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린을 건드렸다

권재현 편집장
2023.03.13

2017년 당시 서울중앙지검 인권감독관(검사)의 고1 아들이 ‘학폭(학교폭력)’ 사건에 휘말렸습니다. 학폭대책자치위원회가 열렸고 진상조사를 거쳐 가해 사실이 인정됐습니다. 아들의 부모는 “말로만 했지 때린 건 아니지 않느냐”는 취지로 항변했다지요. 어떤 말을 했길래 강제 전학 처분까지 내려졌을까요. “돼지 새끼”, “빨갱이” 등의 어휘를 써가며 같은 기숙사를 쓰던 동급생을 따돌리고 정신적 피해를 입혔답니다. 집에서 부모가 어떤 말을 쓰고 어떤 생각을 심어줬길래 자녀가 친구에게 이런 딱지를 스스럼없이 붙였을까요. 인성 형성에 가정환경이 중요한 건 사실이지만 이 사건에선 인과관계가 검증된 바가 없기에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꼭 부모가 아니어도 학생들이 유튜브, SNS 등 온라인 공간의 무수한 자극적인 콘텐츠에 무방비로 노출된 측면도 크니까요. 질풍노도의 시기에 이보다 더 거친 설전을 주고받고 더 심한 물리적 폭력이 오가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일선 교육현장 관계자들은 증언합니다.

[편집실에서]역린을 건드렸다

더 심각한 문제는 따로 있습니다. 사태가 터진 후 벌어진 일련의 과정입니다. 아들의 학생기록부에 ‘학폭 징계’ 사실이 남을까봐 법률 전문가인 아버지가 본격적으로 팔을 걷어붙였다지요. 학교 측의 징계 조치에 불복해 소송을 내고 사법연수원 동기 변호사(판사 출신)에게 대리인을 맡겼습니다.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낯뜨겁지 않았을까요. 보는 눈이 한둘도 아닐 텐데 공익의 수호자, 인권의 보루라는 대한민국 현직 고위 검사가 앞뒤 가리지 않고 나선 그 혈기와 집요함이 놀라울 따름입니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무려 1년여를 끌었다지요. 그러는 동안 피해 학생은 가해 학생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며 얼굴을 마주봐야 했고요. 급기야 극단적 선택을 시도할 정도로 막다른 처지로 내몰렸습니다. 검찰 최고 실세들이 주위에 두루 포진(사법연수원 동기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당시 서울중앙지검 3차장, 윤석열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한 화려한 인맥을 ‘뒷배’ 삼아 소송전에 임했지만, 결과는 ‘줄줄이 패소’였습니다. 그제야 가해 학생은 전학을 갔습니다. 이후 그는 수능 성적만으로 당락을 결정하는 정시 전형으로 서울대학교에 원서를 내 합격했습니다.

한숨 돌린 아버지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큰 목표를 향해 질주합니다. 2020년 검찰을 떠나 개업한 정순신 변호사는 정권의 경찰 장악 논란 한가운데 위치한 국가수사본부장 자리에 당당하게 응모합니다. 학폭 사건이 재조명되면서 임명 하루 만에 사의를 표명합니다. 윤희근 경찰청장과 법무부, 대통령실은 서로 부실 인사 검증의 책임을 미루기 바쁘고 대통령은 마치 딴 나라 얘기하듯 한마디 툭 던지는 식입니다. 돌아가는 모양새로 미뤄 ‘책임을 물을 곳에 딱딱 물을’ 가능성조차 없어 보입니다. 이번에도 ‘뭉개고 버티다’ 보면 어떻게든 넘어가겠지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정부가 이번 사태를 어떻게 마무리하는지 다들 두 눈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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