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말라가는 지하수, 움직이는 자전축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2023.11.27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있는 공원 /정봉석 제공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 있는 공원 /정봉석 제공

중동의 사막국가 아랍에미리트의 수도 아부다비를 처음 여름에 방문했을 때 두 가지에 놀랐다. 첫째, 중동 날씨의 악평을 미리 공부하고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공항 바깥으로 나서자마자 자연의 장벽 앞에 무기력했다. 100%에 가까운 습도와 40도에 가까운 여름 태양은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나약한지 확인시킨다. 둘째, 모래밖에 없는 황토색의 사막국가라고 생각했지만, 공항 주변은 의외로 푸른 나무와 공원이 조화롭게 펼쳐져 있다. 공항에서 도심으로 이어지는 도로 옆에도 나무가 빈틈없이 심겨 있고, 도심 곳곳에 존재하는 녹색 풀밭과 야자수들은 이곳이 사막국가인지를 의심케 한다.

물론 열사의 땅이라 불리는 아라비안반도는 사막지대다. 연 강수량이 100㎜ 미만에-참고로 한국의 연평균 강수량은 약 1300㎜다-뜨거운 태양이 작열하는 아부다비의 대지는 바짝 메말라 모래만 존재하는 곳이다. 물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지상과 달리 지하에는 지하수가 존재한다. 사막의 지하 깊은 대수층에 몇천 년 이전부터 축적된 대량의 지하수가 있다. 이 지하수를 발견하고 지상으로 퍼올려, 사막에 생명을 불어넣었다. 식수나 목축 같은 기초적인 물 사용뿐만 아니라 사막에 다양한 작물을 키우며 농업용수로도 쓴다. 나무도 많이 심고 공원을 만드는 데도 지하수를 이용한다. 물이 풍요로운 도시처럼 운용하며 녹색 정원 도시를 꿈꾼다.

대수층에 저장된 지하수는 지구에 저장된 소중한 담수 자원이다. 지하수는 대수층 내에서 흐르며, 다공성 매질에 의해 자연적으로 걸러지기 때문에 수질은 대체로 깨끗하다. 따라서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식수로 유용하게 이용된다. 흔히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물이나 약수도 지하수에 속한다. 실제로 대수층은 78억 세계인구 중 20억명에게-약 4명 중 한명에게-식수를 공급한다. 지하수 취수량의 70%는 농업에 사용한다.

지상으로 공급되는 지하수는 그러나 오래전부터 축적된 물일 뿐이다. 지하수를 사용하는 양이 과다하면 지하수량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어렵다. 목축, 식수와는 다르게 농업용수로 지하수를 쓸 경우 엄청난 수량이 필요하다. 농업의 특성상 넓은 면적이 필요하고, 지속적으로 증발이 일어나기에 계속적으로 물을 공급해야 한다. 특히 아부다비의 낮은 강수량과 강렬한 태양은 작물을 성장시키는 데 더 많은 물을 필요로 한다.

지하수가 과잉 추출되면서 아부다비의 대수층은 고갈되기 시작했다. 줄어든 대수층의 담수는 주변 페르시아만의 해수가 침투해 지하수의 염도가 높아졌다. 지하 대수층의 담수에 의존하던 농사는 사라진 대수층 또는 높아진 염분농도로 작물 수확이 줄어들거나 농사를 포기하기 시작했다. 도심에 심은 나무와 공원들도 해수 담수화 플랜트에서 생산된 담수나 한번 사용한 물을 재생한 물로 대체했다. 도시의 생존과 경제활동이 화석연료를 기반으로 하는 해수 담수 플랜트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

유엔 대학 재해위험 2023 보고서

유엔 대학 환경·인간안보연구소(UNU-EHS)는 지난 10월 말 이런 내용이 담긴 ‘상호 연결된 재해위험 2023 보고서’를 냈다. 올해 보고서에서는 인류와 생태계가 가까운 미래에 마주할 수 있는, 특히 되돌리기 매우 힘든 극적 전환점(티핑포인트)이 될 재난을 다뤘고, 이중 첫 번째가 지하수였다. 세계 주요 대수층 37개 중 21개에서 퍼가는 물의 양이 다시 차오르는 양보다 많아 빠르게 고갈되고 있다고 경고했다. 대수층의 물이 사라지면서 사람들의 생명과 생계가 위험해진다고 밝혔다.

보고서는 아부다비와 인접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예를 들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세계에서 가장 큰 대수층 중 하나를 가지고 있고, 이를 이용해 작물을 키웠다. 1990년대 중반에는 세계 6위의 밀 수출국이었다. 하지만 지하수를 과잉 추출하면서 대수층의 지하수 80% 이상이 고갈됐다. 2016년 사우디 정부는 밀 수확을 멈췄다. 이제 사우디는 3000만명이 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농작물에 의존해야 한다.

지하수 과다 사용에 따른 재난 경고는 국내에도 존재한다. 제주도는 강수량이 풍부한 섬이지만(연평균 강수량 1457㎜), 투수성이 높은 지질 특성으로 인해 상시 물이 흐르는 하천이나 강이 거의 없다. 이 때문에 도민들은 생활에 필요한 용수 대부분을 지하수에 의존한다. 최근 인구·관광객의 증가와 각종 개발사업, 농업용 관정 확대 등으로 지하수 사용량이 크게 증가했다. 취수량 과다로 인한 지하수 수위 강하로 해안지역 해수 침투가 발생했다.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인한 폭염일수의 증가와 가뭄의 장기화, 강수의 패턴 변화 등도 지하수에만 의존하는 도민들의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2017년에는 가뭄으로 큰 피해가 발생했으며, 일부 지역에서는 해수 침투로 지하수 관정 취수가 중단됐고, 단수를 해야 하는 심각한 상황도 발생했다.

싱크홀과 지구 자전축 변화

고갈되는 지하수는 식수와 식량 위기에만 그치지 않는다. 많은 물을 지하 대수층에서 뽑아 사용하면 지하에 공동이 발생한다. 눈으로 지상에서 보면 단단한 암석 같지만, 지하 공간은 대수층의 물이 빠진 텅 빈 공간이다. 지하수가 감당하던 압력을 땅속 공간이 버터지 못하고 지상의 주택, 각종 사회 인프라가 땅속으로 꺼지는 싱크홀 재난이 발생한다. 뽑아 쓴 지하수의 양이 많을수록 싱크홀의 규모도 커진다. 최근 국내외 발생하는 싱크홀 현상의 원인도 인류가 지하수를 과다 사용하면서 시작된 재난이다.

심지어 인류의 무분별한 지하수 사용이 지구 자전축을 이동시킨다는 연구가 최근 지구물리학연구학술지(Geophysical Research Letter)에 실렸다. 연구 논문 저자인 서울대학교 지구과학교육과 서기원 교수연구팀은 1993∼2010년에 인류가 사용한 지하수의 양이 약 2조1500t이고, 이로 인해 해수면이 약 6㎜ 상승하고, 지구 자전축이 약 80㎝ 이동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지구에 존재하는 물 전체의 양은 변하지 않는데, 지하수를 사용하는 만큼 육지의 물이 사라지고 바닷물이 늘어났다. 이에 따라 지구의 물질량 분포가 바뀌고, 지구 자전축이 이동했다는 분석이다.

또한 자전축의 변화로 인한 기후변화 우려도 제기됐다. 자전축이 변화하면 지역별 태양에 노출되는 정도가 달라진다. 지역 강수량이 바뀌고, 기존의 기후 환경 시스템에 영향을 줘 생태계를 위협할 수 있다. 자전축 변화는 위성항법장치에도 영향을 줘 항공기, 미사일, 지도 등에 오류가 발생할 수 있다.

기후변화로 갈수록 날씨가 불규칙하게 변하는데 지하수까지 고갈되면 인류는 식량위기를 맞을 수 있다. 사라진 지하수로 강과 호수가 같이 마르면서 함께 살아가는 동식물의 생태계에도 위험이 번진다. 또한 지하수 고갈로 도심 속 구멍이 발생해 싱크홀 속으로 사람과 인프라가 갑자기 사라진다. 지하수 고갈에 따른 자전축 변화는 지구온난화와 더불어 기후변화를 더욱 가중시킨다. 이미 복잡하게 얽혀 있는 기후변화 문제에 지하수 고갈이라는 또 다른 숙제가 얹혔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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