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수출주도 모형의 한계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2023.10.23

지난 9월 2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9월 21일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컨테이너 하역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 경제는 수출주도 모형을 통해 발전했고, 발전동력의 큰 부분을 여전히 수출에서 얻고 있다. 2022년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45%에 달했다. 수출과 수입을 합한 수출입의존도는 한국은행 통계에 따르면 2022년 102.0%로 전년도인 2021년의 85.3%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30여년 전인 1990년의 53.0%에 비하면 두 배 수준이 된 셈이다.

수출의존 비중이 높으면 대외경제 여건 변화에 따라 부침이 커서 안정적인 경제운영이 어렵다. 한국경제의 규모와 수준을 반영할 때 우리가 향후에도 이러한 방식으로 계속 발전해 나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우리는 이 모형에 내재하는 한계와 리스크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하며, 이 모형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획과 로드맵을 준비하고 실행해 나가야 한다.

탈글로벌화가 주는 메시지

경제의 글로벌화가 당연시되던 시기에 수출주도형 발전모형을 추구하던 일본, 독일, 한국, 중국 등과 같은 제조업 중심 국가들은 세계 수요를 겨냥해 생산했다.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에서 타의에 의해 자본시장을 열게 됐고, 이후 개방경제에 잘 적응했다. 한국은 대중 수출을 중심으로 한 구조적 흑자를 실현했다. 하지만 중국의 자국 기업들이 수출완제품에 필요한 부품을 하나둘 자체 생산해내기 시작하면서 한국경제의 구조적 흑자는 향후 재현이 불가능하게 됐다. 구조적 흑자는 특정한 시기에만 가능했던 것으로 영원히 갈 수 없는 성격이었다.

코로나19 위기 이후 세계는 지정학적 리스크라는 새로운 개념에 직면하게 됐다. 중국 기업과 생산품의 규모나 질이 크게 향상됐다. 이에 패권적 위치로 중국의 접근을 허용하지 않으려는 미국은 유럽연합(EU)과 동아시아 동맹국들을 중국과의 공급망 사슬에서 (특히 반도체 등 핵심재화에 대해) 떼어 놓으려는 강한 시도를 하고 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겪으면서 독일을 비롯한 유럽국가들의 에너지 대외 의존에 대한 경각심과 위기의식은 그 이상 높을 수 없었다. 주요국가들은 에너지, 식량, 수자원이나 반도체 등 핵심재화에 대해 발생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비한 대책 마련에 집중하고 있다. 탈글로벌화가 세계경제의 새로운 성격을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가 됐다.

탈글로벌화가 한국경제에 주는 의미는 명확하다. 몇몇 주력 업종에 의존하는 수출주도형 경제는 향후 지속가능하지 않다. 한국의 수출 주력 업종인 반도체나 2차전지와 같은 재화에 대해 경제 규모가 큰 모든 국가가 사활을 건다. 미국은 해외기업들에 보조금을 제시하며 반도체와 전지의 미국 내 투자와 생산을 추진 중이다. 최근 독일도 미국의 인텔과 대만의 TSMC에 막대한 액수의 지원금을 주면서 자국 내에 반도체 생산기지를 만들기로 했다. 우리 기업들이 이들 국가로 진출해 생산을 계속하고 경쟁력을 유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투자와 고용, 기술개발은 해외에서 이루어지게 된다.

지난 10월 3일 수출중소기업 현장 방문에 나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서울 금천구 고려기연을 찾아 이원태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10월 3일 수출중소기업 현장 방문에 나선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왼쪽)이 서울 금천구 고려기연을 찾아 이원태 대표의 설명을 들으며 제품들을 살펴보고 있다. / 연합뉴스

우리의 수출주도 경제가 다른 제조업 강국들과 비교할 때 얼마나 허약한 기반 위에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한국의 수출의존도는 네덜란드와 독일에 이어서 주요 20개국(G20) 국가 중 세 번째로 높다. 그런데 네덜란드와 독일은 EU라는 거대한 단일시장에 속하는 국가들이다. 독일이 네덜란드에 파는 재화나 네덜란드가 독일에 제공하는 서비스는 수출로 통계에 잡히지만, 독일과 네덜란드는 (유로라는 동일한 화폐적 기반을 가지고 역내 모든 기업에 무차별이 제도적으로 보장된) EU라는 단일시장에 같이 속해 있다. 단일시장 내 거래 비중이 높기 때문에 우리 경제 여건과는 크게 다르다. 대외 여건의 부침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얘기다.

아시아의 제조업 강국들로 눈을 돌리면 중국은 수출의존도가 우리의 절반 수준이며, 일본은 그보다 더 낮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은 경제발전의 초점을 수출보다 내수시장에 주력하는 전략을 택했다. 중국의 가장 큰 장점인 많은 인구를 통해 내수경제를 활성화시켰다. 세계의 공장이라고 불릴 만큼 대외수출이 많은 중국이지만, 성장은 내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일대일로 정책을 통해 중동과 동유럽 그리고 아프리카 국가들을 자신의 경제영역에 묶어두려는 작업에도 몰두하고 있다. 일본은 오랜기간 동남아 국가들에 공을 들였다. 중국과 일본은 내수 그 자체의 규모도 우리보다 수배 이상 크다.

세계 주요국가들을 둘러볼 때 우리와 같이 수출에만 매몰돼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수출주도 경제의 리스크와 한계를 의식했으면서도 그 경로에서 벗어나게 될 때 발생할 결과에 대한 불안으로 탈출의 준비를 시작하지도 못했다.

반도체 수출액 한 종목이 대폭 줄자 무역수지 적자가 이어지고 경제 전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 정부는 반도체 등 핵심전략산업에 더 지원하겠다고 하지만 지금까지 국가적 지원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몇몇 효자 종목의 수출에 의존해 경제를 운영하는 한국의 방식이 세계경제의 변화된 구조와 이제 더 이상 맞지 않게 됐을 뿐이다. 수출주도형 모델은 시효가 지났다. 어떤 변화가 필요한가. 내수시장을 키워야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규모의 경제 측면에서 불리함을 상쇄할 수 있어야 한다.

국가 미래를 위한 단일시장 구상

유럽의 개별국가들에 EU라는 조직과 단일시장은 커다란 제약을 의미하므로 회원국들이 수용하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공동의 시장을 마련하면서 규모의 경제에 도달하는 것이 국제적인 경쟁에서 의미 있는 존재로 남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로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 어려운 선택을 했을 것이다. EU 단일시장을 주도하는 독일과 프랑스는 역사적으로 힘든 전쟁을 수없이 겪었다. 감정적으로는 그 이상 나쁠 수가 없는 이웃이었다.

우리와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은 일본과 중국이다. 우리의 과거사나 국민감정도 극복하기 어려운 관계다. 한편 달리 생각하면 이미 우리는 양 국가와 밀접한 경제 관계에 있고, 이 두 국가는 각각 크고 강력한 경제권을 구성하고 있다. 이들 국가와 우리 사이에서 투자와 교역은 거의 장벽 없이 이루어지고 있다. 단일시장은 이를 더 밀접한 관계로 발전시키는 일이다. 장벽 없는 투자와 교역을 불가역적으로 만드는 것, 통화정책의 공조, 공동으로 국가들이 연구개발사업을 수행하고 결과를 공유하는 것, 각급 학교의 학위나 각종 면허를 서로 인정하면서 인적자원의 이동을 자유롭게 하는 것 등은 단일시장에 속한 국가들이 합의해 이행하면서 상호혜택을 볼 수 있는 범주의 일이다.

단일시장은 역사와 정치적 진영의 문제로 다툴 일은 다투더라도 그로 인해 경제적 교류와 협력이 방해받거나 멈추게 되지 않도록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단일시장이 만들어지고 공고해지면 과거사 문제에 대해서도 경제적 피해를 우려하지 않으면서 더 자유롭게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미래세대에 대한 책임을 생각한다면 향후 100년을 위한 선택으로 단일시장을 숙고할 필요가 있다.

<김유찬 포용재정포럼 회장·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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