통령의 하야 소식을 듣고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 <경향신문>

산업화 시기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뒤에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전태일은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사진은 1960년대 말 청계천에서 재단사로 일할 때의 전태일(왼쪽). <경향신문>

산업화 시기 한국 경제의 고도성장 뒤에는 열악한 노동 조건을 감수한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었다. 전태일은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 노동자의 권리를 주장했다. 사진은 1960년대 말 청계천에서 재단사로 일할 때의 전태일(왼쪽). <경향신문>

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했다. 사진은 당시 아들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 <경향신문>

노동자 전태일은 1970년 11월 13일 근로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분신 자살했다. 사진은 당시 아들의 장례식에서 오열하는 어머니 이소선 여사. <경향신문>

전태일의 분신은 1970년대 노동운동의 불길을 지핀 불꽃이었다. 사진은 1979년 8월 YH무역의 폐업에 항의해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붙들려 강제 해산되는 YH무역 노조원들. <경향신문>

전태일의 분신은 1970년대 노동운동의 불길을 지핀 불꽃이었다. 사진은 1979년 8월 YH무역의 폐업에 항의해 신민당사에서 농성을 벌이다 경찰에 붙들려 강제 해산되는 YH무역 노조원들. <경향신문>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유신반대 시위는 유신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전조였다. 사진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 광복동 입구에서 민주주의와 학원 자율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 <경향신문>

1979년 10월 부산과 마산 지역에서 일어난 유신반대 시위는 유신독재의 종말을 알리는 전조였다. 사진은 1979년 10월 16일 부산 광복동 입구에서 민주주의와 학원 자율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 <경향신문>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뒤 찾아 온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신군부의 무차별 진압으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트럭으로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박정희 정권이 무너진 뒤 찾아 온 1980년 ‘서울의 봄’은 광주 시민들에 대한 신군부의 무차별 진압으로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트럭으로 시민들을 연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들이 시민들을 무차별 폭행하고 있다. <경향신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들이 탈취한 군용차량에 타고 전남도청으로 가고 있다. <경향신문>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시민군들이 탈취한 군용차량에 타고 전남도청으로 가고 있다.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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