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몸이 건강해야

권재현 편집장
2023.03.27

사연 없는 죽음은 없다고 했지요. 안타깝고 황망하지 않은 극단적 선택은 또 어디 있겠습니까.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경기도지사 시절 초대 비서실장을 지낸 전모씨가 최근 유명을 달리했습니다. 검찰수사 과정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 대표 주변 인사가 벌써 5명째입니다. 검찰의 무리한 수사를 탓하는 쪽과 이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쪽의 주장이 첨예하게 엇갈립니다.

[편집실에서]잇몸이 건강해야

유서가 공개됐습니다. 6쪽짜리 전문을 읽는다면 그를 극단적 상황으로 몰고 간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짐작이라도 해볼 수 있으련만, 산발적으로 나오는 일부 내용만 가지고서는 아무래도 그의 심경 전반을 이해하는 데 제약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죽음을 앞두고 진정 그가 말하고 싶었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공개된 유서 내용 중에 눈여겨볼 만한 포인트가 여럿 있었습니다. “주변 측근을 잘 관리하시라.” 가장 눈길을 끈 부분이었습니다. 이 대표는 성남시장 시절, 대중에 본격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습니다. 성남시장 재선과 경기도지사를 거쳐 대선주자 반열에까지 올랐습니다. 제아무리 용뿔 빼는 재주가 있어도 혼자 힘으로 여기까지 올 수는 없습니다. 조력자, 측근, 원군, 우호세력, 강성지지층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그 과정에서 신세를 진 사람이 어디 한둘이겠습니까. 그들이 설령, 궤도를 벗어나더라도 어려울 때 진흙탕을 함께 뒹굴던 전우애를 생각하면 쉽게 내치기 어렵습니다. 손에 대신 피를 묻히고, 싫은 소리도 대신 하는 악역을 자처하며, 속뜻을 헤아려 사전 교통정리까지 말끔히 해버리는 측근들한테 마음이 기우는 건 어찌보면 인지상정입니다.

당의 내분이 점차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밖에서뿐만 아니라 안에서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위기입니다. 이 위기를 과연 돌파할 것이냐, 좌초하고 말 것이냐. 이재명 대표의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입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그 사람의 진면목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모이느냐, 어떤 세력과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느냐가 중요합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일단 이기고 보자는 식은 곤란합니다. 아무하고나 손잡고, 무조건 감싸는 식으로 처신해서는 내일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잊을 만하면 되풀이된 역대 정권의 측근 비리, 논공행상, 가신전횡, 내로남불 등의 폐단이 거저 나온 게 아닙니다.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안팎의 공세를 받아치기에도 급급한 상황이겠지만, ‘사생결단’의 국면 속에서도 국민은 이 대표 주위에 누가 있는지, 그들이 과연 진실을 말하는지, 믿고 지지를 보내도 좋을지를 살피고 또 살피고 있다는 점을 유념해야 합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측근 관리의 중요성은 더 커집니다. 잇몸이 상하면 멀쩡한 이라도 결국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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