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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교생 안단테에서 ‘경제 대통령’ 미네르바까지

2008.12.30

본지 선정 2008년 10대 아고리언

촛불집회는 중고생들의 참여로 시작됐다. 사진은 5월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생들. <김영민 기자>

촛불집회는 중고생들의 참여로 시작됐다. 사진은 5월 촛불집회에 참여한 중고생들. <김영민 기자>

'아고라’는 촛불집회 기간 중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형성된 여론의 집결지이자, 새로운 여론을 만들어낸 진원지였다. 여론이 수렴되고 다시 발산하는 과정에서 무수한 이야깃거리가 양산되고 이를 둘러싼 논쟁이 벌어졌다.

이들 중에는 아고라에 활발하게 글을 올리면서 주목받은 이도 있고, 생활 카페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했으나 아고라에서 그 활동의 반향이 컸던 인물도 있다. 그중 다음 10명의 ‘아고리언’은 그러한 논쟁과 화제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물론 이들이 2008년 아고리언을 ‘대표’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아고라는 거기에 뛰어드는 모든 시민에게 열린 공간이자 어느 한 사람이 독점할 수 없는 수평적인 공간이고, 그러한 개방성이야말로 촛불정국을 주도한 아고라의 힘이었기 때문이다.

1. 탄핵 서명운동 발의한 고등학생 안단테
4월 6일 한 누리꾼이 다음 아고라 토론방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을 제안하는 글을 올렸다. 한 달 만에 누리꾼 100만 명이 이 서명운동에 동참했고, 서명운동으로 드러난 정권에 대한 불신은 이후 몇 달 동안 우리 사회를 뒤흔든 촛불집회의 기폭제가 됐다. 이 누리꾼은 ‘안단테’라는 아이디를 사용하는 경기도의 한 고등학교 2학년 남학생이다.

안단테는 촛불집회 이전에도 사회문제에 관심이 많던 조숙한 학생이다. 인수위 시절부터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눈여겨본 그는 정부가 영어 몰입 교육이나 자립형 사립고 증설을 추진하는 것을 보고 탄핵 서명운동 발의를 결심했다.

그는 탄핵 서명운동을 제안하는 글을 올린 이후 한동안 아고라에 글을 올리지 않았다. 대신 그는 일제고사 반대 청소년 모임에서 활동하면서 “아고라와 촛불을 통해 내가 우물 안 개구리였다는 걸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1년 동안 이명박 정부를 지켜보면서 사람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됐다”면서 “대운하도 하지 않는다고 하다가 지금 또 추진하고 있지 않나”라고 비판했다. 기자가 되고 싶다는 그는 “요즘 학생들과 시민에게 정론지를 배포하는 일을 준비 중”이라고 근황을 전했다.

2. 유모차 부대 카페 운영자 정혜원씨
기존 집회와 촛불집회를 가르는 가장 큰 차이는 여성의 참여였다. 여중생·여고생이 촛불집회의 시위를 당기자 하이힐을 신고 유모차를 미는 주부가 광장으로 나왔다. 촛불집회는 또 먹을거리 안전이라는 생활의제가 일방통행식 정치에 대한 반감과 결합할 때 얼마나 강력한 폭발력을 지닐 수 있는지도 여실히 보여주었다. 5월 말 거리로 나와 시민과 전경 들 사이에서 ‘비무장지대’ 구실을 하던 유모차 부대 엄마들은 이처럼 여성과 생활의제의 부각이라는 촛불집회의 특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촛불이 사그라들면서 정부가 자신감을 회복하자 유모차 부대 엄마들은 수난을 당했다. 경찰은 집회에 참가한 엄마들을 도로교통법 위반 혐의로 수사하면서 엄마들을 ‘아이를 학대하는 엄마’로 몰아붙였다. 여당 의원들과 보수언론도 여기에 가담했다.

유모차 부대 카페 운영자인 정혜원(33)씨는 이런 일을 겪으면서 “우리 사회에 대해 심각하게 실망했다”고 토로했다. 정씨는 15대와 16대 대선 때는 투표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정치적으로 무관심했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그는 “나 같은 사람이 정치에 관심을 갖게 만든 것이 이 정권이 유일하게 잘한 일”이라고 말했다. 정씨는 요즘 자신이 냉소적으로 변한 것 같다며 걱정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가 처한 상황이 지난여름에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나쁘다”면서 “국가와 정치에 대한 불신이 깊어졌다”고 말했다.

유모차 부대 카페는 지금은 평범한 주부 모임으로 변했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거리의 촛불과 유모차일 뿐, 엄마들을 광장으로 이끈 시민의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정씨는 “요즘 친환경·윤리적 소비에 관심을 가지면서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3. 예비군 부대 차정현씨

<사진 제공 차정현>

<사진 제공 차정현>

촛불집회가 벌어졌던 서울 도심 광장은 정치적 의사 표현의 공간이기도 했지만 다양한 옷차림의 전시장이기도 했다. 얼룩무늬 군복을 입은 남성은 그 복장만으로도 단번에 눈길을 잡아끌었다.

이들은 시위대의 선두에서 물대포를 몸으로 받아내면서 집회 현장 곳곳을 누볐다. ‘예비군 부대’는 ‘시민들의 방패’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지만 일부에서는 ‘가부장적 마초의 모습’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2006년에 제대한 예비역 병장 차정현(24)씨는 5월 28일부터 예비군 부대에 동참했다. 아고라에서 ‘차중사’로 통하는 그는 5월 26일 광화문 집회를 마치고 신촌에서 거리 행진을 하던 시민이 끌려가는 모습을 보고 군복을 입었다.

6월의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은 하나 둘 일상으로 돌아갔지만, 그는 아직까지도 청계광장에서 촛불을 든다. 차씨는 “마음 속에 촛불을 간직하고 있는 시민들이 다시 광장에 나올 때까지 광장을 지키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나 같은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에 무관심했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상황이 생긴 것 같다”면서 “촛불집회를 통해 사회에 대한 책임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촛불은 그의 생각만이 아니라 생활까지 뒤흔들어놓았다. 두 차례 연행과 한 차례 긴급 체포를 거치는 동안 그는 올 한 해 동안만 직장을 여섯 군데나 옮겨야 했다. 차씨는 촛불집회를 돌아보며 “같은 뜻으로 모인 사람들이 서로 다른 방법을 추구하며 분열이 생겼다”면서 “뜻이 같다고 행동까지 다 옳은 것은 아니지 않나. 행동의 올바름에 대해서도 고민하자”고 말했다.

4. ‘다인아빠’ 김경민씨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6월은 일반적으로는 집회를 하기에 나쁜 기후 조건이라고 말할 수 없다. 그러나 밤을 꼬박 새우는 형태로 진행되던 촛불집회 참가자들에게 6월의 밤은 종종 춥고 배고팠다. 촛불집회가 한창이던 때 광화문 인근 편의점이 날개 돋친 듯 매상을 올린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김경민 제공>

<김경민 제공>

김경민(36)씨는 애초 노점을 하기 위해 마련한 용달차를 끌고 집회가 열리는 곳이면 어디든 나타나 시민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제공했다. 아고라에서 그는 ‘다인아빠’로 통했다. ‘다인’은 6살 된 그의 딸 이름이다.

그는 올해 2월까지 6년 동안 지입 화물차로 택배일을 했다. 화물차주들이 일상적으로 느껴야 하는 부조리함과 스트레스는 그에게 ‘덜 벌고 스트레스도 적은’ 일을 찾게 만들었다. 4월에 노점을 하기 위해 차를 샀다. 노점을 시작한 지 한 달 만에 촛불정국을 맞으면서 그의 삶이 바뀌었다.

김씨는 “불합리한 회사의 직원 노릇은 그만둘 수 있지만 불합리한 나라의 국민 노릇은 그만둘 수 없기 때문에 광장으로 나갔다”고 말했다. 그가 아고리언에게 알려진 건 6월 14일이다. 14일 집회에 참여하기 위해 마련한 음식을 보수단체 회원들이 가스통을 휘두르던 6월 13일에 다 써버렸다. 한 누리꾼이 아고라에 ‘다인 아빠를 돕자’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고, 하루 만에 필요한 물품이 손에 들어왔다.

촛불이 잦아든 지금, 그는 ‘삼촌’과 ‘이모’라고 부르는 후배와 독거노인 들을 찾아다니는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총학선거가 진행된 11월에는 촛불정신을 알리기 위해 대학가를 돌아다녔다.

그는 경찰들이 궁금해하는 자신의 배후세력은 “나의 딸 다인이와 아들 동근이”라고 말했다. 촛불정국에서 그를 밀어붙인 힘은 이념이 아니라 아이들의 미래에 대한 아버지로서 책임감과 자존심 때문이라는 얘기다.

5. ‘권태로운 창’ 나명수씨

<서성일 기자>

<서성일 기자>

‘토론의 성지’ 아고라에서 글에 대한 호응이나 평가는 글쓴이의 ‘계급장’과는 무관했다. 아고라에서 글은 오로지 글로만 평가됐다. ‘권태로운 창’이라는 필명으로 알려진 나명수(47)씨는 촛불정국을 주도한 아고라에서 가장 활발한 논객으로 활동했다.
나씨는 촛불정국에서 진보매체나 시민단체가 주최한 토론회에 ‘아고라 논객’ 자격으로 참가해 거침없는 언변을 토했다. 10월에는 계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이것이 아고라다’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가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에게 고소를 당하기도 했다. 그가 이 글에서 ‘미국산 쇠고기의 안전성을 주장해온 심 의원의 주장을 지지하는 댓글을 올린 누리꾼은 심 의원 본인 또는 심 의원의 보좌관일 것’이라고 쓴 부분이 화근이 됐다. 나씨는 또 촛불집회를 주도한 혐의로 구속됐다가 10월 보석으로 풀려났다.

나씨는 얼마 전 자신이 운영하던 논술학원을 접었다. 생계 문제가 고민이지만 “운동과 학원 운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자신이 없다”는 것이 이유다. 그는 “촛불이 현 정권의 반민주적 국정 운영에 어느 정도 제동을 걸기는 했지만 완전히 막지는 못했다”고 말했다.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 출간 작업에도 참여한 나씨는 “요즘은 촛불정국을 정리하는 백서를 준비 중”이라면서 “촛불시민들이 올해 여름처럼 터무니없이 무너지지 않도록 역량을 결집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6. ‘한글사랑나라사랑’ 채수범씨

<김창길 기자>

<김창길 기자>

7월 19일 책 한 권이 서점에 깔렸다. 일주일 만에 초판 5000부가 다 나가 2쇄를 찍었다. 아고라에 올라왔던 글을 가려 묶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다. 출판을 제안한 것은 ‘아고라 폐인’을 자처하는 채수범(37)씨다.

아고라에서 ‘한글사랑나라사랑’이라는 아이디로 알려진 채씨는 외국계 건설회사에서 일한 적이 있는 토목기사다. 책 만드는 일에는 아고라에서 만난 10여 명이 참가했다. 채씨는 출판이 처음이었지만, 아고라의 ‘집단 지성’이 구체적인 문제를 해결했다. 출판 경험이 있는 아고라인들이 출간 작업에 참여한 것이다. 수익금 중 출판비용을 제외한 돈은 연행 피해자를 돕고 바른 언론을 지원하는 데 썼다.

최근에는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의 후속으로 <대한민국 논술사전 아고라>를 펴냈다. 채씨는 “초판을 2000부만 찍은 게 다행”이라고 말했다. 판매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는 뜻이다. 저조한 판매는 촛불의 동력이 사라진 것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그는 “사제단 신부들이 나온 다음부터 촛불이 잦아들었다”면서 “너무 부드러운 방식으로만 진행한 게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채씨는 아고라 활동도, 촛불집회도 당분간 중단한 상태다. 내년 2월에 있을 토목시공 기술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는 그는 “내년 3월쯤에는 촛불 동력이 새롭게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요즘 근황을 전했다.

7. 여성 사망설 제기한 최용근씨

<서울지방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

공권력은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헌법에서 규정한 정부의 역할은 시민을 보호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 공권력은 종종 시민의 권리를 억압하는 형태로 드러난다. 촛불집회에서 공권력은 무차별 연행과 무차별 폭력을 행사하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드러났다.

경찰이 시민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경찰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았다. 진압 과정에서 쓰러진 여대생을 한 전경이 발로 밟는 동영상이 인터넷에 공개되면서 여론은 분노로 들끓었다. 6월 2일 한 지역신문 기자 최용근(48)씨가 ‘살인 경찰, 사실이 아니길 바랍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글은 이 분노에 기름을 들이부었다. 최씨는 글에서 “경찰이 시위 도중 붙잡힌 20대 여성의 목을 조르다 사망하자, 봉고차에 태워갔다”고 주장하고 10여 장의 사진을 함께 올렸다.

최씨는 6월 4일 허위사실을 유포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혀 구속됐지만 파문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건의 진위를 확인할 증거로 제출한 사진은 명확하지 않았고, 최씨의 진술은 종종 엇갈렸다. 누리꾼은 사진을 면밀히 살펴보면 민간인 이미지가 선명하게 떠오른다고 주장했지만 확실치 않다. 최씨는 12월 12일 1심에서 징역 10월을 선고 받았다. 최씨의 변호를 맡은 법무법인 한결은 현재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8. 촛불산책 제안자 정연길 목사
지난여름 광화문 앞은 거대한 촛불의 군무로 휘황하게 출렁였다. 겨울이 다가온 지금 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추위와 행인이다. 촛불은 완전히 사라진 것일까.

12월 10일 덕수궁 대한문 앞. 100여 개의 촛불이 또다시 조용히 타올랐다. 촛불은 광화문-서대문-경찰청을 거쳐 시청 앞을 천천히 걸었다. 촛불을 든 시민은 중년 부부, 장애인, 할아버지, 주부, 학생 등 다양했다. 이른바 ‘촛불산책’이다.

<정연길 제공>

<정연길 제공>

촛불산책은 10월 정연길(42) 목사가 8·15평화행동단 사람들과 함께 구상했다. 8·15평화행동단은 8월 15일 한국은행 앞에서 연좌시위를 벌일 때 인연을 맺은 사람들의 모임이다. 11월 5일 첫 산책길에 나선 이래 12월 17일까지 모두 7차례 촛불 행렬이 이어졌다. 정 목사는 “공권력의 강경 진압에 촛불을 내려놓았던 사람들이 편안하고 안전하게 촛불을 들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촛불산책이란 아이디어를 떠올렸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촛불정신이라고 이름붙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광장의 문화에 대한 성찰”이라고 말했다. 그가 생각하는 광장이란 타인의 의견을 배척하지 않고 서로 끌어안는 자세다. 그는 이러한 수용과 포용의 자세가 민주주의 기틀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니 광장을 살리는 것은 곧 민주주의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이다. 그가 현 정부를 신뢰하지 않는 것은 “정부가 국민을 자신들의 뜻대로만 끌고 가려는 오만과 독선”에 사로잡혀 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는 성경 구절을 화두로 삼고 있다는 정 목사는 “가깝게는 서울 전역, 멀게는 전국에 촛불산책 코스가 생기는 모습을 꿈꾼다”고 말했다.

9. 대운하 양심 선언 김이태 연구원

<경향신문>

<경향신문>

토론 공간 아고라는 양심 선언의 공간으로도 활용됐다. 5월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김이태 연구원은 아고라에 ‘대운하에 참여하는 연구원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려 “국토부가 건기연에 연구용역을 의뢰한 한반도 물길 잇기 및 4대 강 정비계획의 실체는 운하 계획”이라고 폭로했다.

당시 국토부와 건기연은 “징계할 의사가 없다”고 밝혔지만 12월 13일 김 연구원은 징계의원회에 회부될 예정인 것으로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건기연은 16일 “김 연구원에 대한 내부 징계위원회가 23일 오후 4시 열린다”고 밝혔다. 김 연구원은 또 12월 초까지 보름 동안 건기연 내부의 특별감사를 받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김 연구원에 대한 징계 방침은 정부가 ‘4대 강 정비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한 것과 맞물려 의혹이 일고 있다.

다음 아고라에서는 5월과 마찬가지로 김 연구원을 지키려는 누리꾼이 모여들고 있다. 모금 청원을 제안한 한 누리꾼은 “정권의 압력으로 양심선언을 한 김 연구원이 특별감사를 받고 징계를 받을 상황”이라면서 “이미 7개월여 시간이 지난 일을 두고두고 심중에 담고 있다가 여론이 잠잠해지니 처벌하겠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15일 시작한 청원은 하루 만인 16일에만 3600여 명을 넘어섰다.

10. ‘경제 대통령’에 등극한 미네르바

라틴어로 지혜와 학문의 여신을 뜻하는 미네르바. <경향신문>

라틴어로 지혜와 학문의 여신을 뜻하는 미네르바. <경향신문>

그는 홀연히 종적을 감췄다. 11월 13일 ‘이제 내 마음 속에서 한국을 지운다’는 제목의 마지막 글을 남기고 어딘지 모를 곳으로 훌쩍 날아갔다. ‘인터넷 경제 대통령’으로까지 불리며 ‘미네르바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그는 2008년 하반기 아고라의 최대 이슈였다. 그는 리먼 브러더스 파산과 환율 급등을 적중시키며 내로라하는 경제전문가들을 무안하게 만들었고, 인터넷에서는 숭배의 대상이 됐다. 그가 절필을 선언하면서 추천한 <자본주의 역사 바로 알기>도 순식간에 베스트셀러 대열에 진입했다.

미네르바는 리먼 브러더스가 파산 신청을 하기 닷새 전인 9월 10일 리먼 파산과 이후의 시나리오를 예측한 글을 올렸고, 예측이 거의 그대로 적중하면서 선지자의 후광을 얻었다. 세계경제가 본격적인 불황의 심연에 빠져든 10월에는 한국은행과 미 연준 사이의 통화 스와프 협정 체결까지 적중시키면서 부동의 명성을 쌓았다. ‘다음 아고라 미네르바 글모음’ 카페에서는 미네르바가 그간 아고라에 올린 글들을 책으로 내놓을 정도다.

그는 자신을 ‘평범한 노인’이라고만 소개하며 자신의 신원을 철저히 비밀로 했다. 11월 12일 <매일경제>는 ‘미네르바는 50대의 해외 경험이 있는 증권맨’이라고 보도했지만 입증할 길은 없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외환 시장에 대한 전문지식과 뛰어난 분석력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이 휘청거리는 경제 상황에서 ‘좋은 정보’에 대한 시민들의 갈증을 해소해주었다는 점이다. 불신의 시대에 미네르바는 더욱 높게 날아올랐던 셈이다.

<정원식 기자 bachwsi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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