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더 나은 나’와 ‘더 나은 세상’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2023.09.25

교양이 “아이들이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힘”( 교양의 힘 ‘김규항의 교육·시장·인간’(3) )인 이유는 무엇인가. 싱겁게 들릴 수 있겠지만, 교양이 애초부터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근대적 의미에서 교양은 사회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시민(부르주아)이 이전 주인인 귀족을 극복하는 문화 투쟁으로 출발했다. 아무런 노력 없이 단지 물려받은 신분으로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는 귀족에게, 지적 예술적 소양이란 그저 지배계급으로서 품위 유지와 피지배계급과 분리에 사용되는 장식물이다.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그에 반해 시민은 인격적으로 문화적으로 끊임없이 자신을 가꾸어감으로써 세상의 새로운 주인으로서 자격과 정당성을 증명해내려 노력했고, 그게 바로 교양이다. 교양은 본디 ‘더 나은 나 만들기’와 ‘더 나은 세상 만들기’라는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담고 있다. 바꿔 말하면 교양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일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나일 때, 분리되거나 생략되지 않을 때 성립한다.

근대 사회(자본주의적 근대 사회)가 안정화하고 부르주아가 지배계급의 지위를 확고히 함에 따라 교양도 애초의 역동성을 잃고 보수화한다. 교양에 수반하는 일정한 인문학적 지식과 예술적 경험 같은 것들이 껍질만 남아 그 자체로 교양 행세를 하게 된다. 교양은 자본주의 사회 상위 계급의 어설픈 귀족 흉내에 사용되는, 혹은 그들을 보좌하며 기생하는 교육받은 중간 계급이 인민과 자신을 구별하는 장식물로 전락한다.

더 나은 나 만들기는 더 나은 세상 만들기로부터 분리된다. 이른바 ‘자기 계발’은 그 극단적 형태다. 자기 계발의 사전적 의미는 ‘잠재하는 자기의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우는 일’이니, 교양에서 나 만들기와 별다를 게 없다. 그러나 실제 현실에서 자기 계발은 전혀 다르다. 자기 계발은 인간이 전인적 발전이 아니라 ‘몸값’을 높이려는 행위, 총체적 인격으로서 나를 기각하고 상품으로 취급하는 변태적 행위다. 자기 계발은 자본주의에서 교양의 최종적 파탄을 상징한다.

20세기에 생겨났다 사라진 현실 사회주의 사회들은 자본주의에서와 반대로, 세상 만들기가 나 만들기로부터 분리한 경우다. 이 사회들은 부르주아의 장식물로서 교양을 노동자 농민의 살아있는 교양으로 교체할 것을 천명했다. 그러나 스탈린 치하 소련의 지식인과 예술가에 대한 관료의 억압과 탄압, 모택동 치하 중국에서의 기괴하기 짝이 없는 하향식 인간 개조 실험(문화혁명) 등이 보여주듯, 교양에 대한 이해는 물론 인간에 대한 이해가 결여한 것이었다. 이전 역사에서 축적된 지적 예술적 자원은 반동 딱지를 붙여 삭제해버리고 새로운 교양을 만드는 데는 실패한 결과는, 현재 러시아(인)와 중국(인)에도 짙은 그림자로 드리워져 있다.

혼란과 위기 상황에서 아이가 제 인생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힘은 교양이며, 교양은 더 나은 나를 만드는 일과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나라는 이야기는 막막하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그 주된 이유는 우리가 ‘교양 실종의 세계’에 이미 길들어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우리는 개인의 문제는 지나치게 섬세하게만 보며, 세계의 문제는 지나치게 거대하게만 본다. 그러나 한 아이의 성장은 세계의 변화만큼 거대한 일이며, 세계의 변화는 내 아이의 성장처럼 섬세한 일이다.

<김규항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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