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개각 후폭풍

‘이회창 모델’ 될까 ‘이해찬 모델’ 될까

권순철 기자
2009.09.22

정운찬 총리 후보자, 이명박정부 ‘연착륙’ 여부 관심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9월3일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 서울대 사회과학대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9월3일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 서울대 사회과학대 세미나실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강윤중 기자>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가게 될 길은 ‘이회창 모델’일까, ‘이해찬 모델’일까.” 여의도 정치권에서 요즘 회자되고 있는 말이다. 그만큼 정치권에서는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에서 연착륙할 수 있을까에 관심이 많다. 한편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정 총리 후보자의 결합은 시너지효과를 배가시킬 것으로 예측하는 반면에 다른 한편에서는 “한복바지에 양복상의를 입은 꼴”이라며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고 혹평하고 있다.

경제정책에서 청와대와 충돌 가능
1987년 민주적 헌정체제 이후 중도개혁 성향의 대통령과 총리가 함께 국정을 운영한 사례는 지금까지 단 두 차례 있었다. 첫 번째는 김영삼 대통령과 이회창 총리 체제(1993.12~1994.4)였고, 두 번째는 노무현 대통령과 이해찬 총리 체제(2004.6~ 2006.3)였다. 그러나 결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당시 이회창 총리는 김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다가 중도하차했고, 이해찬 총리는 노 대통령으로부터 권력의 일부를 이양받아 이른바 ‘책임 총리’로서 자리매김했다.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는 김영삼 정부 당시 대법원 판사 시절부터 ‘소수 의견’을 내고 김영삼 정부 초기 감사원장으로서 율곡비리 감사 등으로 대중적 인기를 끌었고, 이를 바탕으로 총리에 발탁됐다. 하지만 당시 이 총리는 쌀시장 개방 등 정책에서 김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다가 결국 안보통일정책조정회의 결과보고 문제를 놓고 대립해 취임 4개월 만에 경질됐다. 이해찬 전 총리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에 의해 참여정부 2기 총리로 발탁됐다. 참여정부의 각종 개혁과제인 부패청산, 정부 혁신 등을 그로 하여금 진두지휘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당시 이 총리는 국회에서 한나라당을 ‘차떼기 당’이라고 공격하는 등 대야 공격의 선봉장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는 결국 ‘골프 파문’으로 2006년 3월 총리직에 오른지 1년 9개월만에 낙마했다.

정운찬 총리 후보자가 앞으로 ‘이회창 모델’로 갈 것이라는 견해와 ‘이해찬 모델’로 갈 것이라는 견해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반반이다. ‘이회창 모델’로 갈 것이라는 근거는 정 총리 후보자가 지난 대선 이전부터 감세, 대운하 사업구상 등 이른바 ‘MB노믹스’를 강하게 비판해 왔기 때문이다. 양측이 가장 큰 이견을 보이는 부분은 감세정책이다. 정 총리 후보자는 “감세가 소비 증대에 효과가 없다는 사실은 경제원론에 나온다”며 감세론에 대해 부정적이다. 케인스 학파로 조순 전 총리의 제자인 정 총리 후보자가 신자유주의자들이 장악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팀과도 통화·금융정책에서 엇갈릴 수밖에 없다. 이 밖에 정 총리 후보자는 부동산 정책, 규제 완화, 금산 분리 등에서도 현 정부와 코드가 맞지 않는다. 이에 따라 경제정책 등에서 수시로 대통령과 다른 소신을 피력해 온 정 총리 후보자가 결정적인 순간에 청와대와 충돌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또한 지금까지 경제 대통령(이명박 대통령)과 경제 총리(정운찬 총리)모델은 없었다는 점도 정 총리 후보자에게는 부담이다. 김형준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정 총리 후보자의 정치적 철학과 시각이 현 정부와 충돌할 가능성이 많다”면서 “오히려 이 대통령이 소신을 꺾느냐가 정 총리 후보자가 롱런할 수 있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중도실용 노선 적임자 의견도

정세균 대표(가운데)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9월3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워크숍을 하기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정세균 대표(가운데)를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9월3일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서 워크숍을 하기에 앞서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우철훈 기자>

반면에 정 총리 후보자가 이 대통령과 호흡을 잘 맞출 것이라는 견해도 많다. 정 총리 후보자가 이 대통령이 집권 2년차의 과제로 내세운 중도실용 노선과 친서민정책 추진의 적임자라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정책과 관련해서는 이 대통령과 정 총리 후보자가 의견을 이미 조율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정 총리 후보자의 세종시 관련 발언(“행정복합도시는 경제학자의 제 눈으로 보기에 아주 효율적인 플랜은 아니다”)도 이같은 맥락에서 나왔다는 것이 정치권의 시각이다. 이와 함께 뚜렷한 대선 후보가 없는 친이계에서 정 총리 후보자를 적극 도울 것이라는 예상도 나오고 있다. 신율 명지대 교수(정치학)는 “이 대통령이 박근혜 전 대표를 무력화시키기 위해서라도 정 총리 후보자를 의도적으로 밀어줄 것”이라면서 “참여정부 때 이해찬 전 총리 같은 또 하나의 실세 총리가 나올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한편 9월21~22일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정 총리 후보자에 대한 혹독한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민주당, 자유선진당 등 야권은 청문회장에서 정 총리 후보자에 대한 ‘송곳 청문회’를 벼르고 있다. 민주당은 인사청문위원으로 강운태, 김종률, 백원우, 최재성 등 재선 의원을 ‘저격수’로 배치시켰다. 또한 자유선진당은 박상돈 의원, 민주노동당은 이정희 의원이 비교섭단체 몫 청문 위원으로 각각 활동한다. 이와 관련해 민주당 우상호 대변인은 “정 총리 후보자가 (이명박 정부에서) 얼마나 목청을 높일 수 있을지 지켜봐야 할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민주주의 후퇴, 민생경제 파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해야만 한다”고 날을 세웠다. 자유선진당은 이번 청문회에서 세종시 문제를 반드시 집고 넘어가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선진당은 연일 “정운찬은 세종시를 팔아먹은 매국노”라며 십자포화를 퍼붓고 있다. 한편 민주당 일각에서는 정 후보자에 대한 공격은 ‘제 살 깎기’이므로 자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은 선거 때마다 정 총리 후보자를 찾아가 민주당의 후보로 나와줄 것을 삼고초려해 왔다”면서 “민주당과 연애하던 사람이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고 비난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권순철 기자 ik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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