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리더

황새와 자전거 ‘윤호섭의 푸른 생각’

2008.04.29

[환경리더]황새와 자전거 ‘윤호섭의 푸른 생각’

4월 13일, 올해 인사동 첫 티셔츠 퍼포먼스에서 가장 먼저 황새를 그린다. 천연연료로 크고 강력한 검은 부리와 붉은 눈을 그려 아이들에게 전하며 황새에 대해 이야기해주고 싶다. “가난을 벗어나려고 애쓰다 황새가 없어지는 줄 몰랐단다” “황새를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단다” “황새같이 당당하게 커가기 바란다”고….

우리 아이들이 품위 있게 자라기를 기원하면서 황새복원사업이 순조롭기를 바란다. 올해도 수백 마리의 황새를 옷에 그리게 될 것 같다. -‘윤호섭의 푸른 생각-산업화에 의해 사라진 황새의 매력’(경향신문 2008. 4. 14일자) 중에서

자전거 이동공간도로 그래픽을 디자인하고 있다. 가급적 골목길이나 인도를 이용하고 있으나 부득의하게 차도로 내려서는 경우 절실했던 표지다. 인도와 차도 사이의 경계점선에 자전거 그림을 추가하고 그 폭 안으로 이동시 모든 차량으로부터 보호받는 안전공간이다. 주행 자전거가 없을 때는 차량이 이용한다.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버스 매연을 마셔가며 만든 결과다. 공간만 있으면 자전거도로는 언제든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없는 공간’ 자체는 억만금으로도 만들 수 없다. 도로도 나눔의 정신으로 다시 디자인되어야 한다. -‘윤호섭의 푸른 생각-자전거도로 그래픽’(경향신문 2008.3.10일자) 중에서

[환경리더]황새와 자전거 ‘윤호섭의 푸른 생각’

윤호섭(65) 교수는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인사동으로 간다. 거리 한 귀퉁이에 물감과 화구들을 펼쳐놓고 티셔츠 위에 그림을 그려 사람들에게 나눠준다. 가져온 헌 티셔츠나 입고 있는 티셔츠 위에 직접 그림을 그려 넣어 주기도 한다. 심지어 마스크나 신발 등에도 그림을 그려준다. 희귀동물이나 나뭇잎, 별과 달 등이 그림의 주요 소재다. 사람들은 마냥 즐거워하지만, 그 그림에 담긴 뜻을 알고는 일순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의 인사동 퍼포먼스는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공공장소에서 대중과 교감할 수 있는 퍼포먼스 형식의 전시방법으로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그려 나눠 줌으로써 친환경 메시지를 전달하고 환경문제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자 했던 것이다.

그는 요즘 들어 부쩍 황새를 많이 그리고 있다. 몇 년 전 학생들을 데리고 한국교원대학교 황새복원연구센터를 견학한 후부터다. 검고 큰 부리와 붉은 눈의 황새는 우선 시각적 특징이 강렬했고, 그 또렷한 눈매와 확고한 걸음걸이가 보는 이를 위축시킬 만큼 매력적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피난 시절 여주에서 보았던 황새의 당당한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기만 하다. 그 많던 황새가 거의 사라져버린 지금, 그 안타까움과 미안함이 윤 교수로 하여금 황새들을 티셔츠 위로나마 불러내게 한 것이다. 그는 아이들에게 황새를 그려주며 눈높이를 맞추고 황새에 관한 이야기를 잔잔히 들려준다.

윤호섭 교수는 194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11남매의 막내였고, 초등학교 때 한국전쟁을 겪은 것 외에는 어려운 가운데에서도 무난하게(?) 자라났다. 만화가나 건축가가 꿈이었던 그는 그래도 돈을 벌 수 있는 전공이라 해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나온 후 합동통신사 광고기획실(현 오리콤)에서 아트디렉터를 시작으로 광고디자이너의 길을 걸었다. 1982년부터 국민대학교 조형대학 시각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88서울올림픽의 디자인 전문위원으로 활동했다. 이렇듯 잘 나가는 광고디자이너였던 그가 얼핏 광고와는 상치되는 듯한 환경문제에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만들어준 것은 1991년 우리나라 설악산에서 열린 제17회 세계잼버리대회였다.

당시 대회의 엠블럼 및 공식 포스터를 제작했던 윤 교수는 대회 기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온 청소년들에게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고 사인을 해주는 행사를 마련했다. 윤 교수는 그 행사장에서 일본 유년대의 리더 미야시다 마사요시를 만났다. 일본 호세이대학교 사회학과 2학년이던 그는 자기 전공보다 디자인에 관심이 더 많은 학생이었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찾아냈어요?” 그렇게 해서 시작된 교류는 윤 교수가 외국에 다녀오다 일본에 들러 그를 만나고 가족들도 서로 왕래하는 사이로까지 발전했다. “한국에는 환경 관련 자원봉사자들이 몇 명이나 있나요?” 유독 환경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마사요시는 한국의 환경운동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고, 처음엔 ‘잘 모르겠다’며 무심코 넘기던 그도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환경에 대해 얼마나 무지한지 충격적으로 깨달았다.

그때부터 윤 교수의 생각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윤 교수는 능력과 재능을 효과 있고 가치 있게 사용할 삶의 지표를 그에게서 얻었다. 예쁘고 세련된 이미지를 추구하던 디자인에서 불필요한 요소를 배제하고 되도록 디자인을 덜 하는 친환경적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1995년 대학의 학장을 맡으면서 격년제로 개최하는 디자인 전시회의 주제를 ‘Green 2000’으로 정하고 건축·제품·시각·공예·의상, 5개 전공, 800여 명의 학생이 디자인한 환경 작품 수천 점을 전시하여 환경디자인의 진정한 가치를 부각시켰다. 1997년에는 계열교양 필수과목으로 그린디자인을 개설하여 조형대학 1학년 학생이 전원 수강케 하여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깨닫게 하였다. 2003년에는 국민대학교의 다른 교수들과 함께 ‘그린 캠퍼스(Green Campus)’ 운동도 펼쳤다. 그 모든 것이 소비 지향의 디자인에 대한 자성에서 비롯했다.

2000년 여름방학 직전, 같은 대학에 근무하던 경제학 전공 김재준 교수가 친구 회사의 디자인 일로 윤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가 돌연 개인전을 제안했다. 내심 그동안 만들어왔던 환경 메시지로 전시회를 한 번 해보려던 참이었던지라 김 교수의 제의가 생소한 것은 아니었지만, 화랑에서 그래픽 디자이너의 작품에 관심을 갖는 경우가 흔치 않는 일이어서 한편으로는 의아하기도 했다. 김 교수는 ‘디자이너가 그린 환경 이미지가 재미 있을 것 같다’며, 청와대 근처에 있는 자택의 반지하 공간을 개조해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는 전시 공간을 운영하려는 계획을 들려주었다. 윤 교수는 김 교수의 생각에 매료되어 선뜻 응낙했고, 그렇게 해서 그의 첫 전시회 ‘Everyday Earthday!’가 열렸다.

국민대학교 디자인대학원에 2003년부터 개설된 그린디자인 전공 과정(greencanvas.com)은 인류 최대의 현안인 환경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환경의식을 고양하고 환경디자인 기술을 습득시켜 친환경디자인으로 지구 환경 생태계를 지킬 수 있는 디자이너를 양성하는 과정이다. 윤 교수는 그린디자인 과정에서 무엇보다 에코 커뮤니케이션을 중시한다. 학생들에겐 ‘나무를 심은 사람’ ‘마지막 거인’ ‘월든’ 등 환경 관련 필독서 50권을 선정해 읽게 하고, 심지어 짧은 것은 손으로 직접 베껴오게까지 한다. 기말시험에는 매번 ‘디자이너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서 논하라’는 똑같은 문제를 출제한다. 학생들은 필독서에서 환경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읽고, 그는 학생들의 생각을 읽는다.

2007년 3월 5일, 윤 교수는 시각디자인과 3학년 광고디자인 첫 시간에 들어가 학생들에게 긴급 사태를 전하고 초특급 사업으로 ‘지구 온난화 계몽 포스터’를 지급으로 만들어서 빠른 시간 내에 전시회를 열자고 말했다. 오후 2시부터 지구 온난화에 대한 급박한 상황을 알리고 그날 저녁 9시까지 섬네일 스케치를 제출토록 하였다. 키워드는 ‘Stop! Global Warming’ ‘앗, 뜨거워!’ ‘더는 안돼!’로 정하고 연상되는 이미지를 찾아내도록 강렬하게 요구했다. 그는 마감시간에 들어온 섬네일 스케치를 보고 깜짝 놀랐다. 개학 첫날, 그것도 불과 몇 시간 만에 놀라운 아이디어들로 가득 채워진 32절 이면지를 보고 학생들의 생각에 희망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물을 6월 29일부터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지구 온난화 포스터전’으로 전시했다. 윤 교수는 환경 위기를 알리는 데 포스터를 가장 빠르고 강력한 수단으로 생각하고 있다.

윤 교수의 환경에 대한 생각을 잘 보여주는 작품으로 ‘재생 달력’이 있다. 그의 ‘재생 달력’은 여러 종류의 친환경 종이 및 비인기 재고 종이를 사용하다 보니 페이지마다 지질이 다르다. 이면 공백 없이 앞뒤로 달을 채워 넣었고, 일요일은 공란으로 해 단색 인쇄를 유도했다. 이 공란은 최종 사용자가 자신의 취향으로 숫자를 기입해 스스로 디자인 마무리의 당사자가 되도록 했다. 이는 누구나 디자인의 직접 당사자가 되면서 디자인이 환경에 미치는 문제에 직접적 입장이 되도록 의도한 것이다. 인쇄는 식물성 기름을 사용했고, 절수를 고려한 종이는 인쇄 후 재단 과정을 생략해 쓰레기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했다.

[환경리더]황새와 자전거 ‘윤호섭의 푸른 생각’

윤 교수는 짐이 없고 날씨가 좋은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한다. 그는 2000년 1월 1일, 새천년을 맞으며 환경 의지의 적극적 실천으로 ‘에너지 독립선언’을 했다. 처음엔 수유리 집에서 정릉 학교까지 전기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전기자전거의 배터리가 다하자 이번에는 아예 발로 젓는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대학을 퇴직한 이후에도 대학원이 있는 동숭동까지 곧잘 자전거를 이용해 출퇴근한다. 최대의 고비는 미아리고개. 고갯길을 돌아 높낮이를 최소화할 수 있는 길을 개척해나갔다. 자전거는 ‘99.999%’ 친환경 이동수단이다. 안전과 건강(호흡)에만 문제가 없다면 그것은 ‘행복으로 가는 놀이’다.

윤 교수는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자전거도로용 픽토그램을 개발하고, 일본 도심의 자전거도로를 설계한 디자이너 마사히로 호리우치를 초대해 특강을 개최하는 등 ‘자전거 전도사’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석유 문명의 위험성에서 인류를 구출할 수 있는 길은 건강한 인간의 에너지로 돌아가는 길밖에는 없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는 요즘 자칭 ‘자전거천사’ 4명을 시작으로 ‘자전거구조대’를 운영해볼 생각이다. 자전거에 대한 관심은 날로 늘어나는 데 반해 그에 따른 후속 조치는 턱없이 부족한 까닭이다. ‘자전거구조대’는 도심을 헤치고 다니며 간단한 수리와 사고에 대한 응급조치 등을 행한다. 조금 과장하자면 ‘자전거구조대’를 그야말로 ‘지구구조대’라고 불러도 좋을 듯하다.

여기 한 사람이 있다. 그는 황새처럼 한 발을 들어 성찰하고, 자전거처럼 바람을 가로질러 실천으로 나아간다. 그는 인류에 ‘시간과 온도’는 피할 수 없는 문제라고 경고한다. 시간이야 어쩔 수 없지만 지구 온난화로 인한 파멸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그것에 가능성이 있다고도, 그렇다고 절망적이라고도 말하지 않는다. 개발의 유혹이 사람들의 마음을 빼앗고, 욕심은 배로 늘려놓고 그 중 20%쯤 줄였다고 절약이라고 말하는 허위의식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그래도 아직은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한다. 지금의 환경이야말로 오롯이 다음 세대의 것이고, 다음 세대를 포기하는 순간 지금 우리가 여기 있어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면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해야 할 생태윤리적 삶의 역할과 책임은 분명합니다. 암담한 미래에 좌절되기보다는 모든 사람이 내가 할 일을 찾고 솔선수범하며 아이들을 녹색전사로 키우는 노력이 항상 제가 생각하는 의견입니다. 어떤 신묘한 답을 기대하기보다는 항상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이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린캠퍼스 후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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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eryday Earthday!’ 서울전 포스터

2000년 서울에서 열었던 첫 전시회 ‘Everyday Earthday!’ 포스터다. 공해를 유발하는 인쇄 공정을 피하고 주제 정신을 극대화하기 위하여 수백의 포스터를 신문지 위에 직접 그렸다. 유명 신문들이 발행 부수를 과장하기 위하여 수만 부의 신문을 인쇄해서 곧바로 파기하는 야만적 행태를 지적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주말에는 포스터를 원하는 관람객들에게 직접 그려주기도 했다.

[환경리더]황새와 자전거 ‘윤호섭의 푸른 생각’

‘개도맹’심벌

서울 도심에서 기적적으로 살아가고 있는 개구리, 도롱뇽, 맹꽁이의 서식지 보호 캠페인을 위해서 만든 ‘개도맹’ 운동의 심벌이다. 생태적 조건이 열악한 서울에서 생태 균형 유지와 회복을 위한 상징적인 사업으로 ‘개도맹’ 캠페인이 갖고 있는 의의는 자못 크다.

<글·사진 유성문 편집위원 rotack@lyco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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