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전환의 시대
디지털이 세상을 바꾸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일상에서 경험한다. 디지털에 의한 세상의 변화는 단지 도구나 방법이 바뀌는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디지털 기술을 도입하는 조직, 기업, 정부 등 활용 주체의 구성과 성격, 적용하려는 구체적인 대상의 정의와 구조, 다른 대상과 이루어지는 관계의 변화와도 관계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서 교육 분야를 보자면, 바로 얼마 전의 나이스(NEIS·교육행정정보 시스템)의 오류 사례가 있다. 과거의 종이 기록으로 관리하던 교육환경은 이제 더는 상상할 수 없다. 시스템의 오류는 교육 구조 전체의 실패로 연결될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문제로 인식된다. 종이에 쓰이던 개개인의 교육 관련 기록을 단지 컴퓨터 파일로 바꿔 저장하는 수준이 아니다. 교육 정보는 구조화된 데이터 집합으로 관리되며, 한 사람의 평생에 관계하며 영향을 준다. 의료 분야도 디지털 기반으로 바뀐 지 오래다. 병원에 진료를 접수하는 순간 건강보험 시스템을 통해 환자에 대한 보험 지원 여부, 질병 치료 및 건강검진 이력 등의 통합 데이터로 개인의 건강 관련 정보를 관리한다. 당연히 환자를 치료하는 과정도 전산 시스템에 저장되고, 치료에 적용되는 첨단 의료 장비도 디지털에 의해 제어되며, 환자의 병력을 추적, 조회한다거나 투약, 처치 등 치료의 전 과정이 데이터베이스에 의해 관리된다. 데이터 운영 시스템이 모든 사람의 건강과 생명에 직접적으로 연결돼 있다고도 말할 수 있다. 증권, 주식을 사고파는 자산 거래 시장도 사실상 거대한 디지털 플랫폼이다. 증권 거래를 위한 계좌관리나 등록된 자산 정보의 관리 등은 트레이딩 전용 프로그램의 기능으로 제공된다. 은행 등 금융 시스템과도 오차 없이 연결돼 있다. 플랫폼을 이루고 있는 프로그램의 작은 오류 하나가 기업을 파산하게 하거나 투자자에게 큰 실패나 성공을 안길 수 있다. 심지어 그러한 투자를 가이드하는 정보의 제공 방법도 대부분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방송 플랫폼에 의존한다. 실제에서 지폐 뭉치나 금괴가 오가지 않아도 충분히 보장되는 자산의 가치 유지와 안전성을 디지털 기술이 담보하고 있는 셈이다. 디지털이 우리 사회의 기반 구조이자 운영체제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은 이 밖에도 제조, 유통, 문화예술, 공공 서비스 등 더 많은 사례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더욱 다양하고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게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이 기술에 익숙해지게 되면서 디지털 시스템의 영향력이 가지는 절대성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단 한 분야, 우리나라 정치는 디지털과는 아주 먼 거리에 있는 듯하다. 디지털 플랫폼 정부, 전자정부 등의 표현은 꽤 익숙하게 접한 것 같은 기억이 나지만, 실제 우리의 정치 현상을 잘 살펴보면 뭔가 디지털이 제공하는 특징과는 다른 인상을 준다.
■디지털 기술의 특징
디지털 기술은 다음과 같은 특징을 가진다. 이 특징을 이해함으로써 디지털 전환이 가지는 의미와 구체적인 대안 모색의 방법을 도출해볼 수 있다. 디지털 기술은 명료성과 계량성을 가진다. 명료성은 참과 거짓, 진행과 중단, 유효와 무효가 명확하게 구분된다. 조건에 따라 결과가 달라질 수는 있지만, 그 역시도 명료한 값이며 중간은 없다. 명료성과 같은 맥락에서 디지털 기술 적용의 결과는 모두 숫자로 표현이 가능하다. 이러한 계량화는 논리적인 표현인 수식에 의해 모든 것을 기술할 수 있는 디지털 기술의 범용성을 제공한다. 명료성과 계량성에 의해 디지털 기술은 예측이 가능한 논리 구조를 만들어낸다. 이를 확장해 확률적인 가능성이 높은 통계적 산출 결과에 도달할 수 있게 한다. 즉 예측이 가능한 모델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한국 정치가 예측 불가의 난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를 상기한다면 정치 분야에 디지털 기술을 적용하고자 하는 시도는 더욱 각별한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디지털 기술은 합리성과 체계성을 바탕으로 한다. 듀이의 십진분류 체계에서 프로그래밍, 디지털 분야는 자연과학(500)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지식, 학문의 일반 분류인 총류(000)에 속한다. 이것이 시사하는 바는 디지털이 모든 분야를 포괄할 수 있는 체계에 대한 이론, 또는 지식이라는 점이다. 디지털 기술은 그 자체로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그것이 적용되는 다른 대상에 체계를 부여하는 특징을 가진다. 그리고 체계를 수립하는 과정에서의 원칙은 합리성을 확인하는 반복 과정이다. 소요되는 자원이 적절하게 공급되는지, 입력과 출력이 인과성을 갖추고 있는지, 비생산적이거나 불필요한 요소가 포함되지는 않는지 등에 대한 관리가 이루어진다. 합리성을 갖춘 체계는 결과적으로 효율성을 높이게 된다. 디지털 전환이 이루어지는 여러 사례는 대부분 효율성 제고를 기본 목적으로 한다. 마찬가지로 정치 분야에서도 디지털 전환을 꾀하려면 일정한 수준 이상의 효율성을 달성하고자 하는 목적을 견지해야 한다.
디지털은 전파성, 재현성을 제공한다. 디지털은 특정 요소의 무한 복제가 가능하다. 한가지 시스템 환경에서의 데이터나 파일이 다른 환경이라도 일정한 조건으로라면 동시에 존재·실행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이것은 빠르게 전파될 수 있으며, 원본과 사본의 구분 없이 동일한 정보를 재현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빠른 전파와 정확한 재현은 어떤 논리적 표현에 의한 정보나 결괏값의 집합인 데이터가 투명하다는 점을 보증하며 전체 과정과 결과를 신뢰하게 해준다. 이처럼 디지털의 전파성과 재현성은 투명성과 신뢰성이라는 가치를 부여하는 중요한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치의 으뜸 덕목을 투명성과 신뢰성이라고 할 때, 이는 디지털을 통해 보완·강화될 수 있다.
정치의 디지털 전환은 필연적이다. 지금부터 이를 전제로 현실의 정치를 디지털적인 관점으로 바라보고자 한다. 오늘날 한국의 정치는 명료하지 않다. 정책의 일관성도 부족하고 목적이 다른 의도에 의해 변질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과도하게 주관적이기도 하다. 체계 중심이라기보다는 권력자의 심기 중심이다. 당연히 합리적이지 않으며 효율성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단히 후진적이고 위험한 수준이다. 또 오늘날 한국 정치는 권위의 장막 속에 은폐돼 있다. 정치적 의사결정이나 인사제도의 운영은 투명하지 못하며, 대중의 신뢰를 얻고자 노력하지도 않는다. 정치가는 여론을 왜곡, 조작, 호도하는 기술에 익숙하다. 공공적 가치, 공동의 협력은 기대하기 어려운 풍토다.
■정치에 대한 냉소와 신뢰 회복을 위한 원칙
사실 정치가 우리 일상에 큰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럼에도 현실 정치에 무관심하고 정치인을 불신하는 사람이 꽤 많다는 점은 매우 모순적으로 들린다. 우리나라 유권자 중 꽤 많은 수가 정치를 믿지 못하거나 심지어 정치에 대해 혐오하는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오랜 세월 동안 다양한 파행을 지켜보면서 쌓인 정치에 대한 실망의 결과라고 말할 수 있다. 도대체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는 무엇에서부터 만들어지는 것일까.
우선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 유권자들이 정치에 기대하는 바는 다음과 같은 상식으로 정리해볼 수 있을 듯하다. 누구나 직접 정치를 한다는 것은 이상에 가까운 조건을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어떠한 종류의 대리인을 필요로 하고, 이것이 현대의 대의민주주의, 또는 의회주의의 기초 논리다. 정치에서의 대리인은 특정한 어떤 판단이나 행동을 대신하는 것의 의미를 넘어 대중이 가지는 권위와 정당성을 위임받아 대표자라는 종합적인 자격을 가지고 대리행위에 임한다. 유권자가 이러한 위임에 동의하는 이유는 그의 리더십을 믿기 때문이다.
정치인의 리더십은 투명성, 청렴성, 헌신성, 감수성, 실무에서의 유능함과 다수에 대한 관리 능력 등으로 표현할 수 있다. 이러한 덕목은 비단 현재만의 특별한 희망이 아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다양한 시행착오를 경험해온 것도 사실이다. 수많은 희생과 노력이 있었고, 민주주의는 그 중심이념으로서 작동해왔다. 법을 중심으로 하는 제도와 국가 조직이 그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일종의 플랫폼으로서 법치주의 국가, 정당 조직, 시민 자치기구 등을 의미한다. 문제는 그것이 충분히 완성된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점이다. 지속적으로 개선과 혁신을 이뤄야 변화하는 역사적 흐름에 조응할 수 있고, 시민의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다. 현실에서는 인기나 능력 중심으로 엘리트의 정치적 주도권을 인정하는 풍토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이어지고, 실상 중요한 정치인의 덕목은 주목되지 않는 상황이다. 정치에 대한 불신이 구조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제대로 된 정치 플랫폼을 만들기 위해 견지돼야 하는 원칙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
첫째, 대중적이고 개방적인 구조의 정치를 실현해야 한다. 소수 집단이 주도하는 정당, 계보와 인맥이 힘을 발휘하는 정치 문화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 정치의 정상화를 위해서는 다수의 참여를 지속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적인 대안이 필요하다.
둘째, 권력 집중을 근본적으로 해소하는 분권정치가 이뤄져야 한다. 권력의 집중은 수많은 폐단을 낳는다. 반대자를 억압하거나 진실을 왜곡하거나 책임을 회피해 공공의 이익에 해가 되는 등의 모든 부정적인 행위는 이른바 “내가 칼자루를 쥐고 있다”는 권력 의식에서 만들어진다. 권력이 집중되는 것은 이익보다 해악이 압도적으로 많다. 현재 한국의 제왕적 대통령제가 그 정점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권력 집중을 타파하려면 합리적인 시스템 가동 환경으로서의 분권형 정치 플랫폼이 필요하다.
셋째, 공개성과 투명성의 원칙을 세워야 한다. 권력의 집중은 권한(지위), 정보, 자금의 독점에서 비롯된다. 인사 시스템의 파행, 이익과 관련된 민감한 정보의 악용, 예산 배정의 권한 남용 등은 모두 공개와 투명의 원칙이 세대로 세워지지 않음으로써 발생하는 문제들이다. 투명하고 불가역적인 공공 정보 관리 체제 하에서 권력의 기초가 되는 모든 자원을 재배치해야 한다.
넷째, 상호주의와 숙의민주주의의 안착이 필요하다. 나만 항상 옳다는 생각은 위험하다. 민주주의의 정신 또한 개인의 능력보다는 다수의 지배를 이루기 위한 전제 조건으로 집단의 저력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을 생각해봐야 한다. 서로의 의견이나 시각이 다를 수 있다는 전제를 인정하는 상호주의의 원칙으로 다자 간의 협의와 합의의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말이다. 이러한 정치 원리를 숙의민주주의라고 부른다. 오늘날 당연함에도 거의 실현되거나 지향되지 않는 이상 중의 하나다. 비용이 많이 든다, 비효율적이다 등의 이유가 빈번하게 소환한다. 종래의 방식에서는 그런 핑계가 가능할 수도 있었지만, 현대의 디지털 기술은 숙의가 이루어질 수 있는 충분한 자원과 환경을 제공한다.
다섯째, 직접민주주의의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 모든 사안을 ‘물리적으로’ 직접 처리하는 것은 소모적이고 무의미하다. 직접민주주의를 반대하는 많은 사람의 논리다. 중요한 것은 내용의 직접성이지 절차의 직접성이 아니라는 점을 간과한 생각이다. 대개는 대의자를 자처하며 일정한 권력 독점 집단에 편승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를 가진 자들의 논리인 경우가 많다. 반대로 직접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식하고 내용적인 실현을 어떻게 할 것인가의 과제를 해결하는 일은 중요하다. 개인의 정치적 의사를 체계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데이터 시스템이 있고, 그 내용이 대의체제 안에서 정확하게 반영된다면 이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현대의 직접민주주의는 결국 이러한 정치 참여의 직접성을 실현하고 검증하는 구체적인 대안이 돼야 한다.
여섯째, 다양성에 조응하는 정치를 준비해야 한다. 시대의 변화는 이미 다양한 이해관계 속에 개개인을 존재하게 한다. 이를 적절하게 평가하거나 수용하지 못하면 손해나 실패를 피하기 어려운 구조화된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른바 다양성의 시대가 등장한 셈이다. 이러한 다양성과 관련한 사안들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방법을 찾고 대안을 찾는 일이 정치의 중요 과제로 떠올랐다. 특히 복지, 문화, 지방행정 등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로 자리 잡고 있다. 다양성은 데이터의 수집·분석과 평가를 통해 현황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확정하고, 이에 대한 인식과 대응 체계를 적용하는 방법으로 풀어야 한다. 이는 디지털 기술에 의한 데이터 관리 도구가 아니면 접근조차 불가능한 실정이다. 따라서 다양성을 수용하는 정치는 디지털화된 플랫폼 정치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미래형 정치의 시작
당장 바꾸는 일이 결코 쉬울 수는 없다. 그럼에도 변화를 외면하면 기다리는 건 결국 실패와 죽음뿐이라는 사실 또한 명징하다. 정치를 바꾸자는 말은 무성하게 있었다. 청년정치, 지역정치, 소수자 지향, 전문가 리더십 등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들이 실패하거나 여전히 답보상태인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구조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정치구조는 인적 연결고리에 기반한다. 학연, 지연, 계파로 구성된 인간적 관계의 복잡한 사슬로 이루어진 구조다. 앞서의 모든 퇴행은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에서 기인한다. 많은 유권자, 대중이 이 사실을 안다. 하지만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과 모색은 매우 부족하다. 새로운 정치는 시스템을 기반으로 해야 한다. 시스템 기반이라는 말은 주관성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행위를 하는 사람이 누가 되더라도 기본적인 작동과 결과가 명확하며, 예측가능한 과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나는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 시스템에 충성한다”는 누군가의 꽤 유명한 발언은 공직자와 시스템의 의미를 되새겨보게 한다. 현실에서 그러한 시스템이 실현되고 검증되는 과정이 진행 중이라면 대다수 유권자, 시민들은 정치를 신뢰하고 지지하는 입장을 가질 것이다. 현재의 3할이 넘는 무당층의 존재는 ‘과시적 선언’과 ‘배신적 행위’의 괴리를 반증하는 지표이다. 이제 퇴행의 정치는 사라져야 한다.
기후위기, 생태 종의 소멸, 물과 공기의 오염, 자원과 식량의 고갈, 인구절벽, 초고령화, 소외와 자살, 갈등과 혐오의 중첩으로 인한 폭력, 전쟁, 학살. 흔하게 접하는 뉴스의 타이틀이다. 너무나도 암울한 미래가 다가오는 듯하다. 퇴행적인 정치 구조는 이러한 미래에 대응할 수 없다. 근본적인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 이는 시대적인 필연이기도 하다. 그 중심에 디지털이 있다. 디지털은 인류를 미래로 나아가게 하는 비전이자 동력이다. 정치가 미래를 설계하고 그것을 다져나가는 실천이라고 정의할 때, 정치는 결국 디지털과 결합할 때만이 그 본질적인 의미와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고 인류에게 구원과 희망을 주게 될 것이다.
<이지헌 디스커스온 대표·정치인재DB ‘피플북’ CI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