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개각 후폭풍

답보상태 민주당, 정국 주도권 뺏겨

유창선 <정치평론가>
2009.09.22

‘정운찬 총리’ 카드로 입지 줄어… ‘추모 정국’에 안주 지지율도 주춤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9월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 130만 국민서명 보고대회’를 열고 미디어 관련법을 날치기 처리한 한나라당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정세균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와 의원들이 9월7일 국회 본청 앞에서 ‘언론악법 원천무효 130만 국민서명 보고대회’를 열고 미디어 관련법을 날치기 처리한 한나라당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서성일 기자>

민주당이 다시 어려움에 처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직후 한동안 당 지지율이 반등해 한나라당에 역전까지 했던 민주당이었다. 민주당이 배출한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는 국민적 애도의 분위기 속에서 민주당의 전통적인 지지층을 다시 결집시킬 것 같은 모습이었다. 민주당이 총력을 기울인 미디어법 강행처리 무효화투쟁은 ‘반(反)MB 전선’을 강화시키고 정국 주도권을 야권에 넘겨주게 될 것으로 민주당은 기대했다.

그러나 상황은 정반대로 전개되고 있다. 무엇보다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뚜렷한 반등세를 보이고 있다. 청와대가 내걸고 있는 ‘중도실용’, ‘친서민’ 정책이 그동안 등 돌렸던 중도층의 호응을 얻은 결과로 분석되고 있다. 반면에 민주당의 지지율은 답보상태다. 여기에다 갑작스러운 ‘정운찬 총리’ 카드는 민주당의 입지를 상당히 좁히는 결과를 낳았다. 민주당에 무엇보다 뼈아픈 것은 이 대통령이 ‘중도실용’을 선점하고 그 효과를 누림에 따라 민주당이 기대한 중도층의 지지를 여권에 빼앗기는 상황이 초래된 사실이다.

전직 대통령 ‘유산 상속’에만 열 올려
민주당의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민주당의 최대 실책은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 이후 조성된 정국 상황을 자신의 것으로 발전시키지 못했다는 점이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는 최근 한 강연에서 “현재 민주당은 계승 방안 만들기에만 급급하고, 유권자들이 선호할 대안 만들기에 대해서는 별로 논의하지 않고 있다”면서 “앞선 지도자를 승계하는 데 경쟁하고 몰두하는 것으로 향후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 바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추모 열기에 따른 반사이익에만 안주하며 정작 민주당의 근본적인 과제를 잠시 잊은 듯이 보였다.

정동영 의원이 6월 22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제1차 시국기도회에 참석, 추모하고 있다.

정동영 의원이 6월 22일 용산참사 현장에서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 주최로 열린 제1차 시국기도회에 참석, 추모하고 있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추모는 민주당에 대한 평가와 별개의 것이었음에도 민주당은 두 전직 대통령의 유산으로 먹고살려는 모습을 보였다. ‘포스트 노무현, 포스트 김대중 시대에 민주당은 어떻게 자기 힘으로 국민의 지지를 받을 것인가’라는 질문은 접어둔 채 전직 대통령들의 유산 상속에만 열을 올렸다. 지난 10년 민주정부의 공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하고 그에 대한 민주당의 대안이 무엇인가를 국민 앞에 보였어야 할 과제를 민주당은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 결과 민주당은 과거를 먹고사는 정치세력으로 비쳐질 수 밖에 없었다. 추모정국이 몇 년 간다면 모를까 애당초 잘못된 접근법이었다.

민주당이 답보상태에 빠진 또 하나의 원인으로는 야권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한 점을 들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 특히 2012년 대선을 앞두고 ‘민주당의 틀로는 안 된다’는 회의적 정서가 야권 지지층 사이에 팽배해 있다. 민주당이 정세균 대표까지 나서서 야권대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한 것도 이 점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민주당의 야권대통합 의지에도 불구하고 상황은 달라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친노세력 사이에서 국민참여 정당 추진 움직임이 생겨나는가 하면 시민정치운동을 표방하는 시민주권모임이 추진되고 있다.

중요 정치 일정을 앞두고 야권대통합 내지 반MB 연대가 이뤄져야 한다는 데는 야권 내부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지만 막상 그 형태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민주당 외부 세력들은 민주당의 기득권 포기를 통한 야권연대를 말하고 있다. 정세균 대표도 기득권 포기 의사를 밝힌 바 있지만 아직은 원론적인 수사 수준에 머물고 있다. 민주당이 야권 통합을 위해 얼마만한 혁명적인 변화를 감내할 각오가 되어 있는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민주당의 기득권을 둘러싼 이 같은 논쟁 과정에서 부딪치는 문제가 이른바 ‘호남당’ 논란이다. 국민참여 정당을 추진하고 있는 천호선 전 청와대 대변인이 얼마 전 민주당을 ‘호남당’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돼 ‘친노’가 민주당과 각을 세운다며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천 전 대변인은 자신의 발언이 와전됐다고 해명했지만 사실은 여전히 살아 있는 문제이다. ‘호남당’이라는 표현까지는 지나칠지 몰라도 민주당에 호남지역의 기반이 절대적인 것만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특히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이후 호남 인사들을 영입하려는 민주당의 움직임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현재 민주당을 대표하는 정 대표, 이강래 원대대표, 박지원 정책위의장 3명 모두가 호남 지역 정치인이다. 민주당이 이 같은 지역색을 스스로 걷어내지 못한다면 전국정당으로 지지 기반을 넓히는 것은 요원한 일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후광에 의존하려는 쉬운 길을 쳐다보고 있다. 이 역시 민주당의 힘을 스스로 빼는 일이다.

가장 큰 고민은 유력 대권주자 부재
민주당에는 정치적 능력의 문제도 있다. 민주당이 한동안의 상승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지지율을 다시 토해 내고 있는 데에는 정국을 주도하는 능력이 부재한 이유도 작용하고 있다. 그동안 민주당은 미디어법 무효화 투쟁에 올인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그러나 그러한 투쟁을 하면서도 야당으로서는 놓쳐서는 안 될 여러 사안이 있었다. 기무사의 민간인 사찰 의혹, 방송통신위원회 등을 통한 방송장악 논란 등이 있었지만 민주당은 이를 정치쟁점으로 부각시키지 못하고 그냥 넘겼다. 개각을 앞두고서도 책임을 묻는 ‘인적 쇄신’의 대상조차 부각시키지 못하는 등 강 건너 불구경 식으로 일관했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야당을 이끌 때를 떠올리면 있을 수 없는 일들이었다. 민주당은 야당이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쟁점들이 어떠한 것인지를 판단해 내고, 이를 효과적으로 부상시킬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

물론 민주당의 가장 큰 고민은 차기 대선의 유력한 주자가 부재한 현실이다. 이제까지의 민주당 인물들로는 차기 대선이 어렵다는 데 당 안팎의 견해가 일치하고 있다. 더욱이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 이외에도 정몽준 대표, 정운찬 총리 후보자 등이 대선주자 반열에 올라서고 있는 상태이다. 민주당의 위기의식이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현재로서는 묘안이 있기 어려운 상황이다. 향후 야권연대가 가시화되고 야권 정치세력의 변화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과정에서 새로운 답을 찾아야 할 문제이다. 야권 내의 특정 정파가 아니라 야권 전체를 아우를 수 있고, 중도층의 지지까지 받을 수 있는 새로운 인물이 누구인지가 민주당을 넘어선 야권 전체에 부여된 숙제라 할 수 있다.

지난 3일 있었던 민주당 워크숍에서는 정동영 의원의 복당 문제를 중심으로 한 당내 갈등이 표출됐다. 여러 얘기가 있었지만 결국 ‘정세균 대 정동영’의 대결구도였다는 해석이다. 청와대가 정국 주도권을 장악해 가고 있고 야권의 대변화가 요구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너무도 시야가 좁은 민주당의 모습이다. 그렇게 가면 길은 없다. 국민을 감동시킬 만한 대변화의 모습을 보이고 신뢰할 수 있는 대안능력을 보이는 것, 거기에 민주당의 살길이 달려 있다.

유창선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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