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거대해진 동장군과 온장군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2024.01.15

지난해 12월 22일 부산 다대포 바다 /정봉석 제공

지난해 12월 22일 부산 다대포 바다 /정봉석 제공

지난해 12월 부산에 비가 많이 내렸다. 마치 여름 장마 같은 굵은 장대비가 며칠 동안 내렸다. 날씨도 온화했다. 봄처럼 따뜻한 바람이 날리면서 기온이 영상 20도를 넘었다. 비가 그친 후 나간 산책길에서 영산홍과 철쭉이 철도 모르고 피어, 지나가는 이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광주와 전남 곳곳과 충북 청주 등은 역대 12월 기온 중 가장 높은 기온을 기록했다. 11월 말부터 몰아친 추위로 입기 시작한 긴 겨울옷은 사라지고, 반소매 입은 사람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봄이 아닌 봄날을 즐기면서 모두 어리둥절한 듯했다.

하지만 겨울비가 물러가면서 기온이 급변했다. 지난해 12월 22일 부산 최저 기온이 -7도 아래로 내려가고 체감기온은 -12도를 넘어섰다. 서울은 -15도, 춘천은 -18도 등으로 전국 대부분 지역이 매서운 한파를 경험했다. 필자가 있는 다대포의 해변 주변은 얼어붙어 겨울왕국으로 변했다. 겨울에도 온화했던 부산 기후를 기억하는 나로서는 고향의 변신이 낯설었다.

한반도의 극한 날씨 변화

지난해 12월 초 한국 기온은 영상 20도까지 치솟으며 가장 더운 12월 기록을 경신했다가 같은 12월에 영하 20도로 급락했다. 한국에서 짧은 기간에 기온이 40도씩 널뛰는 건 전례를 찾기 어렵다. 왜 이렇게 기온이 극변할까.

전통적으로 한반도의 겨울 기온은 시베리아 고기압 덩어리가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변화에 따라 ‘삼한사온’ 현상이 발생한다. 비교적 추운 3일과 따뜻한 4일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며, 북쪽의 동장군과 남쪽의 온장군이 서로 싸우는 형태다. 문제는 이 두 장군의 세력이 강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남쪽은 더 더워지고, 겨울철 시베리아는 더 차갑게 식고 있다. 그리고 두 세력이 부딪히는 최전선에 한반도가 있는데, 양측 힘의 균형이 깨질 때마다 기록적인 고온과 저온이 나타난다.

먼저 온장군의 세력 확장은 예상된 바다. 온난화로 이미 뜨거워진 지구 온도에, 2023년부터 발생하고 있는 ‘엘니뇨’ 현상까지 겹치면서 지구 곳곳에 폭염과 홍수, 가뭄의 발생이 예고됐다. 엘니뇨의 따뜻한 해수가 멀리 퍼지면서 공기가 고온다습해지고 더 많은 열이 대기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지난해 초 세계기상기구(WMO)는 “인간이 유발한 기후변화와 결합한 엘니뇨가 지구 온도를 미지의 영역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지난해 12월 초 한국에서 여름 장맛비 같은 굵은 장대비와 영상 20도가 넘어 꽃들이 개화하는 기현상을 보인 것도 온난화와 겹친 엘니뇨 때문이다.

동장군의 세력 확장은 조금 엉뚱하다. 언뜻 지구온난화와는 모순돼 보인다. 북위 30~35도 상공에는 제트기류라는 강한 바람이 있어 북극 찬 얼음 바람의 남하를 막는다. 팽이가 회전하는 것처럼 북극 성층권의 극소용돌이가 북극의 차가운 바람을 소용돌이 안으로 가둔다. 그러나 지구온난화로 북극 성층권 소용돌이가 약해지고 있다. 극소용돌이가 약해지면서 주변을 돌고 있는 제트기류가 물결 모양처럼 구불구불해져 남쪽으로 퍼진다. 마치 북극이 온난화될수록 팽이의 회전력이 힘을 잃고, 팽이의 회전 궤적이 이리저리 움직이고 흔들리면서 주변에 부딪히는 형상이다.

흔들리는 팽이가 이번에는 한반도 쪽으로 흔들리며 북극의 한기가 내려왔다. 특히 지난해 12월 21일과 22일 한파는 북극의 얼음 바람이 한반도로 곧장 내려온 경우이다. 늘어진 제트기류가 원인이었던 또 다른 대표적인 사고로 2021년 2월 미국 텍사스에 몰아친 기록적인 겨울 폭풍이 있다. 평소 따뜻한 겨울에 적응하며 살아온 텍사스 사람들에게 갑자기 불어닥친 겨울 폭풍으로 대규모의 정전사태와 246명이 사망했던 재앙이다.

이렇듯 최근의 기후위기는 더 극대화되고 일상화되고 있다. 지난해 8월 하와이에서 발생한 산불로 97명이 사망해 1918년 이후 미국에서 가장 큰 인명 피해가 난 산불로 기록됐다. 지난해 9월 리비아에서는 최악의 홍수가 발생해 약 4000명이 사망했고, 1만명 이상이 실종됐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2022년에 이어 지난해 여름 장마 기간에도 극한 호우로 하천 제방이 붕괴해 인근 지하차도가 침수되고, 대규모 산사태가 발생하는 등 소중한 인명을 앗아가는 안타까운 일이 연이어 발생했다.

더 극한으로 치닫고 있는 기후위기의 원인은 지구온난화다. 최근 지구온난화와 관련한 관측과 보고서는 더 암울하다. 유럽연합의 기후변화 감시 기구인 코페르니쿠스 기후변화연구소(C3S)는 지난해 11월 17일과 18일 지구의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보다 2도 이상 올랐다고 발표했다. 이틀간의 일시적 현상이었지만, 기후변화에 따른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인류가 마지노선으로 잡았던 2도의 벽이 깨진 건 처음이다.

유엔환경계획(UNEP)도 세계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나면서 온난화가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임계점을 넘어서고 있다고 2023년 배출량 격차 보고서에서 발표했다. 보고서에는 현재 각국이 제시한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모두 이행한다고 해도 세기말까지 지구의 온도가 2.9도나 오를 가능성이 66%나 된다는 추산이 담겼다. 기온 상승폭을 1.5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2015년 파리기후협정의 핵심 목표와는 거리가 먼 결과다.

COP28, ‘화석연료’ 사용 공동행동 선언

이 암울한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전 세계 198개 나라와 기후·환경단체 대표 등 7만여명이 이런 고민을 안고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서 열리는 ‘제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8) 현장에 모였다. 당사국총회는 각국 정상을 포함한 대표단이 모여 기후변화 대응책을 협상하는, 유엔기후변화협약의 최고의사결정기구다. 지난해 11월 30일부터 12월 13일까지 두 주에 걸쳐 28번째 당사국총회가 개최됐다.

COP28에서는 회원국들이 석유와 천연가스, 석탄 의존에서 벗어나기 위해 함께 움직이기로 합의했다. 국제사회가 명확한 문서로 ‘화석연료’ 사용에 대해 공동행동을 선언한 건 1995년 독일 베를린 기후변화협약 첫 총회 이후 28년 만이다. 그러나 100개국 이상이 합의문에 담기를 요구한 ‘화석연료의 단계적 퇴출(Phase-out)’은 산유국 반대로 끝내 반영되지 못하고, ‘10년 안에 화석연료에서 멀어지는 전환(Transitioning Away)을 시작한다’는 표현에 머물렀다.

지구는 더 빨리 뜨거워지고, 기후위기는 더 극대화되고 있다. 이를 풀기 위한 인류의 발걸음은 아직 매우 더디다.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이상과 화석연료를 계속 이용하고픈 관성과 현실이 서로 부딪히고 있어서다. 앞으로도 국가 간 이견과 갈등이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렇더라도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려는 방향은 거스를 수 없다. 앞으로 심각해지는 기후위기 상황에서, 탄소 배출과 화석연료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기후변화시대에 경쟁력을 잃고, 더 큰 비용을 치를 수 있다.

늦어질수록 한반도를 둘러싼 동장군과 온장군은 점점 더 거대한 고래가 돼간다. 두 고래 싸움에 낀 새우 같은 우리 삶은 점점 더 힘들어진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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