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킹만수’ 경제정책, 무능인가 고집인가

2008.08.19

성장과 안정 사이 ‘갈팡질팡 5개월’
시대착오적 경제운영에 서민만 고통

지난 7월 8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 기획재정부 강만수 장관-김동수 차관-박병원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제2기 경제팀을 꾸린 뒤 이명박 대통령이 주재한 첫 회의였다. 이 대통령은 이날 “경제팀은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협력해 경제 현안에 적극 대응하라”고 지시했다. 최중경 전 기획재정부 차관을 ‘대타경질’했다는 비난을 감수하면서 재신임한 강 장관에게 다시 힘을 실어준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대통령’임을 다시 확인하는 자리였다. 강 장관은 이 대통령의 후원을 업고 “한은과 금감위에 문제가 있으면 나에게 가져오라”고 말했다. 경제정책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커버스토리]‘킹만수’ 경제정책, 무능인가  고집인가

한은 기준금리인상 과정 소외된 듯
그로부터 한 달 뒤 강 장관에게 ‘충격적 사건’이 발생했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0.25%)을 단행한 것이다. 물가상승을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것이 한은의 논리였다. 특히 금리는 세계화 경제시대에서 가장 강력한 정부 개입 수단이다. 그러나 강 장관이 이런 중대한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외된 듯한 흐름이 감지됐다. 강 장관은 금리 인상 직전 5일 동안 여름 휴가에서 ‘MB노믹스’를 재정리하고 온 직후였다. 휴가 동안 어떤 정책을 구상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금리 인상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데서 여전히 성장 위주의 정책기조를 유지하고 있음을 암시했다. 기획재정부는 한은의 금리 인상에 대해 “기준금리 인상이 생산, 소비, 고용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서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강 장관은 이명박 정부의 ‘킹만수’라고 불린다. 그의 파워는 쉴 새 없이 쏟아내는 경제정책에서도 알 수 있다. 법인세와 종합부동산세 인하, 추경 편성, 공기업 민영화, 세제 개편, 국세청 개혁, 아시아 선도은행 육성 등 헤아릴 수도 없이 많다. ‘경제 사령탑’으로 주도한 정책에는 성장 위주·효율 제고·경쟁 도입이라는 그의 경제 철학이 반영되어 있음은 물론이다. 적어도 유가가 하락하고 환율이 진정되고 있는 상황에서 금리 인상은 강 장관의 이런 정책기조와 배치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강 장관은 그동안 경제성장을 통한 한국 경제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정책을 입안했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자 부진과 저성장 ▲가계 및 정부의 부채 확산 급증 ▲경제구조의 양극화 ▲노동력의 노령화와 청년실업의 증가 등 약화된 한국 경제의 체질개선 방안이었던 것이다.

약화된 경제 체질을 극복하기 위한 정책 메뉴얼이 바로 정부 개입을 통한 성장드라이브 정책이다. 그 대표적 작품이 바로 747정책(7% 성장, 국민소득 4만 달러, 10년 내 세계 7대 경제대국)이다. 7%의 고도성장을 하기 위해서 수출 드라이브 정책을 선택한 것이다. 이를 뒷받침하는 게 바로 고환율정책이다. 강 장관은 취임 후 첫 기자회견에서 “환율에 개입하지 않는 국가가 어디 있느냐”며 ‘환율주권론’을 폈다. 이는 정부 개입→원화 가치 하락→수출 증대→기업투자 증가→고용 확대→국민소득 향상→중산층 확충으로 이어지는 순순환적 경제효과(낙수효과·tricle-down effect)를 기대한 것이다. 정부의 개입으로 원화는 1달러당 1050원까지 떨어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경제교사였던 최용식 21C경제학연구소 소장은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달러는 원화가치의 최저값과 최대값을 대비하면 달러가 16%, 유로화는 35%, 엔화는 무려 42%의 차이가 났다”면서 “정부가 환율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의 기대대로 수출은 괄목할 만큼 성장했다. 지난달 수출은 414억1300만 달러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37.1%가 늘어났다. 하지만 수출량 증가보다 수입량 증가 폭이 훨씬 컸다. 수입은 430억3800만 달러(47.3% 증가)였다. 올해 7월까지 무역수지는 지난 5월만 흑자를 냈을 뿐 나머지 6개월은 적자였다. 외환위기 이후 11년 만에 처음으로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최용식 소장은 “수출 제품의 40% 가까이가 수입 원자재다”라면서 “원자재 가격 상승과 원화가치 하락과 맞물려 수입 규모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이라고 말했다.

또 시장도 강 장관이 기대했던 상황과 정반대로 움직였다. 소비자물가는 5.9%나 상승했다. IMF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다. 고용 인구도 지난 6월에 19만 명이 늘어났다. 한나라당이 ‘실패한 정권’으로 규정했던 노무현 정부 때도 월 평균 30만 명의 고용 수준을 유지한 것과 비교하면 현저한 추락이다. 미래의 소비심리를 반영하는 소비자기대지수도 7년 7개월 만에 최악으로 떨어졌다. 6개월 후의 경기, 생활형편, 소비지출에 대한 소비자들의 기대심리를 나타내는 소비자기대지수는 지난달보다 2.2포인트 떨어진 84.6이었다. 이 지수가 100미만이면 현재보다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다. 경기가 장기침체로 접어들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후들이다. 강 장관도 “당장은 아니지만 스태그플레이션 쪽으로 가고 있다”고 인정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불황 속에서도 물가가 급등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9월 경제위기설이 공공연하게 거론되고 있다.

경실련 회원들이 지난달 8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경실련 회원들이 지난달 8일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의 경질을 요구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왜 이런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 것일까. 결론적으로 경제 처방이 잘못됐다는 게 학계의 지적이다. 장상환 경상대 교수(경제학과)는 “한국이 본격적으로 세계화 경제에 편입된 2001년부터 장기침체가 시작됐다”면서 “저성장의 원인은 경제구조의 이중성과 사회의 양극화에서 비롯된 내수 부진”이라고 말했다. 사실 한국 경제는 이중적 구조의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 수출과 내수의 불균형,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연계성 희박, 자영업의 비대현상 등 ‘병적 문제’가 한둘이 아니다. 문제는 정부의 성장 위주 정책이 이런 ‘한국병’을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이어 “지금은 스태그플레이션의 상황”이라고 단정하면서 “이런 상황에서 성장론을 펴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안정화 정책을 써야 한다는 얘기다.

사실 강 장관은 외환위기를 자초했던 김영삼 정권 때 강경식 전 경제부총리, 이석채 전 정보통신부 장관 등과 함께 성장 드라이브 정책을 주도한 인물이다. 김영삼 정부 말기에 추진한 ‘신경제 5개년 계획’ 등으로 화폐발생증가율은 45%, 재정팽창률은 43%나 됐다. 그것은 고정환율제를 고집한 결과였다. 당시 환율은 1달러당 800원 정도였다. 이를 지키기 위해 화폐를 발행하고 재정을 투입한 것이다. 무역수지 적자는 237억 달러로 늘어났다. 사실상 외환 유출을 막는 일은 불가항력이었던 것이다. 최용식 소장은 “외환위기가 오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라고 회고하면서 “외환위기 당시 재경원 차관을 지낸 강 장관이 왜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말했다.

사실상 내수 중심의 안정화 정책을 추구해야 한다는 조언인 셈이다. 안정화 정책은 곧 정부의 역할을 최소화하고 시장의 기능을 존중하라는 의미다. 그 의미 속에는 수출이 아닌 내수 즉 고용 중심의 정책으로 전환을 촉구하는 것이다.

안정화 정책은 물가불안을 해소하는 반면에 경기둔화를 감당해야 하는 부담이 있다. 이명박 정부의 지상 과제인 7% 성장을 포기해야 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김상조 한성대 교수(무역학과)는 “지금 상황은 중소기업과 자영업 위기”라면서 “성장위주정책을 고수하면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는 한계로 내몰리고 경제가 위기로 내몰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외 원자재 가격 급등과 물가 상승으로 중소기업의 대출 연체가 늘어나고 있다. 중소기업에 가해지는 금융압박은 결국 금융 위기로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안정화 정책의 효과는 여러 국가에서 입증된 상태다. 1990년대 미국 호황의 기초는 바로 정책 대전환이었다.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었던 앨런 그린스펀이 ‘경제의 독약’이라는 저금리정책을 통해 물가안정을 유지한 게 토대가 됐다. 최용식 소장은 “물가는 정부 통제로 성공한 일이 한 번도 없다”면서 “독일의 에르하르트 재무장관, 체코슬로바키아의 클라우스 경제부 장관, 폴란드의 발세로비치 재무장관 등이 물가 통제를 풀어 경제를 회생시킨 대표적인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수출 늘었으나 수입은 더 크게 증가
하지만 적극적으로 시장에 개입해야 한다는 게 지금까지 강 장관의 스탠스(입장)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개입한 정책들로는 공무원의 자동차 요율제, 51개 생필품의 가격 관리, 메가뱅크를 통한 금융선진화, 저금리와 고환율을 통한 경기부양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강 장관의 무지 아니면 고집으로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다.

한나라당 소속의 한 의원은 ‘강만수 경제정책’을 “국가 자본주의 방식”이라고 혹평하면서 “자유주의에 대한 이해도 없고 이명박식 경제 모델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연 세계화시대에 성장률 목표를 정하는 게 맞느냐. 정부가 시장을 관리·지배할 수 있던 국민경제시대의 사고”라고 말하면서 “7%의 성장을 이루려면 적어도 10% 이상 성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본시장의 개방으로 우리 대기업의 수익 절반 정도를 뉴욕 맨해튼에 있는 주주들이 가져가는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는 얘기다.

문제는 이런 학계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강만수 경제팀은 일관되게 성장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강만수 경제정책’의 상징인 고환율정책, 저금리정책이 수단이라면 각종 법 제도 개선은 성장을 위한 환경과 기반 조성이라고 할 수 있다. 세법 개정의 핵심은 바로 감세정책, 수도권 규제완화정책이다. 김상조 교수는 “강만수팀은 선거공약인 ‘747’ 정책을 달성하기 위해 공정거래거법, 지주회사법, 경영권 방어장치, 출자총액제, 기업가와 노동자의 양벌정책 등에 대해 한 번도 후퇴한 일이 없다”고 말했다. 장상환 교수도 “경기 장기침체 국면에 들어간 상황에서 단순히 기업 투자를 제고하기 위해 감세정책을 쓰면 결국 빈부 격차를 더욱 심화시켜 경제 악순환을 낳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법인세 감세정책에 대해서도 “경기 진작 효과가 미미할 것”이라면서 “결국 고소득층을 위한 정책이 아니냐는 정치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지적했다.

학계 인사 수백 명이 강만수 장관의 퇴진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전문가들은 과연 그의 1970~80년대식 시대착오적인 경제정책으로, 1987년 IMF 외환위기를 불러온 능력으로 지금의 경제난국, 9월 위기설을 넘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의 이런 행태는 시대착오적인 경제 운영에 대한 고집은 물론 외환위기를 불러올 정도의 무능함에도 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를 지탱하는 강력한 배경은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이다. 이 대통령의 신임 배경에는 두 사람 다 저돌적인 스타일로 비슷하다는 점과 소망교회 등의 개인적 인연이 자리 잡고 있다. 국가의 경제수장의 무능과 고집 사이에서 서민은 신음하고 있다.

<김경은 기자 jj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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