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공화국 살아가기

권재현 편집장
2023.03.06

덕수궁 대한문에서 돌담을 지나 경향신문사에 이르는 정동길의 매력을 꼽으라면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각양각색의 커피매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중저가 브랜드부터 고급 전문점에 이르기까지 형태와 맛도 다양해 커피 마니아의 한사람으로서 골라 먹는 재미가 있습니다. 한 집 건너 하나씩 있을 정도로 빽빽한 커피매장 사이에서 그 흔한 스타벅스 이름을 발견할 수 없다는 점도 정동길의 특징입니다.

[편집실에서]커피공화국 살아가기

물론 경향신문사 건물을 끼고 돌아 조금만 걸어가면 대로변에 아니나 다를까 스타벅스 매장이 떡 하고 나타납니다. 모닝커피족, 한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하는 얼죽아족, 술자리 회식을 커피로 마무리하는 해장커피족에 이르기까지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커피 없는 일상은 상상조차 어렵다는 이들이 모여 있는 ‘커피공화국’을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바로 그 스타벅스 말입니다. 점심을 마치고 커피 한잔하겠다고 들러보면 앉을 자리가 없을 정도입니다.

최근 ‘경동1960’을 다녀왔습니다. 전국의 전통 한약재가 모인다는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내에 자리 잡은 스타벅스 매장의 이름입니다. 폐극장이던 경동극장을 재단장해 지난해 12월 새로 문을 열었습니다. 입이 쩍 벌어졌습니다. 뉴트로풍의 내부 인테리어도 특이했지만 평일(월요일) 오후였는데도 그야말로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겨우 한 자리가 나서 커피 한잔을 주문했습니다. 1시간 정도 머물렀는데 정말이지 쉬지 않고 인파가 밀려들었습니다. 젊은층이 많았습니다. 외국인 관광객들도 심심찮게 보였습니다. 스토리의 힘을 새삼 느꼈습니다. 커피 맛이야 뭐 크게 다르겠습니까.

커피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르렀다는 분석도 있지만 스타벅스의 확장세는 지금도 진행형입니다. 어디를 가든 눈만 돌리면 ‘별다방’ 로고가 보입니다. 고택을 활용한 대구 종로고택점(지난해 10월)에 이어 더북한산점(2월 15일)이 문을 열었다네요. 매장에 앉아 파노라마뷰가 가능하다는 설명이 따라붙습니다. 언뜻 봐선 안 어울리지만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데페이즈망(낯설게 하기) 기법처럼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사람들을 끌어모으는 이색 콘셉트의 스타벅스 매장들이 줄을 잇습니다. 천편일률적인 모습에 머물지 않고 다채롭게 변신한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지만 커피 생태계 전반으로 사고의 폭을 넓혀보면 대놓고 반길 수만도 없습니다. 지나친 스타벅스 쏠림 현상은 득보다는 실이 클 테니까요.

스타벅스 코리아가 멤버십 회원 1000만명 돌파를 기념해 지난 2월 22일부터 사흘간 아메리카노를 2500원에 파는 이벤트를 벌였습니다. 고백건대, 할인 좀 받아보겠다고 냅다 스타벅스 매장으로 달려갔습니다. 일정 궤도에 올라서면 뭘 해도 약발이 먹히는 ‘규모의 경제’ 논리 앞에서 독점의 유혹을 떨치기란 업체로서도, 소비자로서도 간단한 일은 아니다 싶습니다.

<권재현 편집장 jaynew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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